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사고사' 유족들 애끓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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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사고사' 유족들 애끓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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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출생신고 하면서 남편 사망신고

[일요시사=사회팀] 부산 한 중견기업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 전기설비직원 김모(34)씨는 야간작업 중 크레인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사고 책임을 놓고 사측은 말 바꾸기를 반복하고 있다. 출산을 앞뒀던 김씨의 아내는 결국 남편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다.

향년 34세. 고 김모(34)씨는 코스닥 상장업체 T사의 전기설비 담당 직원이었다. 그는 지난 8월26일 저녁 9시30분께(추정시간)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이날 야간작업을 하던 김씨는 16m 크레인에서 떨어져 숨을 거뒀다.
유족이 김씨의 사망소식을 접한 건 같은 날 저녁 10시40분께였다. 김씨의 사망으로부터 1시간이 넘은 시각, 김씨의 아내는 T사의 한 직원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남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오열할 틈도 없이 아내는 옷을 챙겨 입었다.

책임전가 급급
고인이 사망한 날, 김씨의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뱃속의 아이는 결국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유족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김씨의 시신은 피가 깨끗이 닦인 채 병원 안치실에 누워 있었다.

유족들이 경찰을 통해 전해들은 사고 경위는 이렇다.
"김씨는 사고 당일 저녁 9시10분께 크레인의 소음이 심하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작업지시를 받았다. 이어 김씨는 크레인 위로 올라가 수리를 하던 중 추락사했다."

유족 입장에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설명이었다. 경찰의 수사 결과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한 유족은 회사 관계자를 찾아 "김씨가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T사 측은 "고공 작업의 경우 2인1조로 작업을 하는데 사고 당시 김씨가 동료에게 '파이프렌치를 가져다 달라'고 크레인 위에서 소리쳤고, 이에 동료가 공무부 사무실로 공구를 가지러 간 사이 김씨가 실수로 사망한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며칠 뒤 이 말은 거짓으로 판명났다.

27일 새벽 3시 김씨의 영정사진과 함께 빈소가 마련됐다. 이날 오후 빈소를 찾은 T사 측 대표자는 유족에게 "회사가 장례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족은 T사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합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T사 측이 태도를 바꿔 김씨의 과실 책임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T사 측은 "김씨의 과실이 이번 사고의 원인이지만 산재는 기본적으로 7대3이고, 회사가 봐줘서 5대5까지는 맞춰주겠다"고 말했다. 보상 문제를 놓고 T사 측이 작업 중 사망한 근로자에게 일방적인 책임 전가를 시작한 것이다. 사건 내막을 알고 있던 유족 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김씨는 어떻게 사망한 것일까.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부산 강서경찰서는 지난 11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김씨가 작업 중 사망한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경찰이 밝힌 김씨의 사망 장소는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위치한 T사 내부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가 진행 중인 민감한 사안이고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경찰은 "T사가 부산에서 상당히 큰 회사임은 맞다"고 말했다.

경찰 통화 후 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확인 작업은 더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유족 및 사고 관계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의 시신을 부검한 한 부검의는 "심장과 늑골이 파열된 상태 등을 볼 때 추락사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타살 의혹은 없었다. 단 추락사에 비해 시신의 훼손 정도가 심각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안전모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경찰 조사 결과 사건 현장 인근에서 김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안전모가 발견됐다. 그러나 T사 측은 첫 경찰 조사에서 "김씨가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고 진술해 유족 측의 반발을 샀다. 그러자 T사 측은 "관계자의 말을 듣고 그대로 진술한 것"이란 해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유족이 확인한 현장 인근 CCTV를 보면 김씨가 크레인으로 올라간 시간은 9시10분께였다. 그러나 CCTV에 마땅히 찍혔어야 할 김씨의 동료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야간 고공작업 시 2인1조 근무수칙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출산 앞두고 남편 사망…현장서 무슨일?
야간작업 중 추락…사측 책임 떠넘기기
"부산 재벌회사 화환도 안보내"

유족 측 관계자는 "야간에 위험한 작업을 시키면서도 기본적인 근무수칙 준수는 물론 현장 책임자의 안전 점검도 없었는데 이 사고를 어떻게 고인의 100% 과실로 몰아붙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사고 당시 김씨와 함께 근무조로 투입됐던 동료는 "공구를 가지러 간 것은 맞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잠깐 쉬고 있는 사이에 사고가 일어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씨의 시신은 동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지게차로 작업 중이던 한 직원이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 측은 사망 추정시간으로부터 약 20분 정도가 지난 시간에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즉 처음부터 2인1조로 작업에 투입된 것이 아니란 설명이다. 유족 측은 만약 김씨의 동료가 근처에 있었다면 김씨가 추락했을 때난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측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자 유족 측은 억울함에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각각 피켓을 들고 T사를 상대로 한 시위를 벌였다. 아이를 밴 김씨의 부인도 함께했다. 이 시위 과정은 포털사이트 DAUM '아고라'에 소개됐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응원 댓글이 달렸고 정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청원이 계속됐다. 하지만 이 글은 하루도 안돼 삭제됐다. T사 측의 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유족 측 관계자는 장례절차와 관련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도의적인 차원에서 동생의 장례를 책임지겠다던 T사 측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식대는 우리가 낼 테니 나머지 비용은 유족 측에서 부담하라'는 말을 하는 등 아이 엄마와 유족을 욕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던 회장은 그 뒤로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며 "T사 측은 본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오면 계속된 말 바꾸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T사는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견기업이다. 원자력·풍력·플랜트·조선업 등 수요산업에 필요한 핵심 단조부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T사의 회장은 한때 주식시장에서 '1조원대 거부'로 통했다.

현재 T사의 직원은 400명 수준. 그러나 노조는 설립돼있지 않다. 사고 후 유족 측은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렸다. 한 유족은 "왜 이제야 노조가 있는지 이해가 된다"고 탄식했다. 고인의 빈소에선 T사 측이 보낸 화환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유족 우롱했다"
<일요시사>는 T사 측의 입장을 듣고자 했다. 그러나 "연락을 주겠다"고 답변한 담당자는 그 뒤로 아무 해명이 없었다. 협상이 진통을 겪으면서 김씨의 발인도 늦어지고 있다. 입관만 마쳤을 뿐 2주째 빈소도 그대로다. 텅빈 빈소에는 영정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특히 김씨의 아내는 남편의 장례와 아이의 출산을 동시에 맞는 기구한 운명에 처했다. 최근 유족은 산후조리 중인 아내를 대신해 아이의 출생신고와 김씨의 사망신고를 함께했다. 사진을 통해 본 김씨의 딸의 눈매는 아빠를 꼭 닮아 있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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