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68) 진짜 바라보라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68) 진짜 바라보라 <여호수아 3:1-6>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위기들을 만납니다. 인생의 위기란,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길, 그리고 문제가 극대화된 때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위기를 지나고 또 지나다 보면 결국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성경에는 인생의 위기를 잘 넘기고 기회를 쟁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출애굽을 거쳐 광야생활을 하고 가나안을 점령해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는 40년간 수 없는 위기를 넘으며 마침내 약속의 땅이라는 기회를 성취하여 고지를 점령하는 내용입니다. 출애굽 여정과 가나안 입성 과정에서 그들의 삶을 정리해주는 중요한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물을 건너는 사건이었습니다. 출애굽의 여정 가운데는 홍해를 건넜고, 가나안에 입성할 때는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물을 건너는 이 두 사건이 어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단강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40년 간의 광야 생활이 이제 곧 끝이 날 것입니다. 두렵기도 했겠지만 얼마나 기대가 되고 기뻤겠습니까? 더 이상 방랑자가 아니라 약속된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니, 그들 안에는 기쁨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 호기롭게 출발하였던 그들의 여정 앞에 요단강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얼마나 절망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요단강을 건넙니다. 위기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런데 요단강 앞에서 좌절을 딛고서 결단하고 물을 건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며,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들이 요단강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쏟아 놓고, 우상을 만들고 끊임없는 잘못과 실수들을 저지르는 그야 말로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그런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믿음의 순종함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었을까? 어찌 보면 최악의 순간, 어떻게 그들은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함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그 비결을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최악의 순간이 왔을 때, 믿음에 굳게 서서 순종함으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말씀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매일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참 쉽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바라보며, 즐겁고 기쁜 찬송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생에 연달아 찾아오는 어려운 위기를 만날 때입니다. 더욱이 그냥 지나가는 고비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넘어지고 죄를 짓고, 심판 받던 그들입니다. 마치 우리들의 모습을 닮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그들이 최악의 순간이 왔을 때, 어쩌면 이해되지 않는 처방이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으로 요단강을 향해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 결단이 어디에서 왔을까?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각자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따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어디선가 보았던 모습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출애굽 당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며, 우왕좌왕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내셔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길을 안내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안내하시는 길에 따라 걸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으로 광야에서 성막을 완성한 후에, 성막 위로 구름이 떠오르면 그 구름을 따라 행진을 이어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행진을 멈추고 있는 곳에 유숙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의 신호를 따라가는 훈련을 해왔기에, 요단강 앞에서도 비록 그것이 불가능하다 여겨졌지만, 순종함으로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즉, 그들의 앞에 모든 희망을 꺾어 버리는 최악의 순간이 왔을 때, 평소에 해왔던 훈련이 빛을 발하여, 믿음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의 훈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영적인 전쟁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크고 작은 훈련이 우리에게 없으면 작은 공격에도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립니다. 이 시간 내 삶에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훈련의 시간이 무엇이 있나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만약 스스로 돌아볼 때에, 매일 삶 가운데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훈련의 시간이 없다면, 과연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시험과 유혹 속에서 견딜 수 있겠습니까? 매일의 삶 가운데에 그러한 크고 작은 훈련들이 모여서 인생의 최악의 순간이 왔을 때, 우리의 믿음의 발을 내딛게 하는 힘이 될 것임을 꼭 믿으셔서, 매일의 삶 가운데에 주님 안에서 훈련을 실천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마 우리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삶에서 훈련을 시도하지 않았던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알맹이가 빠진 훈련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독하고 필사를 하고, 예배에 열심을 다해 참석하는데 삶에서의 변화가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우리가 영적인 훈련을 할 때에,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이 변화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이 말씀은 이제 여호수아의 명령이 떨어지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멜 것인데, 그때를 기점으로 해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에 그들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주목해야 했습니다. 즉, 여기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보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리 가시면 이리 따라 가고, 저리 가시면 저리 따라가겠다라는 각오로 시선을 고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들도 언제 그 일이 시작될지 몰라, 때로는 시선이 분산되기도 하고, 한 눈을 팔기도 하고, 졸기도 하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윽고 다시 시선을 언약궤로 향하여, 언약궤가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었는가? 메지 않았는가? 움직인다면 어디로 향하는가? 주의 깊게 살피며, 언약궤에 다시 시선을 고정하기를 반복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진짜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순간 언약궤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의 뜻이 이러하니, 하나님 나의 발걸음에 맞춰주십시오.” “나의 바램은 이것이니, 이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여지기에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닌 나의 욕심만을 바라보고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대하는 저와 여러분도, 매일의 하루를 시작하시며 삶의 동기와 목적과 결과가 늘 하나님께 향하며, 하나님의 뜻을 살피심으로 그 분을 진짜 바라보실 때,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와 풍성한 복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으심으로 은혜 안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모두를 향해 있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고,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져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본문 6절에서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이와 같이 명령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먼저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당신을 뒤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길을 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해주심을 꼭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본문 4절 말씀을 보시면, 언약궤와 이스라엘 진영 사이에 이천 규빗쯤 되는 거리를 둘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명령하셨을까요? 먼저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어지는 4절 후반절의 말씀을 보시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지나오는 모든 길이 초행길입니다. 어디로 가면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혹 이스라엘의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언약궤를 따라 오다가는 자칫하면, 언약궤가 보이지 않아 이를 놓쳐 잘못된 방향으로 새는 낙오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언약궤는 직사각형 상자로, 금으로 도금이 되어 있어서 낮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습니다. 멀리서 반짝 거리는 이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없을 수 있도록 거리를 충분히 두시고, 모든 지파가 모두 하나님의 언약궤를 바라보며 따라오도록 배려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를 구원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을 살다가 보면, 때로는 나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찾아옵니다. 인생의 최악의 순간을 만날 때면,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느껴지는 그 순간, 하나님마저도 나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때에라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나와 나의 자녀들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때로는 걱정이 앞서고 염려도 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나와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결코 혼자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바라기는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와 함께 하심을 굳게 믿으심으로, 하나님 바라보며 잘 훈련받아, 늘 기쁨과 평안 안에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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