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격차> “죽음에는 격차가 있습니까?” 삶과 죽음에 담긴 격차에 대하여 | 일요시사
[기사 전문]
김윤신 교수(조선대학교 법의학교실): 70세쯤 된 노인이 장애가 있는 자녀랑... 딸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노인도 여성이었어요. 같이 사시는데 이분이 술을 많이 드셔요.
동네에서는 소문난 알코올중독자 정도 되는, 술 취하면 길바닥에 쓰러져 주무시기도 하는 그런 전력이 있는 분이신데, 어느 날 아침에 이웃 주민이 가서 보니까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고, 경찰에 신고가 됐어요. 근데 같이 자녀는 장애가 있어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전혀 판단을 못하는 그런 사정이 있었죠.
시체가 부검실에 왔고 외표 검사를 하는데 뭔가 치골 부위와 골반 부위가 언밸런스, 뭔가 정상에서 벗어나 있는 모양을 보고 ‘이상하다, 이게 왜 이러지?’라고 절개했더니 골반골 골절이 나왔어요.
사건을 의뢰한 담당 수사관에게 “골반골이 부러질 정도라면 교통사고가 1번이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대답하시는 말씀이 “돌아가신 분이 사시는 그 동네는 이면도로 골목길 안쪽이라 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어디서 교통사고가 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곳”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교통사고가 아니라면 추락 정도가 돼야 하는데, 그러면 추락은 어떤가” 했더니 옛날 주택들이 많아서 이층집도 없대요. 추락할 곳이 없는 거죠.
“그럴 수는 없다. 그러면 왜 골반골이 부러진 것이냐. 그러면 내가 옷을 보고 싶다” 돌아가신 분의 상의와 바지를 이렇게 맞춰 놓고 보니까 치골 부위에 흙먼지가 다리미질한 것처럼 쫙 발린 게 보였습니다. ‘이거는 타이어의 흔적일 것이다’ ‘교통사고를 다시 고민해야 된다’
하루 이틀 지나서 다시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통사고가 맞답니다.
이 노인이 그날도 술 드시고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었는데, 그 마을에 부모님을 뵈러 왔던 서울 사는 자녀가 골목에서 주차된 차를 후진하던 중에 덜커덕. 내려서 보니 이 노인이 신음하고 있더랍니다. 술 취해 가지고. 그래서 “괜찮냐?”고 하니 괜찮다고 해 부축해서 집에다 모셔다 드렸죠. 그리고 다음날 가서 걱정돼서 확인하러 갔더니 사망한 채 발견됐던 거죠.
이게 일본 저자가 쓴 그 사건하고 사실은 똑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거죠.
진행자: 2019년 3월 한 권의 도서가 발간됐습니다. <죽음의 격차>, 해당 도서의 저자 니시오 하지메는 지난 20년 동안 약 3000여구의 시신을 부검한 일본의 법의학자입니다.
앞서 보신 영상은 죽음의 격차 들어가는 글 ‘여성의 주검을 둘러싼 의문’의 에피소드이자, 국내 한 법의학자의 부검 사례입니다. 어쩌면 의문사가 될 수 있었던 여성의 죽음을 밝혀낸 건 다름 아닌 법의학자였습니다.
니시오 하지메 교수(일본 효고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저희가 주로 부검을 실시하며 만나는 대상분들이 뭐랄까... 쉽게 말하자면 평범하게 돌아가지 않으신 분들, 평온한 죽음을 맞지 못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지금 사회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그런 사회적인 문제가 원인으로 해서 돌아가신 분들이나 불행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주로 부검하게 됩니다. 크게 보자면 경제적 문제라든지 건강 문제 같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행자: 저희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도 죽음의 격차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격차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추상적인 물음의 실체적 해답을 찾기 위해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들’인 국내 법의학자들을 만났습니다.
양경무(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장): (격차가)있습니다.
신분이 있고, 또 경제력도 있고, 이런 분의 극단적 선택도 있죠. 다음에 경제적으로 곤란한 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부검 자체가 가난한 분들의 부검률이 더 높습니다.
김장한 회장(대한법의학회): 다 고독사고, 극단적 선택도 많고... 살아있는 사람 간의 격차뿐만 아니라 죽음도 좀 달랐다.
격차는 그거죠. 한쪽은 아마 부검률 자체가 다를 거예요.
왜냐면 이쪽은 병사로 병원에 가서 진단을 제대로 다 받고 죽기 때문에 (부검)할 필요가 없이 그냥 장례식 하고, 여기는 병원 안 가고 고독사하고 혼자 앓다 죽잖아요. 그럼 다 부검인 거지. 사인불명이니까. 거기서부터 차이가 나는 거죠.
박대균 교수(순천향대학교 해부학교실): 우리나라가 자꾸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사회가 되다 보니, 서로서로 좀 사회적 관계가 멀어진다고 봐야 될 것 같아요. 이분들이 실종되거나 사회적 활동이 없을 때 이를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양경무(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장): 그 환경 자체가 주변에 출입한 흔적에 대한 CCTV가 없고, 뭔가 수사상 미흡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발견되고 하는 그분들의 환경. 그러면 “이게 혹시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 거 아니야?”
극단적 선택이지만 약간 환경이 좀 안 좋으면 “혹여나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라고 볼 수밖에 없고, 그런 경우에는 부검을 더 할 수밖에 없죠.
김장한 회장(대한법의학회): 고독사 현장에 들어가 보면, 엄청나게 더러워요. 환경 자체가. 부패뿐만 아니라 쓰레기가 엄청나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다가 가신다고 보면 돼요.
박대균 교수(순천향대학교 해부학교실): 백골화된 시신인데 아무도 찾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도 이분에 대해서 실종 신고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진행자: 법의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에는 분명 격차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소득의 격차였다’고 말이죠.
국과수 서울연구소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강서, 양천, 구로, 그리고 2018년부터 부천까지 확대해 네 개 지역에 대해 현장검안을 진행했습니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보도한 ‘2223일, 1만 279건의 기록. 소수의 법의학자들’이 24시간 근무체제를 갖춰 하루 평균 5건의 현장을 출동했다고 합니다.
양경무(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장): ‘한국 시스템을 한 번 갖춰보자’ 그리고 ‘현실을 파악하자' 그래서 법의관이 현장을 찾아가는 검안을 했거든요.
부패돼서 발견되는 시신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여자들은요, 그래도 딸이 챙기거나 어디서 여자분들끼리 살거나 어쨌든 상당히 위생적으로 살고 계시고요. 대부분의 혼자 살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남자들이 많더라고요.
또 한국의 자살률은 너무너무 높다. 제가 그때 갔던 특정 지역은요, 한 아파트 단지에서 하루가 멀다고 떨어져 돌아가세요. 극단적 선택이죠. 경제적 곤궁, 궁핍, 관계적인 궁핍도 있고요. 그런 분들이 목을 매거나 추락하거나 하는 그 극단적 선택 신고가 너무나 많은 거예요. 그 지역 내에서.
진행자: <일요시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죽음의 격차에 대해 물었습니다.
먼저 ‘죽음에 격차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57.6%가 ‘격차가 존재한다’고 답했고, 26.3%가 ‘존재하지 않는다’, 16%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격차가 존재한다’고 답한 비율은 전 연령이 과반을 넘었습니다.
해당 설문의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 시민들도 분명 격차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과연 이곳에서도 ‘죽음의 격차’는 존재할까요? 미국 시카고 쿡 카운티 MEO에서 어시스턴트 법의관으로 재직 중인 송혜정 법의관은 말합니다.
송혜정 법의관(시카고 쿡카운티 MEO): 인종 문제가 심하니까 결국 소득 격차로 나타나거든요. 미국에서는...
사망 진단서를 쓸 때 그 사람의 배경은 대부분 가족들이 채워와요. 초안을 보면 이 사람 진짜 살기 힘들었겠다는 게 그 자체로, 이 사람 스토리 아무것도 몰라도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어요.
전형적으로는 ‘21세 흑인 남자, 교육 수준 중졸, 직업 노가다, 아빠는 밝혀지지 않음(불상), 엄마는 이름이 있고, 시신 확인하러 온 사람은 삼촌’ ‘아빠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젊은 흑인 아이가 중학교 다니다 말고 노가다 해서 총 맞고 죽었다’ 그러면 ‘아, 고생하셨다’ 이런 느낌이 들죠.
진행자: 죽음의 격차로 드러나는 소득의 격차. 이 격차는 실제 설문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전국 성인남녀 1016명 중 ‘죽음을 생각하는 편인가’에 대한 질문에 72.9%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언장이나 상속 등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단 27.9%만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과 소득이 높을수록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비율도 높았습니다. 즉, 소득의 격차가 애도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2022년 10월 21일, <일요시사> 취재팀은 고양시 소재 서울시립승화원을 찾았습니다. 이날 이곳에서 무연고 사망자가 된 고인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이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합니다. 이들은 어떻게 무연고 사망자가 됐을까요?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장사등에관한법률 제2조 16호에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 범위가 나와 있어요. 배우자부터 시작해서 직계비존속으로... 배우자, 자녀, 할머니 할아버지, 이런 식으로 내려오다가 마지막에 형제자매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조카, 이모, 삼촌, 며느리, 사위 이런 사람들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족이 아닌 거죠.
그러다 보니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 치를 이유가 없는 분들이 공영장례로 오시는 경우들이 생기는 거예요.
진행자: 많은 조문객이 방문하는 시끌벅적한 장례와 달리 비교적 수수하게 진행되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사뭇 대조적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장례 모습만큼이나 장례 금액에도 큰 차이가 있었는데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장제급여는 80만원, 반면 지자체의 장례대행업체가 요구하는 최소금액인 160만원과 2015년 기준 평균 장례비용이 138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요. 제도적인 기준에 부합해야 되고, 두 번째는 경제적인 기준에 부합해야 해요. 시장에서 요구하는.
그 두 가지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이 무연고 사망자가 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죽음 이후에 격차가 분명히 존재하는 거죠.
김새별(유품정리사): 저는 장례지도사를 오래 했잖아요. 그때도 많이 느꼈어요. 가난하신 분들은 대체적으로... 관계가 좀 소홀했던 분들, 그런 분들은 빈소를 차리지 않죠. 손님을 안 받아요. 돌아가신 분이 좀 여유가 있으셨던 분들은 자식들도 여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손님이 굉장히 많죠. 줄 서서...
조윤환 대표(고아권익연대): 저는 원래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장례, 죽음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익숙하지 않아요. 우리는 장례를 치르지 않으니까. (보통)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등 장례식을 보잖아요. 근데 우리는 못 봐요. 우리는 누구도 장례를 치를 게 없고, 장례문화도 잘 몰라요.
이번에 고아권익연대 하면서 알게 됐는데, 제가 잠깐 느끼는 바는 ‘위로 받고 가느냐’ 아니면 ‘쓸쓸히 가느냐’(인 것 같아요).
장례가 화려하냐 화려하지 않느냐 차이는 고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요. 고인이 볼 때 화려한 장례보다도 위로받는 장례' 원할 것 같아요. 근데 특별히 고아는 그런 정서적인 애도가, 갈 때도 너무 차이가 나요. 죽을 때도 선택할 수 없죠.
진행자: <일요시사>는 그동안의 취재를 바탕으로 죽음 너머에 분명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건, 이것이 생의 격차인지 죽음의 격차인지를 정의하기에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격차들은 ‘고독, 무연고, 고립’이라는 단어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감정은 아니었을까요?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아마 (사망자)대부분이 어떤 관계라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걸 우리가 죽은 이후에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연고 사망자라고 낙인찍는 거니까.
무연고 사망자를 ‘외롭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 ‘불쌍한 사람’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돌아가신 고인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강현욱 교수(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 얘기는 삶이라는 얘깁니다. 과정이니까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어떤 과정에서의 격차는 존재한다.
윤창륙 교수(조선대학교 법치의학과): 근데 이 격차는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제3자인 우리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살아 있을 때 여러 가지를 풍성하게 가진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도 그만큼 대우를 받는다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죽음의 격차가 아니라 생전의 격차다.
김윤신 교수(조선대학교 법의학교실): 사람의 삶이 다 다른 것처럼 죽음의 모습이 다른 것이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다.
강현욱 교수(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삶 자체에서의 격차는 있을지언정 죽음 자체는 그 죽음만을 보자면 격차가 없다. 그게 공정하게 격차가 없기 때문에 삶의 의미가 똑같이 부여되는 거죠.
김윤신 교수(조선대학교 법의학교실): 다만 그 죽음이라는 결과를 그 차이가 차별로 비치도록 만드는 일은 만들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해봤습니다.
진행자: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것. 누군가의 평범한 죽음을 격차로 만드는 건 어쩌면 살아있는 우리들이 아니었을까요? 끝으로 도서 <죽음의 격차>의 저자 니시오 하지메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니시오 하지메 교수(일본 효고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법의학이란 것은 일반인들과는 크게 접점이 없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법의학자와 관련이 되는 것 자체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므로 가급적 제 책을 재밌게 읽는 정도로 즐겨 주시고, 법의학자와 그다지 관련성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행자: 죽음, 과연 그 자체에 격차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시청자 여러분께도 묻습니다. 죽음에는 격차가 있습니까?
취재팀: 장지선
사진팀: 고성준/박성원
영상팀: 배승환/김희구/강운지/김미나
프로젝트: 죽음의 격차 (죽어서도 차별받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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