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문화회관 "BOD 위원께"라는 네티즌 '챨리'의 질문에 대한 박성훈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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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문화회관 "BOD 위원께"라는 네티즌 '챨리'의 질문에 대한 박성훈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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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 위원께

BOD 위원들께 (한인임시총회(2013년 11월 29일)를 다녀와서)

감사합니다.
이번 임시총회는 조금만 시간을 두고 바라본다면, 참 긍정적이라 평가될것입니다.
왜냐하면 한인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애정어린 관심 그 속에는 많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 에너지로 앞으로 아주 큰 일들을 많이 이루시길 기대합니다.

제가 이민온 1995년 오클랜드에는 한글학교만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시던 분이 돌아가시면서 상당한 기금을 내놓으시겠다던 유언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기억됩니다. 얼마후 새로운 학교 한민족학교가 생겼습니다. “왜 한글학교가 2개가 생겼느냐? 뉴질랜드 정부 혹은 한국정부가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 말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분열된 모습 때문에 도움을 신청할수도 받을 수도 없게 생겼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 점을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려에 불과 했습니다. 이 두 학교는 서로가 선의의 경쟁을 하듯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고 봉사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이 욕심이 아닌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이 이 두 학교는 멋지게 맡은 일들을 해내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신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5년 제가 한국으로 다시 가서 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선배회사에 투자하였고 그 선선배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고 그곳에서 1년간 일했습니다. 그후 선배와 뜻이 맞지않아 전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투자금의 회수를 위해 당분간 더 한국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제 나이 그 때 44세….. 이곳 저곳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40중반의 사람을 써주겠다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식당에서 설것이도 안시키더군요. 제가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럴바에야 나를 위해 유익한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몇 년동안 하고 싶어 해왔던 소셜댄스를 배우기 위해 첫발을 디뎠습니다.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왜 진작 안했나” 싶을 정도로…ㅎㅎㅎ
그런데 이곳에서도 분열이 발생하였습니다. 엄청 잘되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아리 회장과 몇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분들이 의견을 달리했습니다. “회장중심의 운영이 아닌 위원회중심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종래에는 기존의 동아리가 쫒겨나가서 새로운 장소에다 터전을 닦았습니다. 분명이 이제 갓 입문한 저와 우리동기에게는 불안한 모습으로 보였고 안타까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지난 10월 고국에 다녀오면서 두 단체가 아주 잘 운영되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화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화합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린 어떻해야 하나요? 화합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겠다 판단이 되었을땐 미련갖지 말고 같은 뜻을 가진분들과 새로운 단체를 만들고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에너지를 각자의 방향에 힘을 쏟아서 여러분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 양쪽이 다 맞기를 간절이 소망합니다.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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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an
2013-11-30 11-34

 
챨리님!, 그리고 바로 전줄의 Jaye, Come Back 님의 진심어린 교민(사회)사랑 마음의 글들을 보고, BOD 전위원들을 대신하여 제 자신부터 잘못된 점 깊이 반성하며 답글을 공개로 올립니다.

요즈음의 한인회와 BOD(Board of Directors)의 사태는 태동때부터 이미 많은 불안정한 위헙성을 안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치 않았어야 할 한인문화회관 건립의 최고 공로자들지간의 소유권 분쟁이라는 덧씌우기 낙인까지 찍혀가며 교민사회의 혼선 분란은 일파만파하여 오늘(11월 30일)에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는 그사이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 교민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해 한인문화회관의 향방을 결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고 저는 봅니다.

한인(문화)회관 건립조직위원회가 발족된 2012년 9월 1일, 한인회란 이름으로는 불신이 팽배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한인문화회관 건립조직위원회' 라는 신선한 이름으로 '투명', '정직', '정확'을 모토로 하여 3개월간의 교민사회 설득(브리핑)과정을 거쳐, 홍영표전한인회장, 이형수공동위원장, 김성혁건립본부장의 솔선기부에 이어 당해 12월 중순에 제 자신이 미력한 힘으로나마 중간역할을 하여 한 일반인 교민부부의 $25,000 약정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한 일반인의 거금약정의 소식은 그 무엇보다도 일반교민 기부자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사이만도 허다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세계 각국 각지의 한인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는 진기록을 세우며 뉴질랜드 한인문화회관이 탄생했습니다.

문화회관 잔금 치르기 직전까지의 우여곡절의 산고 속에 마지막으로 3인간의 맹약 속에 결정적 역할을 하신 김성혁 건립본부장의 통큰 기부정신은 한인역사에 길이 남아 후대에 본이 되어야 할 고귀한 정신임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에 못지 않게 홍영표 당시 한인회장의 강인한 추진력, 이형수 공동의장의 기업인으로서의 청렴봉사 정신, 있었던 그대로를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본래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전제 하에, 저는 교민사회에 마지막 결미의 한인문화회관이라는 걸작품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신념으로 위 3인 사이를 수십 수백차례 오가며 각자마다의 최장점만을 추출해 내 한인문화회관 건립완성에 정열을 쏟아 부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자부합니다. 여러분께서 보시는 시각과는 달리 위의 3인, 현 김성혁 한인회장, 이형수 전 공동위원장, 홍영표 전 한인회장! 이 세 사람의 한인문화회관을 향한 근본 정신에 한치의 변함이 없음을 각자를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각자의 현위치 입장이나 주변상황과 우리 교민사회의 현실은 그것을 통합과 화합으로 엮어가기보다는 입에 담지 못할 상처뿐인 이별 쪽으로 본의든 아니든 유도해가는 모습에 너무도 슬프고 가슴이 아픕니다.

거기서도 저는 누구보다도 존경해 왔고 제 이름까지 걸어 한인회장 후보로 나선데 도왔던 현 김성혁 한인회장과의 피할 수 없는 입장차와 앙금의 골이 깊어진 게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한편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적당히 (내부적으로)타협
하여 제 자신을 낮춰 수그리면 그만일 걸 가지고서...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공익의 업무에 있어서는 '공과 사'가 뚜렷이 구분돼야 한다는 저의 철칙에다, 또 더 중요한 이나라의 기관, 사회공익단체, 환경단체, 지역위원회 및 각급학교에서 BOT(Board of Trustees)멤버로 두루 경험해 오며 겪은 그 속에서의 Trust 법에 근거한 엄격한 잣대의 법 정신이 뼈속까지 스며든 저로서는 적당한 선의 양보로 제가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고 아껴드리고 싶었던 그 분이 불행한 길로 방향잡아 가지 않으시기를 진정으로 애타는 마음으로 원했습니다.

사건이 불거지기 이전까지도 애소하여 부탁드리고 이민생활이래 온후한 제모습의 저답지 않은 무례한 태도의 모습까지 보여가며 정말 가지 않아야 할 길 가시는 걸 막아보려 했으나, 그 땐 이미 건너가시는 강 중심의 위험선까지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더이상 잡을 수 없는 곳까지 말입니다. 저는 이미 그분께 큰 도움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 악수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그것은 이미 때늦은 허례 인사로 느껴지신다는 사실에도 제 자신이 한편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어느 분의
말씀처럼 원만히 타협할 건 해서 일울 마무리 봉합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 그것은 얼마 안가 끊이지 않는 교민분란은 물론이요, 그보다 더 무서운 이나라의 Trust 법잣대가 더 우려 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일반 교민의 한사람으로 돌아와 어제밤 임시회의에도 참석해 거기에서 무언가 해결점을 찾아 제가 생각하는 특단의 방법론과 Vision 제시도 하여 교민 모두가 화합하고 악수 나누는 자리로 기대하고 참석했으나, 의장의 유고시에 대리 의장직을 맡아 진중하게 사회를 진행해야 할 임원(?)분의 미리 예행연습이라도 했는듯한 고압적 자세와 말끊기, 거기에다 일방적으로 내탓이 아닌 남의 탓돌리기 기선제압의 관중들 틈속에서는 저의 충정어린 메시지 전달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지에서인지 무모에서인지 이른바 공익단체 '한인회' 이름의 '임시총회'! 그것은 제가 수백차례 치른 현지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각설하옵고, 어른 공경사상을 천운의 자세로 지켜 예의를 갖춰야 할 그 자리, 92세 노인어르신부터 보고 배워나갈 어린 청소년까지 객장을 꽉 채워 모이게 한 그 엄숙한 자리에서 한인회장(의장)이 기본룰까지 어겨가며(나중에 지적을 받아 양해는 구했지만..) 고압적인 자세로 약속이나 했듯이 고압적인 자세로 임시총회의 주인들을 향해
손짓(삿대질?)하여 퇴장시켜라! 뭐라!.. 이 어이상실의 임시총회 현주소, 그리고
일방적으로 BOD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그나마 참석한 저라도 다른 전위원들을 대신해 발언권 겨우 얻어 사실은 이러했던 점도 있었다고 항변해 말했을 때, 최근에 공식고문으로 위촉됐다는 강xx씨가 손가락질하며 제 실명을 부르며 "(BOD와 함께) 사그라져 버려!" 그것도 교민 매체와 참석 교민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이렇게라도 공개글에 언급하지 않는다면 장차 한인문화회관 안방에 앉으셔서 그보다 더한 자세로 일반교민들에게 하늘찌를듯 할 것같은 느낌이 들어 이렇게 언급해서라도 교쳐주십사하는 저의 이례적 방법 용서하십시오.

기억에 제가 건립조직위 부본부장으로 있으며 교민 모금캠페인에 총력을 기울여 호소해온 이래 단 한푼도 거들지 않으셨던 그분이 어느새 12대 한인회 공식 고문에 위촉됐다고 한인회 홈페이지에 올려놓고서 이러시는 자세 저의 교민사회와 접해 활동해오며 마지막 말미 부분에 제게는 너무 아픈 상처의 깊은 인상을 남기셨습니다.

한인회장님께, 마지막 충언드리오니 깊이 새겨 시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그자리는 단순히 오가는 교민끼리의 모임의 자리가 아니었던 이상 최소한의 의식과 예의는 갖췄어야 합니다. 모두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 자리에는 92세 되신 노인어르신 한인회원에서부터 보고 배워나갈 청소년에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각계각층의 교민들이 참석한 임시총회의 자리였습니다. 그 엄숙한 객석 앞에 의자에 앉아 사회를 보다 참석회원들의 지적을 받아 서서 사회를 보라 했으면, 당장 잘못됐음을 시인하고 바로 일어섰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땧습니까?... 회의도중 재차 지적을 받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끝까지 앉아 보는 그런 사회자는 객장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던 소리대로 저도 그런 사회와 임시총회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의 한인회 사람들이 중심체로 움직인다면 무엇을 위한 한인회고, 어떻게 교민들의 신뢰를 얻는단 말입니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습니다....

결론으로, 한인문화회관의 향방! 한인회장과 임원이사들끼리의 결의에 의한 졸속 정관개정으로 서두르신다면 앞으로 재개정의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교민분란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것이 불 을 보듯 뻔하여 한인문화회관의 존립 자체마저 위험에 빠뜨릴 것입니다.

저와 나머지 몇 분의 전 BOD 위원들, 우리의 옥동자 한인문화회관이 두동강나
교민역사에 치유될 수 없는 크나큰 오점으로 남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래서도, 저는 사퇴로 그치는게 아니고, 두번 다시 한인문화회관에서 새로운
BOT가 됐든 기타 일체의 한인회 일에는 관여하는데 포기하겠노라는 선언을 했아오니,

교민들의 중지를 모아 누가 보아도 종교인 포함 중립적인 인사들이 한인문화회관의
향방을 결정키 위한 하나의 모임체를 구성해 교민들의 중지를 모아 자손대대의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기대합니다.

2013년 11월 30일

교민 박 성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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