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립 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 석사 예정
바이올리니스트 이기혜 씨가 지난 17일 월요일 저녁 7시 모교인 Westlake Girls High school 이벤트센터에서 비올리스트 Cecile Mcneill과 함께 연주회를 개최했다. 재학 중 오케스트라 콘서트 마스터였던 이기혜 씨는 오는 9월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배출한 영국 왕립 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 석사 입학을 앞두고 떠나기 전 연주회를 통해 작별인사를 전했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클래식 연주로 관객들과 공감하며 탁월한 기량을 선보인 이기혜 씨는 현재 오클랜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APO) Fellow 자격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며, 단원들과 함께 매주 오클랜드 타운홀에서 꾸준히 연주해왔다.
이기혜 씨는 웰링턴에 위치한 Ngaio school을 거쳐 Karori Normal Intermediate school을 다니다 가족들과 오클랜드로 이주한 뒤 Takapuna Normal Intermediate school을 졸업했다. 이후 Westlake Girls High school을 졸업하고 오클랜드 대학 음악학부에서 Honours까지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입학을 앞둔 왕립 음악원에서는 Master of Arts(Performance)를 전공할 예정이다.
그는 20여년 전 웰링턴에서 목회를 시작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게 됐다.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의 권유로 네 살 무렵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예배 반주에도 참여해왔다. 음악인의 길로 가게 된 배경에는 누구보다 자상한 바이올린 선생님이 계셨고, 놀이라 여겨질 만큼 재미있게 연주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특히 뉴질랜드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어린이 오케스트라로 활동한 것은 그가 바이올린에 완전히 매료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다음은 바이올리니스트 이기혜 씨의 일문일답.
안녕하세요. 영국 왕립 음악원 입학을 앞두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엊그제 모교에서 개최한 송별음악회(Farewell)를 잘 마쳤고요, 지난 달에는 Michael Hill International Violin Competition에 Violin Fellow 자격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청년 바이올린이스트로 이름을 알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9월 입학이라 8월에 영국행 비행기를 타는데 영국에서 같은 학교, 같은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선배들께 조언을 들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바이올린 연주 일정으로 동료들과 함께 비행기를 많이 타봤지만, 이번에는 홀로 떠나는 유학이다 보니 설레기도 하면서 긴장도 됩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왕립 음악원은 미국의 줄리어드, 독일의 베를린 음악대학 등과 함께 세계 5대 음대로 평가받는 세계 최상위 명문 음악학교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렇기에 더더욱 입학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혜 씨 진학과정은 어땠는지요.
우선, 석사과정에 입학하려면 대학에서 Bachelor 음악을 전공하고 졸업해야 합니다. 당시 저는 1차 시험으로 음악의 역사와 구성과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연주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비디오 오디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모두 두 곡을 요청받았는데, 한 곡은 고전음악으로 로맨틱 콘체르토를 요청받아 낭만파 음악인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1악장을 녹음했고, 다른 하나는 현대음악을 요청받아 근대 음악 가운데 Zarzycki Mazurka를 선택해서 연주했습니다. 전체 40분 분량이었는데, 이렇게 짧은 동영상 안에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음악적 감성과 표현, 기술을 모두 녹여 연주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자기소개 동영상도 찍어서 보냈습니다. 5분 분량의 자기 소개였는데, 청년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현재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바이올린과의 만남,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음악을 배우는 마음가짐과 노력, 음악으로 청중과 세상과 소통하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1차 비디오 오디션 합격 후 현악기 담당 교수와 앞으로 학교에서 하고픈 공부에 대해 대해서 인터뷰했습니다. 저는 이것으로 모든 오디션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결과가 나올 즈음 편안한 마음으로 가족과 한국에 놀러갔었습니다. 그런데 합격발표가 있는 12월 24일에 갑자기 2차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합격 통보를 받은 상태였고, 저는 계획에도 없었던 국제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어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잘 마칠 수 있었고 다음해, 그러니까 올해 1월 6일에 합격 발표가 나면서 자그마한 Scholarship도 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2차 인터뷰가 Scholarship 인터뷰였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를 지도하면서 같이 공부할 Philippe Honore 교수님과의 특별한 인연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어 준 것 같습니다. 작년에 Royal Overseas League Scholarship 프로그램을 통해서 뉴질랜드 대표 청년 음악인으로 선정되어 영국 음악 축제에 갔을 때, 그곳에서 그 분을 만나게 되었고 함께 바이올린 음악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학교 입학을 권유받게 되었거든요. 그리곤 입학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배경은 목회를 하신 아버님 덕분이라고 들었는데요, 여러 악기들 중 바이올린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바이올린 선생님을 만난 덕택이었다고 합니다. 오클랜드로 이사한 뒤에는 아빠가 단돈 20불을 주고 사준 연습용 스즈끼 바이올린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연주했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비싸지 않아서 계속할 수 있던 이유도 있습니다. 지금은 Michael Hill 재단에서 바이올린을 빌려준 덕분에 유지할 수 있던 거고요. 아주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습관처럼 계속 했던 것도 있었어요. 교회에서 예배 연주도 하고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서도 꾸준히 연주할 수 있게끔 이끌어 주셨고 매일 연습을 해왔어요. 사실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제겐 가장 특별한 이유가 됐었죠. 조금 커서는 바순도 해보고 가야금도 해봤지만 바이올린처럼 연주기회가 자주 없어서 이어가기가 힘들었어요.
연주하고 있을 땐 어떤 기분이 드나요?
연주할 때는 최대한 음악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머리가 너무 복잡해집니다. 갑자기 서있는 게 불편하거나 악보가 신경쓰이거나 생각할 게 너무 많이 떠오르거든요. 그 때문인지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지닌 강철멘탈은 제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 다시 집중을 해봐요. 진정성있는 연주를 하는 게 제 신념이거든요. 정확한 음정과 깔끔한 소리도 중요하지만 저한테는 이야기가 들리고 감정이 들리는 음악을 하는게 훨씬 더 중요해요. 그래서인지 연주를 틀려도 크게 아쉬웠던 적은 없고 재밌거나 즐거웠던 기억이 더 크게 남아요.
우리가 어떤 분야를 깊이 공부하다 보면 그 분야의 시야가 넓어지지만 그만큼 더 어렵다고 느껴지도 하잖아요. 바이올린이란 악기는 어떤가요.
바이올린은 공부하면 할수록 기자님 말대로 시야가 넓어지지만 그만큼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작곡가와 시대, 테크닉을 한번에 다 생각하면서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그런 과정을 모두 극복하고 멋지게 연주하는 분들을 보면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죠. 그런데 또 어려운 만큼 음악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동안 더 이상 하기 싫다고 느낀 적도 있었나요?
하기 싫은 적은 없지만 힘든 적은 자주 있어요. 그럴 땐 그냥 쉬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억지로 하면 잘 되지 않고, 즐겁지도 않고 심하면 무리해서 부상을 입을 수도 있거든요. 지치거나 몸이 아프면 연습을 거를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러기 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연습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어느 하나라도 불편한 곳이 없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해요.
석사를 마치고 나면 어떤 계획이 있는지요.
2년 공부를 마치고 나서의 삶은 솔직히 상상이 잘 안가요. 하지만 오케스트라에서의 일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확실해요. 교회 예배 반주와 가족과 함께 하는 Lee Family 연주회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글 박성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