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0); 세례를 받은 우리는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0); 세례를 받은 우리는 <로마서 6:3~5>

일요시사 0 62 0 0

세례는 한 마디로 물을 이용한 정결예식입니다. 우리가 몸이 더러워지면 물로 씻습니다. 이러한 물의 이미지를 가지고, 세례예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죄악됨을 씻어냄으로 정결함을 얻게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습니다. 또한 세례에는 다시 태어남의 의미도 있습니다. 영적 거듭남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습니다.이처럼 세례에 있어서 중요한 매개체는 물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물은 처음에는 혼돈이었습니다. 노아시대의 물은 죄악된 세상을 향한 심판입니다. 출애굽에서의 홍해는 종의 멍에를 끊고 자유를 이루는 길이 되었고, 요단의 강물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와 축복의 성취가 되었으며, 요한계시록에 이르러서는 생명의 역사와 더불어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나님나라의 실현으로 완성됩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 믿음을 갖기 이전에는 혼돈의 삶이요, 죄악 속에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죄 사함의 세례를 통해 영적 자유함을 얻게 되었고, 믿음의 삶을 통해 축복의 땅, 약속의 성취를 이루게 되었으며, 이후에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가 흐르는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이 길을 걷고 있는 줄 믿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모든 구원의 역사가 그 안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각자의 삶에 합당한 주의 은혜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은 되새기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분들이나 이미 이전에 세례를 받은 분들이나, 앞으로 세례를 받게 될 분들이나, 우리 모두 세례에 담겨진 영적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죄의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죄의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 그 속에 담긴 물의 이미지는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그 세상을 심판하셔야 했는가? 죄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의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본문 3절에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으면, 예수님의 죽으심에도 함께 동참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죽으셨나요? 나의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죽음 뿐입니다. 죄를 해결해야 하는데, 방법은 죽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사람이 죄를 지으면 내 죄를 양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그리고 나 대신 양을 죽입니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양이 대신 죽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죄로 내가 죽어야 하는데, 우리들의 죄로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내 죄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선포하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이걸 본문 3절에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순간, 나는 죽는 것입니다. 내 죄가 사라집니다. 그러면 이제 죄의 길에서 완전히 떠나가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들은 죄의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로서, 죄의 길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죄에 대하여 죽으신 그 희생의 사랑을 기억하며, 결단코 죄의 길을 떠나 의의 길로만 걸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생명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생명의 길로만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럼 죄가 뭐길래, 그 죄를 사해주시고자 생명까지 바치셔야 했나요? 죄라는 걸 그냥 두면 안되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죄의 삯은 사망, 죽음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죽임당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당연하게도 생명의 길입니다. 본문 4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이제 새로운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본문에서 이어지는 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았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끝이 아니라,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은 우리 역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이기에 생명의 길을 걸어감이 마땅합니다. 


그럼 생명의 길이 어떤 길인가요? 예수님을 따라 가는 길이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생명의 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라.”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 되시기에 예수님을 먹여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생명의 길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날마다 생명의 길로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주의 말씀 따라 순종하는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좁은 길이라고 할지라도 주의 인도하심 따라 걷는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죽음의 길처럼 보일지라도 주님과 함께 죽는 길이라면 그 길이 생명의 길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의 문이 열려지는 저 천국까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생명의 길로만 걸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죄는 관계성을 파괴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그뿐인가요? 아담이 하나님께 항변하죠. “하나님께서 주신 저 여자가 나에게 선악과를 줘서 먹었습니다.”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툼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깨어집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나요? 연합을 말씀합니다. 연합은 관계성의 단절이나 깨어짐이 아니라, 회복을 통한 하나됨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다시 말해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면...” 이게 바로 연합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위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가 연합됩니다. 본문 5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죽으심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연합한 자가 될 때에, 예수님의 부활에도 연합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연합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죽는 것도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도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례는 구원의 과정에 있어서 거의 처음 단계입니다. 그 다음은 성화, 거룩함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인의 완전, 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더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 영광스러운 부활의 주님과 같은 모습,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예수님과 완전하게 연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 구원의 최종 완성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 지금 이 시간 예수님과 연합한 자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매 순간 “예수님이라는 어떻게 하실 것인가?” 마음에 질문하면서 기도하면서 주님 닮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그것이 곧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날마다 주님 닮아가는 영적 성숙과 성장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932b8d4681679c5f1f528de0fac0b5c4_1757380848_302575.jpg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