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12 GS Express김영훈관세사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12 GS Express김영훈관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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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최고의 한국계 물류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NZ 물류 이끌어 갈 젊은 기업’…“모든 일처리 화주 입장에서 할 것약속

 


 한진해운 사태로 한국 경제가 큰 어려움에 부닥쳤다. 피가 통하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류(物流)가 마비되자 여기저기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 물류의 중요성을 잘 모르던 사람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됐다.

 뉴질랜드와 한국 사이의 물류를 책임지고 있는 지에스 익스프레스(GS Express)를 찾았다. ‘뉴질랜드 물류를 이끌어 갈 젊은 기업이라는 신조가 말해주듯 업력(業歷)이 다른 업체에 견줘 짧다. 그게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뒤집어 말하면 젊은 피가 흐른다는 뜻의 장점으로 읽힐 수도 있다.

 


관세사 업무는 전체 물류의 10~20% 차지

 지에스 익스프레스 관세사 김영훈.

 처음에 그는 인터뷰에 걸맞지 않게 다소 소극적(?)으로 나왔다. 어쩌면 겸손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관세사라는 직책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전체 물류(로지스틱스, Logistics)를 놓고 따진다면 100% 가운데 10~20% 정도의 역할을 합니다. 물론 관세사의 통관 업무가 필수적인 일이긴 하지만 나머지는 포워딩(Forwarding, 운송 견적부터 물류 컨설팅, 선적, 통관, 배송 및 사후 처리까지 모든 과정) 업무를 맡은 사람이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도 바로 전체 포워딩 업무를 총괄하는 것입니다.”

 몇 마디 대화 끝에 마음이 놓인 영훈은 관세사라는 개념부터 정리해 주었다. 영어로 ‘Customs Broker’, 말 그대로 화주와 세관 사이의 중개사. 따로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관에서 고유의 핀 코드’(Pin Code)를 받아 화주를 위해 ‘통관업무를 해주는 역할이다. 하지만 관세사가 일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의 따라 화물의 입출고가 부드럽게 혹은 껄끄럽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역회사에 휴직계 내고 뉴질랜드 와

 영훈은 2011년 아내와 함께 오클랜드로 왔다. 대학에서 무역과를 졸업하고 4년간 다니던 무역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온 것이다. 목적은 영어 공부. 1년만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사설 대학에서 비즈니스 과정을 공부한 뒤 1년짜리 잡 서치 비자(Job Search Visa)를 받았다. 그는 얼마 안 있어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물류회사에 취직이 됐다.

 “한국에서 일할 때 주로 물류 쪽을 맡아 했습니다. 그때 하던 일이 한국 일과 거의 같았습니다. 일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관세사 시험에 응시해 놓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3 9GS Express에 들어왔습니다. 관세사가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뒤입니다.”

 영훈은 운 좋게도 자기 전공을 뉴질랜드에 와서도 살렸다. 그의 말마따나 어쩌면 좀 지루한일일 수도 있는 관세사 업무를 보면서 그가 맛본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난해 한국 광명시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광명동굴에 설치할 조형물 운송을 우리 회사가 하게 된 것입니다. 광명시는 일제 강점기 때 금광으로 유명했던 동굴을 관광지로 개발했습니다. 그 안에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 감독이 설립한 특수효과 기업(Weta Studio)을 제작해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웰링턴부터 인천까지 가는 물류를 제가 맡아 진행했습니다.”

 총 길이 41m, 무게 800kg. 화물이 비행기보다 더 길었다. 조형물을 대여섯 개로 나눠 큰 차 두 대에 실어 오클랜드로 올렸다. 통관 절차를 밟고 항공 화물로 인천에 보냈다. 이 모든 과정에 관세사 영훈이 곁에 있었다. 웰링턴에 직접 내려가 크기를 점검하는가 하면, 포장 방법까지 자세히 지시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러야 하는 한국-뉴질랜드 간의 프로젝트였다.

 

광명동굴에 NZ ‘설치 물류 일 도와

 행사 며칠을 앞두고 조형물이 도착했다. 뉴질랜드에서 직접 날아간 기술자들이 조형물 용을 광명동굴 천장에 설치했다. 광명시장과 주한 뉴질랜드 부대사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개막식 날, 영훈의 아이디어와 손이 거쳐간 이 관람객들에게 열띤 호응을 받았다.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특수효과 기술이 한국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신문과 방송에도 널리 소개됐다. 영훈은 그동안 한 일 가운데 이 일이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영주권을 가진 한국 사람으로 자부심과 큰 보람을 느꼈다.

 반면 어려움도 있었다. 얼마 전 타우랑가 항구에 도착해 있던 컨테이너들이 대폭풍(Tornado)에 쓰러져 컨테이너는 물론 안의 화물도 손상을 입은 일이 발생했다. 그 가운데 지에스 익스프레스가 진행한 것도 들어 있었다.

 물론 자연 재해로 일어난 일이라 누구의 책임도 아니였지만 영훈은 이 일을 풀기 위해 화주의 입장이 되어 동분서주했다. 화주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포워딩 업체에는 화물이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 화물이 화주 손에 들어가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관세사 되려면 현장 물류 경험이 중요

 관세사를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도움말은 무엇일까?

 “관세사는 다른 직종에 비해 현장 경험이 무척 중요합니다. 자격증(핀 코드)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류 회사에 들어가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관세사 시험에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관세사가 된 사람을 봐도 90% 이상이 물류 회사, 수출업체, 세관 등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입니다.”

 영훈은 이 점을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만큼 중요하고, 또 실질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일 게다. 자격증(핀 코드)만 따놓고 경력이나 업무 지식이 없어 일을 못 하는 경우도 많다며 무엇보다 관세사가 되려면 꼭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영훈에게 관세사로서 화주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화주와 포워딩 업체는 서로 파트너라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만에 하나 화주가 잘못된 정보를 주면, 잘못된 정보를 모른 채 포워딩 업체가 일을 처리하게 되고 그게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뉴질랜드는 서로 믿고 사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 믿음이 깨진다면 둘 다 큰 어려움에 이르게 됩니다. 저희를 믿고 정확한 정보를 주시면 화주 입장에서 일처리를 해 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시스템 만들어 하는 일 즐거워

 그래도 조금이라도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한국 포워딩 업체에 일을 맡길 때는 뭐라도 도움을 받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요?”

 영훈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분명하게 말했다.

 “당연합니다. 관세(Duty)나 지에스티(GST) 같은 것은 어느 회사 할 것 없이 다 같습니다. 하지만 그 나머지 일은 한국 사람 입장에서, 화주 입장에서 처리를 해 드린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화주입장이라는 말은 제가 한국에서 일할 때 화주가 되어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라도 화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성심성의껏 해 드리겠습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 노파심은 안도로 변했다. 그 안도는 결국 한인 화주로까지 이어질 거라는 미더움이 들었다. 영훈이 인터뷰 중간에 들려준 물류업계에 대대로 내려오는 얘기 영원한 화주는 없다는 말 속에서 그래도 우리와 연을 끊은 화주는 별로 없다는 자신감 섞인 말 때문이었다.

 지에스 익스프레스는 이제 창업한 지 4년이 조금 지난 젊은 기업이다. 지금은 여러모로 부족하고 미숙하지만, 뉴질랜드 물류의 앞날을 향해 꾸고 있는 꿈은 원대하다. 인터뷰 내내 관세사의 역할을 애써 줄여 말한 영훈은 자신을 가리켜 결과주의자라고 강조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염려해 나에게만 겸손하게포부를 밝혔지만, 5년 안으로 이룰 결과가 내심 기대된다.   

 영훈은 한국에서 무역회사 직원으로 일을 할 때는 수동적으로 해 왔다고 고백했다. 이미 만들어진 큰 시스템에 맞춰 일을 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와서는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말했다. 시스템을 만들어 하는 게 즐겁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한인 경제에 피를 돌게 하는 물류 일을 맡아 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한때는 한국에 돌아가서 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에스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면서 뉴질랜드 삶의 큰 보람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영훈은 물론 한인 사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관세사 김영훈.

 그는 내게 양해를 받아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다 업무와 연관된 전화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성껏 답을 해 주었다. 모든 일을 환히 꿰뚫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한인 사회의 다음 세대인 젊은 친구와 만나 얘기를 나누는 일은 즐겁다. 그들은 힘주어 희망을 말하고, 내게도 또다른 야릇한 희망을 준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젊은 물류기업 지에스 익스프레스, 젊은 관세사 김영훈. 그들의 앞날이 늘 순풍에 돛달고 항해하길 빈다.

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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