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봐도 뻔한 한미정상회담, 왜?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용산이 뚫렸다. 그것도 동맹국으로부터. 사상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의 대응은 미국을 옹호하는 꼴이다. 또다시 위조, 괴담, 거짓으로 몰아간다. 겉으론 동맹이 여전히 굳건하다고 말하지만, 여러 난제들이 존재한다.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선물 꾸러미를 한가득 가져올 수 있을까?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예상치 못했던 돌발 변수가 생겼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매체들은 미국 국방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기밀문서가 SNS를 통해 유포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민감한 지역 정보가 담겼다는 내용이다.
별일 아니다?
100페이지가 넘는 문서 대부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 동향과 관련돼있다. 이 중 한국과 관련된 문건을 더 비중있게 다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해 입수한 정보를 작성한 문건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공개된 문건은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이는 탄약을 미국에 공급할지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잇따라 사퇴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이문희 전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 등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의 댓가로 무기를 지원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문건에 나오는 정보의 출처는 시긴트(신호 정보)다. 시긴트는 위성, 특수장비 등을 이용해 정보를 가로채는 방식이다.
도청 문제가 터지면서 용산 대통령실 졸속 이전 문제가 다시금 수면으로 떠오르는 형국이다. 앞서 윤석열정부는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기겠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도청 우려 목소리가 제기됐다.
최근 도청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유출된 문건도 대부분 조작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박진 외교부 장관의 입장은 대통령실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박 장관은 “확인한 바 없다”면서도 “명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의혹이라고 밝힌 대통령실과는 달리, 도청이 아니라고 못 박지는 않은 셈이다.
미 국방부발 기밀문서 유포
대통령실 도청해 입수 정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갖고 (도청)했다는 정황이 없다”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문건 유출은 인정하면서도 왜 내용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도청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의 과거 도청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실제로 주요 동맹국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도청이 이뤄져왔다. 한국도 그 대상국에 포함돼있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도 미국이 도청을 해왔던 게 드러났던 바 있다. 당시 한미 관계가 크게 악화가 된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번 도청 사건으로 앞으로의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큰 영향을 줄 요소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여러 비판들이 쏟아진다. 해당 사태서 주목할 점은 미국이 과거보다 강하게 부인하지 않는다는 지점이다.
한 외교 분야 전문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만 대통령실을 도청한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다른 나라들도 충분히 (도청)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쉽게 뭉갤 일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도청 논란은 정치권까지 확전돼 치열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1차장의 발언을 들어 미국에 강력하게 항의하지 못했다며 압박에 나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한일정상회담 시즌2가 돼선 안 된다. 실질적인 성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통령실은 “동맹이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 외견상으로는 미국도 한미 관계에 이상이 없다는 식의 마무리로 갈등을 잠재우는 분위기다.
“피해자가 가해자 옹호하는 격”
“주도권 쥘 능력 있는지도 의심”
그동안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 중 가장 큰 긍정 평가 요소는 ‘단호한 대응’이었지만, 이번 도청 논란을 통해 이 같은 기조마저 깨진 게 아니냐는 우려 목소리도 감지된다. 게다가 대통령실이 그냥 덮어 넘기기 식의 대응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괜찮다’는 선에서 그칠 경우, 도청 논란에 대한 진상을 밝히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탓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요구할 사안들을 미리 파악하기 위함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껏 대통령실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조문 논란 ▲미 하원의장인 펠로시 의장 패싱 논란 ▲한일정상회담 등 외교서 눈에 띄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논란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도청 논란으로 이제는 한미정상회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주요 외교 일정만 생기면 한국 정부는 회담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쩔쩔 맸다는 냉혹한 평가도 나왔다. 한일정상회담서도 성과보다는 후폭풍만 거셌다.
다행스러운 지점은 한국의 포탄 10만발 수출과 관련해서는 꾸준히 보도가 나왔고, 미국서도 지속적으로 압박을 해왔던 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외교 전문가들은 유출된 내용이 최소 몇 달 전이나 지난해 나눴던 대화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수가 읽힐만한 카드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가올 한미정상회담에서는 2차 전지, 미국의 인플레이션 방지법, 반도체법 등으로 우리 기업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협상의 주도권을 쥘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도청은 미국이 가해자고, 한국은 피해자다. 최소한 미국에게 옹호하는 태도를 취했으니, 외교에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브 앤…
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도청 사건을 통해 뭔가를 한국에 줘야 한다는 식의 카드로 이용한다면 다행”이라면서도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 카드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사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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