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는 '민영기업' 포스코 "왜?"

한국뉴스


 

휘둘리는 '민영기업' 포스코 "왜?"

일요시사 0 1047 0 0

'주인' 없는 태생적 한계…정권만 바뀌면 털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국의 주요 화두로 '부패와의 전면전'이 떠올랐다. 대기업 포스코가 제물이 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족을 맴돌고 있다. '영포회'를 겨냥한 수사는 친이계 전체로 확대될 조짐이다. 박근혜정부의 이번 포스코 수사는 다목적 카드로 읽힌다. 그러나 예상치 않은 변수 때문에 청와대가 내상을 입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총리는 지난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총리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판을 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7일 화상 국무회의에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뿌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른바 사정 드라이브의 신호탄을 쏜 것이다.

정윤회 문건
포스코 영향?

포스코그룹(이하 포스코)이 첫 과녁으로 결정됐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유력한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검찰을 지렛대 삼은 언론은 정 전 회장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불거진 비리 의혹이 너무 많아 정리조차 안되는 분위기다.

정 전 회장은 비교적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출국금지가 내려지고, 소환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나중에 다 밝혀질 것"이라며 여유를 부렸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현재 포스코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전담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이 놓치고 있지만 포스코 수사를 특수2부가 맡은 이유가 있다. 포스코 수사의 뿌리를 찾다보면 의외의 사건이 나온다. 바로 지난해 12월 특수2부가 전담한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12일 '정윤회 문건 후폭풍 미공개 박관천 파일 추적'이라는 기사에서 관련한 사실을 전한 바 있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작성한 문건에는 포스코가 연루된 비리 정황이 있었다. 앞서 청와대는 "보고서 전부가 찌라시"라고 브리핑했다.

문제는 보고서 내용 상당수가 기업수사 첩보로 활용될 소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 전 행정관이 2013년 6월24일 작성한 'VIP(대통령) 방중 관련 현지 동향 특이 보고'를 보면 "중국 유력인사 S씨가 VIP 친인척(서향희 변호사)을 통해 J씨의 회사 대표 재임용을 청탁했다"라고 돼 있다.

해당 기사에서 <일요시사>는 "여러 정황상 J씨는 대기업 P사의 임원으로 의심된다"라고 보도했다. 기사 작성을 앞두고 만난 검찰 관계자는 관련 내용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포스코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J씨와 P사는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J씨는 정 전 회장, P사는 포스코를 뜻한다.

해외 비자금
윗선에 상납

박 전 행정관이 작성한 'S2'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J씨가 OOO 회장으로 가려 로비하고, 서 변호사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주변에) 보여주며 세력을 과시한다"라고 적혀 있다. 정 전 회장이 실제 로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이 사퇴압박을 받고 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2013년 6월 정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다른 기업인들과 함께 수행했다. 포스코의 재계 서열은 6위로 기업 총수들 가운데 '끗발'이 있는 쪽이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정 전 회장은 초대받지 못했다. 청와대가 사실상 '왕따 작전'을 편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2013년 9월에는 포스코를 겨냥한 세무조사 소식이 전해졌다. 정권 차원에서 스스로 물러나라는 사인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정 전 회장은 미련을 갖고 버텼다. 같은 해 11월 사퇴할 때까지 정부와 어떤 협상을 시도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소문은 무성했다. 현 정권 실세에게 줄을 대려 했다는 얘기부터 거절 당했다는 얘기까지 포스코 안팎이 술렁였다. 포스코 내부에선 '정준양의 사람들'을 노린 내부 감사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포스코 일부 임원진의 개인 비리가 담긴 투서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기자는 우연한 계기로 포스코 안에서 일어난 감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해 8월 포스코건설 상무급 간부 2명이 베트남 파견업무 중 보직해임 돼 한국으로 돌아와 문제가 됐다"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두 상무급 직원의 이름과 소속을 비교적 상세히 진술했다. 당시 관계자가 밝힌 이들의 비위 사실과 사건 개요는 이랬다. 두 박모씨는 2010∼2012년 포스코건설이 운영 중인 동남아사업단에서 모두 12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직원 10여명과 공모해 하도급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을 이용했다. 1인당 20억원씩 백머니(뒷돈)를 챙겼고, 남은 돈은 '윗선'에 상납했다.

정준양 인사청탁 등 각종 의혹 불거져
포스코 지렛대 '부패와의 전쟁' 선포

그런데 상납된 80억원의 행방이 묘연했다. 여기서 돌발 변수가 생겼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다. 포스코는 이로부터 약 1달 뒤 또 다른 상무급인 A씨를 동남아사업단으로 급파했다. A씨는 뜻밖에도 정 전 회장 쪽 사람으로 알려졌다. 귀국한 두 박씨는 별도의 조치 없이 대기발령 상태로 놔뒀다.

이 과정에서 축소·누락 보고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나아가 회사 차원에서 문제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두 박씨는 올 초 정기인사에서 비상근 임원직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에야 이 같은 소식이 포스코 외부로 터져 나왔다. 검찰은 이 무렵 포스코에 관계된 첩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법조계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검찰이 설마 포스코를 칠 수 있겠냐'라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포스코 수사는 정치권을 겨냥한 사정작업으로 풀이될 가능성이 높았다. 정치권 가운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하 MB)을 비롯한 지난 정부 인사가 다칠 위험이 있었다. 포스코와 MB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이 정 전 회장이다. 앞서 MB의 최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정 전 회장이 포스코 대표이사가 되도록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당시 관련 내사를 진행하다가 자체 중단한 바 있다.

사정 신호탄
타깃은 MB?

지난 2월 기자와 만난 사정기관 관계자는 "포스코 수사의 명분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묵은 비리를 들춰내겠다는 것인데 '의도'는 있지만 '계기'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말 MB는 자신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을 출간했다. 회고록에서 MB는 박 대통령을 의식한 듯 날을 세웠다. 시기상 포스코 수사는 대통령이 받은 '모욕'을 MB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문제는 수사에 착수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검찰은 대형 수사를 앞두고 선전포고를 할 때 압수수색을 활용했다. 이어 '타깃'을 잡고 출국금지를 내렸다. 소환이나 체포는 가급적 하지 않았다. 여론전과 함께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 위해서다. 중요도가 낮은 인물에서 높은 인물까지 차례로 소환했다. 포스코 수사라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정 전 회장을 맨 마지막에 부른다.

현재까지 드러난 검찰의 1차 목표는 '정준양의 입'이다. 그의 입을 열어 수사를 정치권으로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내부 고발자'의 존재다.

검찰은 지난 2월부터 내부 고발자를 찾아왔다. 수사의 시작인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선 단 한 가지 혐의라도 사실에 가깝게 입증해야 했다. 나머지 범죄 사실은 압수수색을 통해 차츰 드러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기획수사 또는 표적수사의 패턴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포스코 수사에 매달렸던 것일까. 여러 이유 가운데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일화가 있다. 포스코와 가까운 한 홍보통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캠프에서 포항 유세일정을 짤 때 '포스코 임직원과의 만찬'을 넣었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거절해 취소가 된 적이 있다"라며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가 포스코를 만들었는데 이를 부인해 온 포스코의 태도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현 정부 실세는 이 같은 감정선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 2월26일 <세계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부패와의 전면전'이 선포됐고, 같은 기간 검찰은 해외 비자금 상납구조의 흐름을 얼추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포회·친이계' 동시 타깃
박근혜 승부수…성패 달려

복수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검찰은 남은 80억원의 관리를 정 전 회장이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이 돈의 일부가 '영포라인'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MB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박 전 차관이 중심인 영포라인은 경북 영일과 포항 출신 공직자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이다.

그간 영포라인은 포스코에 취업하거나 포스코로부터 계약을 따내는 방식으로 이권을 챙겼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돈은 상납을 거쳐 MB정부 실세들이 나눠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MB가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영포라인이라는 말이 연일 언론을 도배하는 것은 검찰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열쇠다.

검찰은 포스코 수사를 시작하면서 만약을 대비해 일종의 보험도 들었다. 자원외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자원외교 카드는 영포라인뿐 아니라 일부 친이계 전·현직 의원을 옭아 멜 수 있고, 현 정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꽃놀이패'로 꼽힌다. 특히 자원외교 비리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현직 인사가 대거 연루될 수 있어 공직기강을 잡는 데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충수 가능성
실패 시 레임덕

이른바 '사자방'으로 명명된 MB정부 실책 가운데 박근혜정부는 자원외교와 방산비리 수사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4대강은 배제됐다. 이를 두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팟캐스트 방송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MB가 직접 연상되는 4대강은 지양하고, 자원외교와 방산비리를 수사해 '친이계'에 겁을 주려는 것"이란 취지로 분석했다. 발언 내용을 정리하면 'MB를 직접 겨냥하진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궁지에 몰린 MB가 무슨 일을 꾸밀지는 알 수 없다. 포스코 주변에선 현 정권과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다. 수사가 틀어져 불이 엉뚱하게 옮겨 붙으면 청와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13년만 해도 포스코 수사는 요원해 보였다. 금융당국의 포스코 계좌 추적에 정부가 나서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설'도 들렸다. 그만큼 정치적인 접근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 2년 만에 '잡도리'를 시작한 이상 전 정권의 잔재는 모두 솎아내야 하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숙명이다. 대통령 자신의 친인척, 청와대 일부 실세의 인사 개입에 대한 소문까지 '마사지'하고 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같은 이유로 박 대통령의 승부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친이계로 전선을 넓힌 이상 수사가 실패할 경우 의회가 등을 돌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점쳐지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저작권자 ©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