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 4 ‘한식’(Hansik) 김현우 요리사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 4 ‘한식’(Hansik) 김현우 요리사

일요시사 0 1,713

1990년대 초반 시작된 점수제 이민으로 많은 한인들이 뉴질랜드에 들어 왔다. 그때 30~50대였던 1세대들은 이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1.5세와 2세대들이 잇고 있다.< 일요시사>은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는 뜻에서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라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뉴질랜드 각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가 그 대상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애독을 바란다. <편집자>

 

훗날 한인 역사에서 한식 전도사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호주 멜버른에도 한식문 열어 한·일 음식대전 펼쳐 보고 싶어



  

 일 년 만에 다시 찾았다. 조금은 한가한 오후 3, 현우는 의자에서 선잠을 자다가 나를 맞았다.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요?”

 첫인사를 건넸다.

 “아니에요. 생각을 좀 할 게 있어서요.”

 현우는 기지개를 한 번 켜며 자리에 앉았다. 금쪽같은 오후의 휴식을 깨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했다

 

시내 빅토리아 마켓에 한식자리 잡아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예의상 그런 질문을 한 게 아니었다. 정말로 어떻게지냈는지 궁금했다.

 “많은 일이 있었죠.”

 현우는 대뜸 그 많은 일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을 하나 꺼냈다. 그것도 아주 슬픈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조금 겁이 났다. ‘괜히 물어봤나하는 걱정도 들었다.

 “얼마 전 한국 사람한테 전화를 한 통 받았어요. ‘비빔밥을 시켜 먹었는데 왜 국이 없냐?’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저보고 대뜸 너 밥 먹을 때 국은 안 먹냐?’고 하시더군요. 그때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제 마음을 몰라 주었기 때문이죠.”

 오클랜드 빅토리아 마켓(Victoria Market)은 오클랜드 관광 명소 가운데 한 곳이었다. 지금도 한때의 영화를 말해주듯 우뚝 솟은 굴뚝 하나가 버티고 있다. 그 뒤에 헤리티지(Heritage, 문화유산에 버금가는 오래된 곳) 건물 사이로 한식’(HANSIK)이 자리 잡고 있다.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다. 2년 전에 시작, 인근 동네는 물론 지역 사회에 한식을 널리 알리고 있다. 현우는 한식의 주인이자 주방장이다.

 현우는 2007년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들고 뉴질랜드(오클랜드)로 왔다. 그때 나이가 스물여섯, 세상에 겁날 게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요리를 밑천 삼아 한 번 멋진 승부를 펼쳐 보고 싶었다.

 “여러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제 꿈인 한식 전문점을 열게 됐어요. 저는 대학에서 일식 요리를 전공하고 또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일을 해왔어요. 그런데 조금씩 경력이 붙으면서 제 어머니의 음식 맛을 재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 역시 한국 사람이고, 한국 음식 맛에 길든 사람이니까요.”

 현우는 자기가 아무리 일본 음식을 잘 만들어도 태어날 때부터 일본 음식을 먹고 자란 현지 요리사를 음식 맛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식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것이 한식이다한번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오클랜드에서 자신 있게 이름을 내걸고 한식을 만드는 곳은 별로 없었다. 거의 가정식, 집에서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귀한 손님에게 이것이 바로 한식이다라고 자랑할 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많은 한국 손님들이 저희 음식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정통 한식에서 약간 비켜 있으니까요. 저희가 내놓는 음식은 퓨전 한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곳 현지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리자는 게 제가 식당 문을 연 가장 큰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멋있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큰 비중을 두고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절대 쉽지 않은 길이다. 현지인들에게 친숙한 일식점이나 태국 음식점을 운영한다면 그렇게까지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런데도 현우는 고집스럽게 한식을 주장한다.

 “제가 도전 정신이 좀 있어요. 한식이 이곳 사회에서 대중화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 일의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믿습니다. 조금이라도 젊은(현우는 올해 서른다섯이다) 제가 하는 게 맞고, 또 그러다 보면 누군가 뒤따라 오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리사 현우의 꿈은 무엇일까?

 일식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부 마치히사라는 요리사가 있다고 한다. 예순이 넘은  이 사람은 퓨전 일식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요리사다. 미국의 뉴욕을 비롯해 전 세계에 노부 레스토랑이라는 프랜차이즈가 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호주 멜버른에 있다.

 “제 꿈은 멜버른에 한식레스토랑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도 노부 레스토랑 바로 건너편에요. 일종의 한식 일식 대전이라고나 할까요? 그곳에서 제가 만든 한식을 갖고 당당히 노부와 겨뤄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자신합니다. 응원 좀 해주세요.”

 

음식 만들 때 신선한 식재료가 제일 중요

 한국 텔레비전 프로를 보다 보면 요즘 대세는 먹방’(먹는 프로 방송)인 것 같다. 채널 이곳저곳에 먹는 프로가 없는 곳이 없다.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요리사가 5~10분 안에 뚝딱뚝딱만들어 내는 요리에 시청자들은 마른 침을 흘린다.

 이에 대한 현우의 생각.

 “요리는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에요. 저의 경우, 비빔밥 하나를 손님에게 내놓을 때 열 번 넘게 손(재료)이 갑니다. 양식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고가 따르지요.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제가 자신 있게 손님에게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경험과 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죠.”

 현우는 무엇보다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신선한 식재료라고 강조했다.

 “저희는 파로(Farro) 같은 곳에서 날마다 식재료를 사 옵니다. 또 음식을 만들다 맘에 안 들면 미련 없이 버립니다. 손님 눈을 속여 음식을 내놓는 것은 요리사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니까요.”

 맞다. 누구든 자기 세계에서만큼 꼭 지니고 싶은 자존심이 하나씩은 다 있다. 그게 없다면 전문가장인’(匠人)이라고 할 수 없다.

 “저는 온종일 힘을 들여 백 개의 음식을 만든다고 해도 드시는 분에게는 하나의 음식일 뿐입니다. 그 하나뿐인 음식을 대충 요리하거나 잘못 만들어 손님이 누려야 할 기쁨의 시간을 망쳐놓고 싶지 않아요. 자타가 인정하는 일류 요리사라면 가장 좋은 식재료로, 가장 많은 정성을 들여 음식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이 일하는 다른 요리사들에게도 강조하는 말이고요.”

 

한식의 세계화’, 멀고 먼 길인가?

 ‘한식의 세계화’, 이 말은 오래전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이 강조한 말이다. 그 말에 힘입어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 한인들은 내심 들떠 있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한식을 세계에 널리 알릴 기회가 온 줄로만 알았다. 특히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대가 컸다. ‘한식 요리사김현우도 그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자 관심도 급속도로 식어갔다. 이 대목에서 현우는 울분(?)을 토했다.

 “‘한식을 시작할 때 속으로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했죠. 대단한 재정 지원이 아니더라도 태국 정부처럼 현지 언론 매체에 광고를 해 준다거나 하는 식의 간접적인 도움 말이에요. 현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많이 아쉬웠지만 제가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벽이라고 봅니다. 뉴질랜드에 사는 한인들이라도 좀 더 애정을 갖고 응원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이 대목에서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인터뷰 처음 그가 가슴 속에 지니고 있었을 답답함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한국 정부도 관심이 없고, 한인들조차 전통 한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음식이 조금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는 게 마음이 아팠다. 케이 팝(K-Pop)이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데, 그 잔치 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음식이다하며 내놓을 수 있는 한식같은 식당을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문화, 우리 맛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말이다.

 

조마토(Zomato) 웹사이트에서 4.3점 받아

 ‘조마토’(Zomato)라는 음식 평가 웹사이트가 있다. 이 사이트(www.zomato.com/newzealand)에 들어가 한국 식당’(Korean Restaurant)을 입력하면 한식 5점 만점에 4.3이라는 점수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한국 식당에 견줘 높은 점수다. 현지인들에게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현우가 한식을 연 이유는 바로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리겠다는 거였다. 주 대상은 현지인이다. 퓨전 음식이지만 음식을 통해 한국 문화와 한국의 맛을 알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한 치의 변함이 없다.

 “음식을 만들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죠.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손님들이 즐거워할 때 그것만큼 기분이 좋은 것도 없고요. 여러모로 여건이 힘들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훗날 한인 역사에서 제가 한식 전도사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음식점 세계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음식이 맘에 안 들면 주방장에게 사알짝알려 주세요. 그리고 음식이 맘에 든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너얼리알려 주시고요.”

 나는 한식을 나서며 이 말을 주위에 마니마니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젊은 요리사의 꿈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맛을 애써 알리려는 한인 1.5세의 간절한 눈빛 때문이었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hansiknz

 

_프리랜서 박성기

표지 사진_레이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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