여의도 떠도는 ‘이해찬 상왕 정치설’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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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떠도는 ‘이해찬 상왕 정치설’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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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돌격명령’을 내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추미애 방어’에 나섰다. 이낙연 대표가 ‘언동조심’을 경고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전 대표가 ‘상왕정치’를 하고 있으며, 이 대표는 ‘허수아비’일 뿐이라는 말까지 정치권서 나돈다. <일요시사>는 퇴임 전 의심이, 퇴임 후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는 ‘이해찬 상왕정치설’을 추적했다.


NY 뒤에 아른거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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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상왕정치설’의 중심에 선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인터뷰서 이 전 대표는 “검찰의 여러 개혁안이나 인사는 안 다루고(추 장관) 자녀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니 이게 뭐하자는 것인지”라며 “본질을 갖고 얘기하면 좋은데 카투사를 한참 얘기하다가 잘 안되나 보니, 따님 얘기를 들고 나와 억지 부리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본격적 방어
설화 잇따라


이를 기점으로 민주당 의원들의 추 장관 방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국민의힘 등 야권서 제기하는 의혹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같은 날 설훈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이 참 억울하기 짝이 없게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지난 16일 “추 장관의 아들이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했다”는 논평을 냈다가 논란만 일으켰다.

추 장관의 아들이 무릎 수술을 받은 것은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함이었으며, 이는 안 의사의 유훈인 ‘위국헌신군인본분(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을 실천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윤봉길 의사의 손녀인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은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이 이런 모습을 보려고, 이런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셨을까. 어떻게 감히 안 의사 말로 비유하는지 너무 참담하다”며 한탄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민주당은 안 의사 부분을 삭제한 뒤 수정 논평을 냈다. 박 원내대변인은 언론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적절하지 않은 인용으로 물의를 일으켜 깊이 유감을 표한다”며 “앞으로 좀 더 신중한 모습으로 논평하겠다”고 사과했다.

황희 의원은 지난 12일 “(제보자인 당직사병의)언행을 보면 도저히 단독범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당직사병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공범 세력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도 전했다.

황 의원은 이 같은 입장을 밝히며, 당직사병의 실명을 공개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당직사병의 얼굴과 실명은 종편 채널 TV조선이 먼저 공개했다고 방어했지만, 비판은 폭주했다.

돌격명령? 일제히 음모론
‘언동조심’ 경고 무색해


같은 당 동료였던 금태섭 전 의원도 20대 청년에게 ‘단독범’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거론하며 “제정신인가”라고 쏘아붙였다. 결국 황 의원은 실명을 공개한 부분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공범 세력이 존재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는 않았다. 

보수단체인 자유법치센터는 지난 14일, 황 의원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부정청탁금지법은 공익신고자의 인적사항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공개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도 황 의원을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누구든지 공익신고자라는 사정을 알면서 그의 인적사항이나 그가 공익신고자 등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 또는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할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홍영표 의원은 황 의원의 공범 세력설을 확대, 정치 공작설까지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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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16일 서욱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서 홍 의원은 “과거에 군을 사유화하고 군에서 정치에 개입하고 그랬던 세력들이, 옛날에 민간인 사찰 공작하고 쿠데타도 일으켰던 이들이 이제 그게 안 되니, 그 세력이 국회에 와서 공작을 하고 있다”며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한다.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있음에도 말이다”라고 소리쳤다.

국민의힘이 추 장관 아들 논란을 공작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초 민주당 내부에서는 추 장관 아들 논란에 함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자칫 무리한 방어로 국민들에게 비쳐진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였다. 더군다나 추 장관 아들 논란이 ‘국민의 역린’인 고위공직자 아들의 병역 문제이기에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적인 문제가 없더라도,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 반하는 도의적 문제로 번질 경우 당의 이미지는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16일 추 장관 아들 논란에 대해 도의적 차원서 사과한 이유다. 

고발까지
이어져…


박 의원은 “군대를 다녀온 평범한 청년들에게 그들이 갖는 허탈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교육과 병역은 온 국민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국민의 역린”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민주당 내부서 꾸준히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기류에도 불구하고 이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순식간에 바뀌었다. ‘설화’(말을 잘못해 받게 되는 해)라는 지적은 신경 쓰지 않고 추 장관 엄호에 나선 모습니다. 이 전 대표의 발언은 돌격 명령의 역할을 한 셈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자당 의원들에게 한 ‘경고’가 무색하다. 이 대표는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있기 이틀 전 최고위원회의서 “몇몇 의원들께서 국민들께 걱정을 드리는 언동을 한 게 사실”이라며 “저를 포함해 모든 의원들이 국민께 오해를 사거나 걱정을 끼치는 언동을 안 하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전 대표의 발언, 잇단 민주당 의원들의 추 장관 엄호 발언은 이 대표의 ‘언동 조심’과 궤를 달리한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취임 2주 만에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 전 대표 때와 사뭇 대비된다. 

이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 소속 의원들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입단속’을 시키며 당의 중심을 잡았다.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과 금태섭 전 의원의 징계,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당내 자유로운 의견 제시를 막는 비민주적 처사라는 일각의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친노(친 노무현) 좌장’의 경고 효과는 확실했다.

‘이해찬 상왕정치설’이 정가를 뒤덮었다. 현 지도부가 이 전 대표의 ‘수렴청정 체제’가 아니냐는 논란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대표는 허수아비고 이분(이 전 대표)이 실제 민주당의 대표”라며 “이 대표는 의원들에게 말조심하라 그랬다. 반면 이 전 대표는 의원들에게 나서서 적극적으로 추 장관을 방어하라고 오더를 내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이 전 대표의 퇴임을 앞두고 상왕정치설이 불거진 바 있다. 이 전 대표의 당내 위상과 입김을 감안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당에 정치적 영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 전 대표가 퇴임 후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점도 이러한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수렴청정
예견된 수순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과의 경제교류 및 상호협력관계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민간단체다. 사무실은 여의도 국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다. 언제든지 당의 주요 인사를 만날 수 있는 요건이다.

마침 이 전 대표와 가까운 김태년 원내대표가 당 지도부에 있다. 이 대표는 앞서 ‘언동 조심’을 경고하며 “김 원내대표께서 이에 관한 고민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한 바 있다. 김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자당 의원들의 언동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수렴청정 논란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15일 “상왕정치나 수렴청정으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면서도 “비문(비 문재인)이 사라진 당내 역학구도를 보면,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여전히 의원들에게 크게 들릴 수 있다. 이 대표는 6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온 것 아닌가. 상대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표가 정권 창출과 176석 거대여당을 만드는 데 중심 역할을 한 점도 이 대표보다 당내 영향력이 큰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의 ‘빅브라더’다. 친노, 친문의 좌장이자 7선 국회의원 출신인 이 전 대표의 말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경력을 가진 이는 여야를 통틀어도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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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관련 논란에 ‘안중근 의사’를  

비유해 입길에 올랐던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참여정부 시절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이 후보는 국무총리였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의 상왕은 이해찬, 안철수의 상왕은 박지원, 태상왕은 김종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이 전 대표가 당 대표던 시절 당청관계가 민주당 쪽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7월 이 전 대표는 청와대와 정부가 6·17 부동산 대책 등을 결정하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까지 배포한 뒤 당정협의에 나선 점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이런 식으로 하면 각 상임위서 당정협의를 받아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청와대를 향한 강한 경고성 발언이었다.

7개월 대표의 한계
‘원보이스’ 흔들려


청와대는 이 전 대표의 노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당의 입장은 생각을 통보하듯(당정협의를) 운영하지 말고, 충분히 대화하고 협의하자는 것 아니냐”며 “대화하는 상황서 한쪽이 대화가 부족하다고 하니, 우리는 앞으로 충분히 대화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우회적으로 사과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직접 국회를 찾아 이 전 대표에게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보고했다. 계획 발표 이전에 이뤄진 보고였다. 홍 부총리는 이 전 대표를 만난 뒤 기자들 앞에서 “한국판 뉴딜과 관련해 관계 부처 간 협의는 마무리된 상황”이라며 “보완을 위해 이 (전)대표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국회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이 대표는 전남도지사,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 등을 거쳐 6년 만에 여의도로 복귀했다. 대중적인 인기는 높지만, 이 전 대표처럼 자당 의원들에게 ‘강한 그립’을 행사하기 힘들다.

당내 자기 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이 대표를 괴롭히는 꼬리표 중에 하나다. 지난 2014년 7월 전남도지사로 당선된 이후 이 대표는 여의도서 멀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20대 국회서 속칭 ‘이낙연계’로 통하는 의원은 극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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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21대 총선서 이 대표가 후원회장을 맡은 후보들이 대거 여의도에 입성했지만, 그들을 이낙연계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한부 당 대표’라는 점도 이 대표의 발언이 이 전 대표의 그것보다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대권’이 최종 목표인 이 대표는 2022년 3월9일 열리는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내년 3월9일 전까지 당권을 내려놔야 한다.

대권 1년 전 대권에 도전하는 당 대표는 직을 사퇴하도록 규정하는 민주당 당헌·당규에 의해서다. 현실적으로 7개월 후 떠나는 이 대표의 발언력은 2년의 임기를 다 채운 이 전 대표의 그것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대권까지
흔들리나?


‘원팀·원보이스’는 민주당의 힘이었다. 단일대오를 이룬 민주당은 지난 21대 총선과 6·13지방선거서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낙연 체제서 이 같은 원보이스는 위기를 맞았다. 통일되지 않은 개별 목소리가 난무한다. 이 대표가 이 같은 난관을 뚫고 민주당의 차기 대권 후보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일요시사 최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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