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24) 다낭에서 생긴 일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24) 다낭에서 생긴 일

일요시사 0 2592

 글_정인화

 

“뿌찌지직.”

 

베트남 다낭에 도착한 첫날, 호텔 수영장에서 미끄러졌다. 오른쪽 다리가 앞으로 쭉 나간다. 바로 앞에 계단이 보인다. ‘저쪽으로 떨어지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텐데’라는 생각이 빠르게 지나친다. 창피하다는 생각에 소리도 못 지른다. 주저 앉으면서 엉덩방아는 찧지 않았다.

 

 ‘쪽 팔리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자위하는데 뜨거운 기운이 얼굴로 몰려온다. 숨을 못 쉬겠다. 일어서야 하는데 다리가 안 움직인다. 뼈가 부러졌나. 내일부터 시작하는 여행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몰려온다. 아픔과 걱정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괜찮아요?”라고 묻는 사람도 없다.

 

다리를 끌며 옆에 있는 선 라운지(sunlounge)로 기다시피 다가갔다.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솟는다. 누군가가 놓았을 수건을 옆으로 치우며 앉았다. 숨을 몰아쉬며 발목을 돌렸다. 잘 돌아간다. ‘부러진 데가 없나 보네’하며 다리를 만졌다. 오른쪽 무릎 바로 위의 근육이 움푹 파였다. ‘아, 그게 허벅지 근육이 끊어지는 소리였구나. 이제는 어떡하지?’라고 고민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이 선 라운지에 있던 수건을 낚아채듯이 가지고 다른 쪽으로 간다.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보자 미안하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보면 몰라, 이 새끼야.’라고 소리치고 싶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어깨가 처진다. 선 라운지에 누웠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줄어들지 않아도 온몸을 감싸는 뜨거운 바람이 좋다. 눈을 감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불평이다. 호텔 매니저를 만나 수영장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한마디 해야지 하는 마음이 먼저 스친다. ‘미끄럼 주의’라고 쓴 조그만 간판 정도는 수영장에 비치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러다가 이유 없이 크게 다쳐서 그런지는 몰라도 벌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든다. ‘잘 못살아서 벌주는 겁니까?’라고 하늘을 보며 대들듯이 물어본다. 시간이 지나자 ‘그 바닥 다 닳은 슬리퍼 신었으면 좀 천천히 다니지.’라고 자책도 한다. 화풀이 대상이나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살아가면서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그렇게 없었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갑자기 서러워진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오랫동안 혼자라고 느껴왔다. 다르다는 인식 때문이었을까.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그들을 멀리서만 쳐다봤다.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관계 속에서 느끼는 불쾌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없으니 혼자 있어도 편안했다. 하지만 가끔 고독사라는 뉴스를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접하면 무의식적으로 몸이 위축된다. 죽는 그 순간을 어떻게 혼자서 맞이할까를 생각하면 두려워진다.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불안에서 자유스럽게 놓아주질 않는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가는 여정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을 겪을 때 무슨 일이 생길 줄 알면 준비할 수 있을 텐데. 아무도 알 수가 없으니까 많은 사람이 혼자라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피하려고 노력한다. 남들을 위해 내가 하기 싫은 일도 하고 내키지 않는 말도 종종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당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기를 원했지 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남들한테 퇴짜를 맞기 싫어 혼자라는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그들에게 다가서지 않았다. 실패가 무서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편하기 위해 어려운 일들을 많이 피했다.

 

그런 내 모습이 슬프다. 상황적으로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위로하면서 지금부터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불편하거나 두려울 때도 피하려 하지 말자. 결심했을 경우에는 행동으로 옮기자. 그럴 경우 내가 사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알차기 살기 위해 남들에게 다가서야겠다.

 

다리의 통증이 전해진다. ‘의사라도 찾아봐야 하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눈을 떴다. 수영장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이 떠들면서 놀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는데 같이 여행을 시작한 J 선생님이 다가온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무슨 일 있었어요? 얼굴이 창백하네요.”라고 묻는다. “허벅지 근육이 찢어졌나 봐요.”라고 답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살짝 만지더니 그는 “움푹 파였네. 의사를 찾아봐야겠네요.”라며 일어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였는지 눈물이 팽 돈다.

 

 “잠깐만요. 조금만 옆에 있어 줄래요. 정신 좀 차리고요. 내가 너무 급하게 돌아다니다가 미끄러진 것 같은데.”

 

 “알았어요.”하며 그는 내 옆에 앉는다.

 

혼자가 아니라서 좋다. 인생을 좀 더 알차게 살기 위해 불편하더라도 필요할 때는 손을 내밀어야겠다. 결국에는 혼자가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인생이란 여정을 같이 걸을 동료 여행자를 찾고 그들에게는 좋은 동료가 되어야겠다. 오늘도 다짐을 많이 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이번에는 꼭 실행에 옮겨야지 하며 이를 악문다.

 

 깊게 숨을 들이쉬면서 말한다.

“어디 가서 의사를 찾죠?”

파란 다낭의 하늘과 바닷가에는 많은 수영객이 보인다. 뜻 있게 잘 살고 싶다.

 

 ‘글 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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