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46)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골로새서 2:6~7>
어떤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기독교인은 구원 보험을 가입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약관을 잘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여러분!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을 고백하는 자, 구원의 자리에 서게 됨을 꼭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걸로 끝인가요? 그 다음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건가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는 길로 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약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도 주일마다 예배 잘 드리잖아요. 교회에서 봉사도 하잖아요. 내게 주어진 사명도 열심히 감당하고 있잖아요. 누가 봐도 “그리스도인”이잖아요. 그런데 과연 그 속에 뜨거운 신앙의 열정이 있는가? 주를 향한 간절한 사랑이 담겨 있는가? 혹 그저 습관적인 모습, 의무적인 신앙은 아니었는가?자신있게 자부하는 것,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오늘 바울은 골로새교회 교인들을 향해 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너희가 예수님을 주인 삼았다고 한다면.” 그에 합당한 신앙의 모습,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모든 신앙의 고백들에 동의하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같은 신앙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자입니다. 그럼 그에 합당한 삶의 모습이 내 마음에도, 내 생각에도, 내 말에도, 내 행동에도 있어져야만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그런 말씀을 전했죠. “내 안에”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따라서 내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로서”,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주님 안에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6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예수님을 주인 삼은 자로서, 그 안에서 행하라. 다시 말해 주님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울타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사건을 통해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시는 것이 이겁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 그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사실입니다.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십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십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십니다.그렇게 40년의 시간을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그 전에는 모세 앞에서 “못 들어갑니다. 안됩니다.” 울며 탄식하며 원망하던 백성들이었는데, 이제는 여호수아를 앞세우고 담대하게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고백합니다. “우리도 당신처럼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주님 안에 거함이 은혜요, 축복이요, 생명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녀들은 어린시절에는 누구나 다 빨리 커서 독립하길 바랍니다.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서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정작 나이가 들어 정말 독립을 하고, 또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나면, “이게 참 쉬운 일이 아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 거하고 있을 때가 참 평안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따라서 울타리라는 것이 나를 옭죄는 장벽이 아닙니다.나를 가둬두는 속박이 아닙니다. 한 심리학자가 울타리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을 실험합니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관찰해보니까, 울타리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기본이 무엇인가요? 내 자리를 잘 지키는 거죠.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믿음의 형제자매로서 서로에게 영적인 울타리가 되는 것, 뉴질랜드광림이라는 신앙의 공동체 안에 거하고 있는 것, 이 사실이 참 귀한 것입니다. 이 속에서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말씀듣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협력하고, 함께 위로하고, 함께 도와주고, 함께 누려가고... 나아가 이 모든 기쁨과 평안을 또 함께 세상에 나누어가는 것, 그게 바로 주님 안에 살아가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언제나 내 삶의 주인되시는 주님 안에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믿음의 견고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전에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한번은 한 의뢰인이 한문 초서로 쓰여진 조선시대 고문서를 들고 나와서 감정을 의뢰했습니다.사회자가 감정의원에게 묻습니다. “이게 어떤 문서입니까?” “노비문서입니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출연자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 방송이 나간 이후에 인터넷에 의뢰인이 노비집안이었다는 이야기들이 떠돌았습니다.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노비문서는 노비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비를 사고 판 주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거죠.의뢰인은 자신의 집안이 확실한 양반가요, 상당한 집안이었음을 자랑하게 됩니다.
지금은 그래도 좀 덜한데, 예전에는 가문에 대한 관심이 참 많았습니다.자신이 속한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신앙의 뿌리입니다. 내 믿음의 뿌리를 견고하게 내리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말씀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이 모든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믿음의 견고함입니다.지난 번에 말씀드렸죠. 초대교회 바울이 각 서신들을 교회에 발송할 때의 상황은 로마의 압제와 박해로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큰 문제가 있었으니, 이단 사상의 도전이었습니다. 압제와 박해라는 고난의 문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영적인 문제가 함께 공존합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이 믿음의 견고함입니다.설교준비를 하면서 뉴스를 보는데, 오늘이네요. 오늘 저기 대구에서 신천지 수료식을 한다는 기사가 떴습니다.이단의 문제, 참 심각하죠.우리는 저들을 보면서 그렇게 말하죠. “도대체 왜 저런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가?” 역사학자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기존 종교가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기독교가 1,80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 유럽을 넘어 그 세력을 더 이상 확장해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기독교인들이 초기 기독교인들이 보여주었던 그런 모습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로마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이해보였습니다. “대단해 보였다.”가 아니라, 기이해보였습니다. 왜요?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나누거든요. 노예까지 평등으로 대하거든요.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이타적인 사랑을 행하거든요.하지만 지금의 기독교는 그러한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왜요? 믿음의 뿌리가 흔들린 것입니다.나무 한그루가 심겨져도, 그 나무가 뿌리를 견고히 내리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도, 폭풍우가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나무 주변으로 그 나무들이 또 퍼져나갑니다. 우리도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신앙의 뿌리를 견고히 내리고 있으면, 어지간한 시험과 유혹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날마다 믿음의 견고함을 더욱 잘 세워감과 더불어,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감사함이 넘쳐나야 합니다.
본문 7절 마지막에 말씀합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아주 짧은 한 문장입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지만 이렇게 짧은 문장임에도 중요한 것은 “감사함이 넘쳐나는 것”이 바로 결과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 믿음의 견고함을 세워가는 것, 그 삶의 결과가 바로 감사가 넘쳐나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신다. 그러면 내 삶에 감사가 넘쳐납니다.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감사가 늘 넘쳐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동기 부여전문가인 지그 지글러는 감사와 행복에 대해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행복의 열매가 된다.”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감사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 감사입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정말 많이 사용하지만, 실제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그래서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은 이런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다. 감사할 게 없다고요? 참기름 짜듯이 쥐어짜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감사한 일들이 떠오를 겁니다.” 이처럼 감사는 주어진 상황에 따른 반응이 아니라, 나의 의지가 담긴 해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주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의 견고함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삶에는 감사가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고백 가운데, 그에 합당한 참된 그리스도인, 구원 받은 주의 자녀로서의 바른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