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들 등친 사기사건 전말

한국뉴스

과부들 등친 사기사건 전말

일요시사 0 1268 0 0

할매들 울린 못된 ‘할배 카사노바’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2011년 개봉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 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려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2013년 현실판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어느 60대 카사노바의 구속으로 씁쓸한 결말을 맞았다. 이 카사노바로부터 억대 사기를 당한 피해 여성들은 경찰 조사에서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들을 상대로 거액의 금품을 뜯어낸 60대 카사노바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23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외로운 처지에 놓인 60∼70대 여성 7명을 유혹해 5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최모(64·무직)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외로움 이용

경찰 등에 따르면 최씨는 서울 송파구를 비롯해 경기 하남·화성, 강원 태백 등 전국을 누비며 사기 행각을 벌였다. 최씨에게 속은 피해자들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돈을 최씨에게 건넸다.

최씨는 165cm의 작은 키에 비교적 평범한 얼굴의 소유자이면서 호탕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그를 만났던 여성들은 한결같이 최씨가 시원시원한 화술을 구사했다고 진술했다.

최씨는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여러 명의 여성과 동시에 교제했다. 현재까지 피해자로 드러난 할머니만 모두 7명. 사건 경과를 지켜봤을 때 수사 과정에서 최씨의 여죄가 드러날 가능성도 낮지 않다.

피해 할머니 A(72)씨는 최씨에게 2억4000만원을 건넸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2009년 10월 서울 송파구 한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A씨는 자신에게 다가온 최씨를 운명으로 믿었다.

이 자리에서 최씨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서로 의지하자”며 A씨에게 접근했다. 취기가 오른 최씨는 "자식들 있어봐야 무슨 소용 있나.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등의 말로 A씨의 환심을 샀다.

남편과 사별한 A씨는 외로워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타난 최씨에게 A씨는 마음을 열었다. A씨가 호감을 갖자 최씨는 거칠 것이 없었다. "머물 곳이 없다"는 말로 운을 띄웠다. 최씨와 A씨는 동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A씨의 돈이 목적이었던 최씨는 곧 본색을 드러냈다. A씨의 명의로 된 아파트를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아야 한다고 A씨에게 요구했다.

A씨는 최씨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2억7000만원을 덜컥 대출받았다. 그러나 최씨는 이 가운데 2억4000만원을 챙긴 뒤 잠적했다. A씨는 연락을 취했지만 닿을 방도가 없었다.

이 무렵 최씨가 향한 곳은 강원도 정선에 있는 한 카지노였다. 그는 A씨에게서 받은 돈으로 도박을 했지만 모두 탕진했다. 돈이 다 떨어진 최씨는 또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서로 적적한 처지인데 의지하며 살자"는 수법은 동일했다.

하지만 최씨의 정체는 사기꾼이었다. 그는 사기죄로만 모두 네 번의 실형을 살았으며, 유흥비 마련을 위해 여자를 만날 뿐이었다. 최씨는 피해 여성들을 만나면서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속였지만 실은 사업장은커녕 주거지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최씨는 주로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필요할 때만 여성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돈을 챙긴 뒤에는 연락을 끊었다.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한 행위였다.

60∼70대 여성 7명에 5억원 가로채
호탕한 성격과 시원한 화술로 유혹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경찰은 최씨가 서울 중랑구에 있는 한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빌려간 사실을 확인했다. 잠복에 들어간 경찰은 추적 끝에 지난 3일 경기 하남에 있는 한 모텔에서 그를 체포했다.

수사 결과 대부분의 피해 여성들은 남편과 사별한 독거노인이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고 있지만 이처럼 상대방을 유혹해 사기를 치는 경우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물질적인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피해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데 최씨는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다. 5억원이나 되는 돈을 탕진해 놓고도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에서 최씨는 "(여성들에게) 좀 얻어먹기는 했지만 돈은 빼앗아 쓴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또 피해 할머니와의 대질 신문에서도 "XX년아, 내가 언제 그랬어"라며 호통을 쳤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지난 26일 경찰은 "피해 금액이 큰데다 반성하는 기색이 없어 구속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 경찰 관계자는 "최씨의 경우처럼 노년층을 노린 사기 범죄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60세 이상 1인 가정은 120만 가구를 훌쩍 넘었다. 독거노인 가정이 보편화면서 노년층만을 노린 악질 범죄도 비례하여 증가하는 상황이다.

모텔서 체포

하지만 범죄를 예방할 또렷한 해법이 없다는 건 국가와 가정이 함께 안아야 할 숙제다.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은 지능범죄의 주 타깃이 됨은 물론 피해를 당해도 범죄 사실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 있다.

이 같은 배경으로 지금 대한민국에선 '제2의 최씨'와 '제3의 최씨'가 혼자 사는 할머니를 노리고 있다. 뻔뻔함으로 무장한 카사노바에 속지 않는 것만큼이나 가족 간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