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불나는 구룡마을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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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툭하면 불나는 구룡마을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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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몰래 누군가 불 지른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구룡마을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한 명이 숨지고 130여 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불과 4개월 전에도 비슷한 화재가 일어났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주민들은 그동안 관할 구청에 안전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해왔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이번 화재로 인해 개발 방식 논쟁에도 불이 붙은 상황이다.

지난 9일 무허가 주택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 7월, 주택 6가구를 소실시키고 20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남긴 화재가 발생한 지 불과 4개월만이다. 불은 이날 오후 1시53분께 구룡마을 7-B지구 고물상 화장실에서 시작됐다. 바람이 불어 30여 분 만에 8지구까지 번졌다. 불길은 약 1시간40분 만인 오후 3시34분께에야 잡혔다. 잔불은 오후 7시께 완전히 꺼졌다. 이 불로 구룡마을 5만8000㎡ 중 900㎡와 391개동 1807세대 중 16개동 63세대가 탔다.

집 잃은 사람들

강남구청과 소방당국, 경찰은 헬기 5대와 소방차 50여대 등 장비 69대와 인력 409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잔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주택 내부에서 주민 주모(71)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10일 <일요시사>는 잿더미로 변한 구룡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는 현수막이 내걸려있었다. ‘4년 동안 구룡마을 주민과 소통 한 번 없이 임기를 끝내는 강남구청장’ ‘주민들에게 절실한 것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결정권자의 주민을 위한 개발 의지입니다’ 등 주민들의 투쟁이 엿보였다.

마을 입구를 따라 작은 언덕을 오르자 화재가 발생한 7-B지구의 처참한 현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을은 까맣게 타버려 잿더미가 된 상태였다. 소방서 관계자와 경찰 과학수사팀은 화재현장을 중심으로 감식 및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현장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어 육안으로만 확인이 가능했다. 곳곳에는 LPG가스통이 너부러져 있었다. 주민들은 화재 당시 ‘펑’하는 굉음을 들었다. 일부 LPG가스통이 폭발했던 것이다.

주택 대부분은 비닐과 목재, ‘떡솜’이라 불리는 단열재 등 불에 쉽게 타는 자재로 지어져 화재에 취약하다. 부식을 막기 위해 기름 먹인 합판으로 만들었다. 전선 피복이 벗겨질 경우 불이 합판에 옮겨 붙기 쉬운 구조다. 지붕은 비가 새는 걸 막기 위해 비닐과 가림막으로 이중삼중 덮어놓았다. 물을 뿌려도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 불을 끄기 어렵다. 게다가 전신주도 없이 전선들이 지붕에서 지붕으로 간신히 연결돼 있다. 보행통로마저도 비좁아 신속한 대피는 불가능해 보인다.


 

 
 마을 곳곳에는 화재 시를 대비해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지만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일부 소화기는 분말 가루가 딱딱하게 굳어서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년 가까이 된 소화기도 적지 않았다. 소화기 기한은 10년이다. 노후 시 소방방재청에서 새 소화기로 교체해주기는 하지만 화재 초기에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불길을 제압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안전 대책이 전무한 화약고나 다름없다.

강남 마지막 판자촌 또 대형화재 
1명 사망…130여명 보금자리 잃어
“반복적인 화재 이상하다” 진실은?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나 있다. 주민 박씨는 “구룡마을은 정부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면서 “이번에는 특히나 피해규모가 크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 이씨는 “전기 과열로 불이 났다고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불이 시작된 지점은 푸세식 화장실로 마을 내 사용자가 드물다”며 외부인 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이씨와 같은 입장이다. 반복적 화재를 누군가의 의도적인 방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 주민은 폴리스라인이 쳐진 화재현장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다. 그가 잿더미로 들어가려고 했던 이유는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그는 “결혼반지”라고 답했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도 잃은 상태다.

이번 화재로 보금자리를 떠나게 된 이재민들은 임시 대피소로 피신했다. 대피소는 구룡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과 인근 ‘개포중학교’로 이원화되어 있다. 대피소가 두 곳으로 나뉜 것은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 때문이다. 마을회관 대피소는 주민자치회, 개포중 대피소는 마을자치회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주민자치회 쪽은 서울시의 환지혼용 방식(토지보상)을, 마을자치회는 강남구의 전면수용 방식(현금보상)을 지지하고 있다. 양측 모두 구룡마을 주민이지만 서로 자신들 쪽이 ‘진짜 주민대피소’라고 다투는 모양새다.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은 화재현장을 직접 방문해 피해 상황을 살핀 뒤 마을회관 이재민 대피소를 찾았다. 주민들은 “언제 또 불이 날지 모른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박 시장은 “제 권한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구청장과 협력해야 한다”며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구청장이 요청하면 이재민들을 SH공사가 보유한 공공임대주택에 임시로 머물게 하겠다”고 밝혔다.

 



▲ 구룡마을 화재 현장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뉴시스>

주민 다수는 잿더미가 된 현재 거주지를 복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일부 주민은 “한 번 불이나면 복구를 못하게 하니 구청에서 일부러 불을 낸 게 아니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주민들 위에 있던 토지주 대표도 의견을 전달했다. 토지주 대표는 “거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게 협력하려 하는데 서울시와 강남구가 계속 갈등하니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어 개포중 이재민 대피소를 찾아 신연희 강남구청장, 박래학 서울시의장을 만났다. 박 시장이 “이곳이 워낙 취약해서 불이 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자 신 구청장은 “구룡마을은 어쨌든 개발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구룡마을 개발에 대한 서울시와 강남구의 입장 차이는 하루아침에 좁혀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불붙은 개발 논쟁

서울시와 강남구는 최근 구룡마을 개발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사업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강남구는 근본적인 안전을 위해서는 개발사업을 빨리 하는게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강남구가 도시개발을 핑계로 안전대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개발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되살아날지 주목된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면 수용방식 vs 환지 혼용방식

수용방식은 도시개발사업을 할 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의 사업시행자가 협의매수 또는 수용의 방법으로 사업지구 내 토지를 전부 취득해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공적주체가 토지를 전부 취득하기 때문에 종전 토지 소유자의 권리를 모두 소멸된다. 사업기간이 단축되고 사업시행자의 의도대로 개발할 수 있는 이점이 있으며, 토지소유자의 생활기반이나 지역 공동체가 와해되는 문제도 있다.

혼용방식은 도시개발사업을 할 때 수용방식과 환지방식을 같이 채용하여 개발하는 방식을 말한다. 양 방식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수용방식을 적용하는 지역의 반발과 환지방식 지역의 감보율(토지부담율)을 놓고 사업시행자와 토지소유자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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