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뇌물’ 곽상도 무죄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위기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부실 수사 논란까지 일고 있다. 비판을 의식한 검찰은 공소 유지 인력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다. 재판부에서 녹취록과 진술 등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았기에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물적 증거가 필요한 상황이다.
재판부는 대장동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취록’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 등이 한 주장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난감한 분위기다. 내부서조차 같은 혐의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법리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의미한 진술이라고는 하나 쌍방울·대장동·성남FC 의혹을 뒷받침할 근거가 간접 증거라는 게 검찰에겐 치명타다.
비상식 판단
이례적 무죄
검찰은 지난 13일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곽 전 의원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유죄 판단에 항소장을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후 곽 전 의원의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에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1심 판결 중에 제반 증거와 법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사회통념과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항소심서 적극적으로 다툴 방침이라고 밝혔다.
곽 전 의원은 2021년 4월 화천대유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아들 병채씨의 퇴직금과 상여금 명목으로 50억원(세금 등 제외 25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곽 전 의원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50억여원, 추징금 25억원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지난 8일, 50억원이 알선 대가나 뇌물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재판부가 ‘곽상도 부자(父子)가 경제적 공동체가 아니다’는 이유로 뇌물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런 논리가 사회통념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곽 전 의원 부자의 금전 지원 관계, 자금관리 현황을 보면 두 사람의 경제적 공동체를 부인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항소심서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또 관련자들의 일관된 진술에도 재판부가 하나은행이 성남의뜰에 참여할 컨소시엄을 이탈하려는 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봤지만 이는 증거관계 판단 오류라고 주장했다. 성남의뜰은 2015년 대장동 일당의 화천대유와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성남도시개발공사와 대장동 사업 시행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검찰은 곽 전 의원이 이 컨소시엄이 와해하지 않게 도움을 준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판단했는데, 재판부는 김씨가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로 위기 상황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검찰이 판단한 전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대장동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녹취록 중 일부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 ‘전문진술’이라며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은 점도 반박할 계획이다. 김씨가 법정서 당사자들끼리의 대화라고 인정한 부분, 즉 전문이 아닌 부분도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아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다.
“뇌물로 볼 여지 있다”며 “아들 경제적 공동체 아니다”
검찰 전제 자체 무시…김만배 주장 신빙성도 인정 안 해
이원석 검찰총장은 선고 이튿날인 9일,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1심 판결 분석 내용과 향후 계획 등을 대면 보고받고 엄정 대응을 당부했다. 공판팀장인 유진승 국가재정범죄합수단장에게도 공판 업무에 만전을 기할 것을 대면 지시했다.
송 지검장도 이날 오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던 1차 수사팀 4명으로부터 판결 분석 결과와 향후 공소 유지 계획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는 고형곤 4차장검사와 강백신 반부패수사3부장이 배석했으며, 공소 유지 대책과 ‘50억 클럽’, 곽 전 의원 아들 고발 등 관련 사건 수사 방향을 논의했다.
이는 ‘뇌물 무죄’ 판결 뒤 가열되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50억 클럽엔 곽 전 의원 외에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별검사,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수남 전 검찰총장, 홍선근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회장 등이 거론된다. 곽씨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송 지검장의 지시는 곽씨가 받은 퇴직금 50억원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에 일고 있는 국민적 공분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곽 전 의원 항소심 재판에 인력을 보충하고 반부패수사3부에 배당했던 이 대표의 ‘정자동 호텔 특혜 의혹’ 사건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돌려보냈다. 곽 전 의원의 무죄로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 수사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수원지검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 안팎에서는 곽 전 의원에 대한 기소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견해가 나왔다. 1심 때처럼 곽 전 의원의 아들이 받은 50억원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과 동일시해 뇌물수수죄(형법 129조 1항)를 적용하는 대신 제3자뇌물제공죄(형법 130조)로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뇌물수수죄 법리를 배척했다. 공무원이 ‘다른 사람’에게 금품을 받게 한 경우 ‘평소 공무원이 그 다른 사람의 생활비 등을 부담하고 있었거나, 그 다른 사람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서 그 다른 사람이 뇌물을 받으면 공무원은 그만큼 지출을 면하게 되는 경우’에 공무원이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는 판례에 따른 판단에서다.
인정 못 받은
진술 신빙성
그러나 이 같은 판례에 따라 공무원이 처벌된 사례는 드문 편이다. 검찰은 2015년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뇌물수수’ 사건서 STX가 정 총장 장남이 33% 지분을 보유한 요트 회사에 건넨 7억여원의 후원금을 정 총장에게 준 뇌물로 보고 기소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은 대법원서 최종 무죄 판단을 받았다. 결국 검찰은 파기환송심서 죄목을 제3자뇌물제공죄로 변경했다.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을 알면서도 검찰은 공소장 내용을 변경하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아들 곽씨가 받은 50억원이 곽 전 의원에게 지급됐다고 볼 수 있는 게 상식”이라며 “추가 수사를 통해 법리구성 논리를 제대로 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검찰은 아들 곽씨를 뇌물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검찰이 제3자뇌물제공죄로 수사 방향을 틀어도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뇌물수수의 경우 대가성이 포괄적으로 인정되지만 제3자뇌물죄는 구체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점이 추가로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가 판결 당시 “호반건설 회장이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컨소시엄 합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하나은행이 참여하는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와해 위기’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점도 검찰의 어깨에 짐을 더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1심 재판부서 이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뇌물공여자와 수뢰자의 상호인식조차 인정되지 않아 묵시적 청탁으로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포괄적 대가성을 인정하는 뇌물수수 혐의를 그대로 끌고 가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8일과 지난 10일 이 대표를 소환해 대장동·위례 사건 혐의에 대해 추궁했다. 당시 검찰은 각각 150쪽, 200쪽에 달하는 질문지를 바탕으로 이 대표가 결재한 자료까지 제시하며 압박했고, 이 대표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한방 필요
“추가 수사”
이 대표의 입장은 1차 조사에 출석하면서 검찰과 언론에 공개한 33쪽 분량의 진술서에 담겨있다. 대장동 사업으로 성남시에 손해를 입히지 않았고, 시의 내부정보가 민간업자들에게 흘러갔다고 해도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측근들이 지분을 약속받았다는 천화동인 1호 의혹에 대해서도, 자신은 천화동인 1호의 존재 자체를 언론 보도 전까지 알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지난 16일 이 대표에 대해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선 배임과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특혜 의혹으로는 부패방지법 위반,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대해선 제3자뇌물죄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에게 성남시와 공사의 내부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등 화천대유가 포함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장동 사업을 통해 민간사업자는 배당금 4054억원 등 7886억원을 수익으로 가져간 반면에 성남시와 공사는 1822억원의 고정이익만 받아갔다. 검찰은 이 같은 수익배분 방식을 설계한 최종 승인·결재권자가 이 대표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조사는 어느 정도 정리됐지만 여전히 규명이 필요한 부분들이 남아 있다.
반부패수사1부에선 ‘대장동 키맨’으로 불리는 김씨의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해 계속 수사 중이다. 검찰은 김씨가 측근인 최우향(전 쌍방울그룹 부회장) 화천대유 이사와 이한성 공동대표에게 대장동 개발수익 275억원을 은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이사와 이 대표를 먼저 재판에 넘긴 검찰은 최근 김씨를 여러 차례 불러 대장동 개발 배당금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검찰은 자금흐름 추적이 대장동 수사의 또 다른 갈래인 50억 클럽 의혹 수사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영학 녹취록’ 증거 인정 안 돼도 뇌물죄 직진?
“제3자뇌물죄” 목소리…부정 청탁 입증 더 어려워
민주당에 이어 정의당이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까지 포함한 ‘대장동 특검법’ 추진에 힘을 싣고 나섰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과 대장동 특검을 병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캐스팅 보트’를 쥔 정의당이 정쟁요소가 상대적으로 덜한 대장동 특검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회 논의가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정의당은 지난 11일, 의원단·대표단 연석회의를 열고 이튿날(12일) 대장동 특검 추진을 당론으로 정했다. 곽 전 의원 사건을 포함해 정·관계 인사들이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들에게 거액을 약속받았다는 ‘50억 클럽’ 의혹을 특검으로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회의서 “곽상도 아들의 50억 황제 퇴직금 무죄 판결로 촉발된 대장동 50억 클럽에 대한 온갖 의혹의 해결을 위해 국회 차원의 특검은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검찰은 개미투자자들의 돈을 빼앗아 이득을 챙기는 주가조작에 ‘김건희 특검’을 추진하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제대로 된 소환수사로 이번 사건에 대해 명백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철저한 검찰 수사 먼저’를 강조하면서 ‘김건희 특검’에는 일단 선을 그은 것이다. 민주당이 검찰의 이재명 대표 수사에 맞불 형식으로 김 여사 수사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대장동과 김 여사 의혹을 ‘쌍특검’으로 추진하면 ‘이재명 방탄론’과 맞물려 정쟁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게 정의당의 판단이다.
김희서 정의당 대변인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서 “국민적 의혹이 밝혀져야 하는데 정쟁으로 사라져버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적 눈높이서 어떻게 풀어낼지가 정의당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 도입을 위해선 정의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회법이 규정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통해 법사위를 우회해 본회의로 특검법을 올리려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이 뜻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169석, 민주당 계열 무소속 5석에 정의당 6석을 보태면 꼭 180석이 된다.
야권이 ‘대장동 특검’에 힘을 합치는 모습이지만, 수사 범위를 놓고는 조율이 필요하다. ‘50억 클럽’ 의혹에 집중하자는 정의당과 달리 민주당은 지난해 3월 당론으로 발의한 대장동 특검법에서 ▲이 대표가 연루된 대장동 개발 과정 전반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맡은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봐주기’ 수사 의혹 ▲윤 대통령 아버지 자택 매입 의혹 등을 두루 망라했다.
곽 판결과
상관관계?
정의당 측은 “50억 클럽을 수사하다 보면 여타 의혹들을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특검법 발의 과정서 수사 범위를 놓고 지나치게 정쟁화하는 것은 배제하려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50억 클럽 특검’ 도입에 대해서는 큰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박영수 전 특검을 언급하면서 우리 당의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지도부와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50억 클럽만 놓고 본다면 크게 거부할 의원들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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