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팔순' 회장 사모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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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뒷담화] '팔순' 회장 사모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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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전쟁' 아들 밀어낸 계모

[일요시사=경제1팀] 영풍제지란 회사가 있다. 상장사긴 하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다. 오너나 경영진도 생소하다. 그런 영풍제지가 요즘 큰 화제다. 접속 폭주로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재계 호사가들은 물 만난 모양새. 왜 일까. 바로 '계모' 얘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재계 호사가들을 자극하는 공시가 떴다. 진원지는 영풍제지. 이 회사는 이날 지난해 말 최대주주가 변경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창업주이자 현 오너인 이무진 회장은 보유 주식 51.28%(113만8452주)를 부인 노미정 부회장에게 모두 증여하는 것으로 최대주주 자리를 넘겼다.

주당 1만6800원씩 총 191억원 규모다. 이번 증여로 노 부회장의 영풍제지 지분율은 기존 4.36%(9만6730주)에서 단숨에 55.64%(123만5182주)로 높아졌다.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셈이다. 다만 대표이사직은 이 회장이 계속 맡고 있다.

은밀한 입김 작용?

오너가 부인에게 지분을 증여한 것은 재계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영풍제지의 공시는 액면으로만 봤을 때 크게 화제될 '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증여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접속 폭주로 회사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상장사긴 하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은 회사의 지분 변동이 유독 관심을 끄는 이면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영풍제지란 회사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70년 설립돼 1996년 상장한 영풍제지는 경기도 평택에 본사를, 서울 서초구에 서울사무소를, 대구에 영남영업소를 둔 종이·판지 제조업체다. 화섬, 섬유봉, 실패 원자재인 지관원지와 골판지상자용 라이나원지를 주로 생산한다.

자본금은 111억원. 2011년 매출 1157억원에 영업이익 37억원, 순이익 48억원을 올렸다. 총자산은 1106억원, 총자본은 937억원이다. 주요주주는 이번 증여로 최대주주가 된 노 부회장에 이어 영풍제지(자사주)가 16.83%(37만3590주), 경기저축은행이 5.43%(12만660주)의 지분이 있다. 404명 소액주주들의 지분은 11.71%(26만148주)에 이른다.

영풍제지의 주주구성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회장의 자녀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기업 같으면 적은 지분이라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주주 명단에서 아예 찾아볼 수 없다. 회사 주식이 단 한 주도 없다. 여기에 대중들의 흥미를 끌만한 '비밀'이 숨어있다. 바로 '회장님'과 '사모님'얘기다. 여기에 경영권을 둘러싸고 자녀들간 미묘한 기류가 흐르면서 재미(?)를 더한다.

영풍제지 회장 아들 대신 부인에 회사 넘겨
191억 주식 전량 증여…최대주주 자리 내줘

어느 가정이든 숨기고 싶은 가족사가 있다. 그중에서도 '여자 문제'만큼은 언급조차 꺼려진다. 재벌가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 노출되면 집안은 물론 기업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숨길 수 있다면 끝까지 감춘다. 영풍제지 역시 그랬다.

이 회장은 슬하에 2명(택섭-택노)의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아들은 '지휘봉'을 놓고 각축전을 벌였다. 당초 가장 유력한 후계자 1순위는 여느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장남이었다. 이 회장은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택섭씨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으로 경영수업을 시켰다고 한다.

한경대를 졸업하고 영풍제지에 입사한 뒤 '스페셜 코스'를 밟은 택섭씨가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2002년 대표이사를 맡으면서다. 이도 잠시. 택섭씨는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손대는 사업마다 뒤집어졌고 추진한 프로젝트도 하나같이 흐지부지됐다.

부동산, IT 등 여러 기업 인수에 손을 댔다가 손실만 봤다. 야심차게 벌인 서울 중구 황학동 아크로타워 분양사업도 망가졌다. 이 회장의 기대를 채우지 못한 택섭씨는 입지가 크게 위축됐고 결국 2009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전까지 보유했던 지분 2.71%(6만66주)도 모두 정리했다.

이후 숨죽이고 지내던 차남이 급부상했다. 장남으로 쏠렸던 후계구도가 서서히 차남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 홍익사대부속고를 졸업한 택노씨는 택섭씨가 좌천된 직후 임기 3년의 등기임원으로 선임됐다. 업계에선 "차남 밖에 없다"는 평이 나왔다. 그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택노씨는 지난해 임기가 만료되면서 연임이나 승진하지 못한 채 조용히 임원직에서 내려왔다.

이때 한 여인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노 부회장이었다. 그는 지난해 1월 영풍제지 부회장으로 선임된데 이어 8월 영풍제지 지분 4.36%(9만6730주)를 매입했다. 회사 관계자는 "두 아들은 일체의 지분이 없을 뿐 아니라 회사에 직책도 없어 출근하지 않는다"며 "노 부회장은 선임된 후 매일 출근하면서 업무 전반을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

35세 연하 부인…알고 보니 후처
재혼 5년 만에 경영권 완전 장악

당시만 해도 회사 측이 공시한 대로 일가 친인척으로만 추정됐다. 나이가 이 회장보다 한참 어렸기 때문이다. 택섭·택노 형제보다도 어렸다. 올해 이 회장은 79세(1934년생). 노 부회장은 44세(1969년생)다. 둘이 35세나 차이가 난다. 각각 56세(1957년생), 53세(1960년생)인 형제와도 약 10세 가량 터울이 진다.

호사가들은 쑥덕거렸다. "혹시…"란 의문을 제기했지만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았다. 노 부회장에 대한 정보가 워낙 없어서다. 지금까지도 '꽁꽁'베일에 싸여 있는 그는 이력은 물론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언론이나 사내외 행사 등 일절 외부에 노출된 적이 없다. 인터넷에서 기본 정보도 찾기 힘들다. 업계에선 "노미정이 누군지 며느리도 모른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 영풍제지 직원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렇게 잊혀갔던 노 부회장의 정체는 최근 이 회장의 '몽땅 증여'로 드러났다. 부인이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 이보다 본처가 아닌 사실에 더욱 시선이 쏠렸다. 이 회장은 2008년 35세 연하의 노 부회장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부회장이 택섭·택노 형제에겐 '새파란(?)' 계모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노 부회장은 이 회장과 재혼 4년 만에 회사 2인자에 올랐고, 2인자에 오른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최대주주에 올랐다"며 "평생 어렵게 키운 회사를 본처 소생인 아들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새로 얻은 아내에게 맡긴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선택은 이례적이다. 쉬운 결정도 아니었을 터. 증권가 등 시장에선 그 이유와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재산싸움 방지책?

먼저 계모가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기 위해 전략적으로 두 아들을 회사 경영권 밖으로 밀어냈다는 얘기가 입길에 오르내린다. 알게 모르게 노 부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회장이 본처 소생인 두 아들 외에 노 부회장과 사이에 낳은 '서자'가 존재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럴 경우 '옥새 전쟁'이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부자 간 '불화설'도 그럴싸하게 나돈다. 경영능력을 시험해보는 과정에서 이 회장과 두 아들 사이가 틀어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같은 맥락에서 두 아들이 스스로 '야인'의 길을 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혹시 벌어질 수 있는 재산싸움을 염두에 둔 이 회장의 의중일 수도 있다. 이 회장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재벌가 골육상쟁이 툭 하면 터지는 상황에서 두 아들끼리, 또는 아들과 계모 간 상속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사전 조치란 분석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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