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진 달 (36)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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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스러진 달 (36) 처형

일요시사 0 2359 0 0

대통령 생각하고 총을 쏘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두 남자에 의해 한 남자가 그야말로 개 끌리듯 끌려왔는데 남자의 표정이 막 불에 끄슬리기 전 개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였다. 눈에서 나왔는지, 혹은 코와 입에서 나왔는지 모를 이물질이 얼굴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바탕색 역시 핏기하나 없이 파리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얼굴 곳곳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찢어진 옷 사이로 선혈이 낭자했다.

“지도원 동무, 제발…”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 남자가 영란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조국과 당을 배신한 놈이 목숨까지 구걸한다는 말이냐, 더러운 놈!”

영란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자 두 남자가 무너진 남자의 상체를 똑바로 세워 무릎을 꿇렸다.

순간 호룡이 영란을 바라보자 영란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무언의 신호에 따라 호룡이 권총의 빈 탄창을 총알로 채우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탄창을 가득 채운 호룡이 총을 영란에게 건넸다.

권총을 건네받은 영란이 총구를 남자의 머리에 겨누자 남자가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란이 총을 석원에게 건넸다.

“석원 군이 처리하도록 해!”

얼떨결에 권총을 받아 든 석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어 영란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호룡을 주시했다.

“실전 훈련이라 하지 않았는가!”

호룡이 석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면 제가…제가 어찌…”

급격한 상황 변화에 더 이상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무슨 나약한 소린가. 그런 배짱도 없이 박정희를 암살하겠다고 했던 건가!”

“그거야…”

석원이 곤혹스러움이 가득 들어찬 표정으로 손에 들려있는 총과 앞에서 살려 달라 몸부림치는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뿐만 아니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가슴 역시 떨고 있었다.

“문 군, 정녕 박정희를 암살할 자신이 없는 건가!”

호룡의 싸늘한 소리가 이어졌다.

“박정희와 이 사람은…”

“이 놈을 박정희로 생각하도록 하게.

이 놈 역시 조국과 당을 배신한 비열한 자이니만큼 이 놈을 사살하면서 실전에 대비토록 하게!”

석원이 가만히 상황을 정리해보는 듯 영란과 호룡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금도 변화 없이굳건했다.

그 모습을 살피며 도리 없다 판단한 석원이 크게 심호흡하고 총구를 남자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겠는가!”

영란의 입에서 다시 싸늘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 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려졌다. 남자의 눈이 거의 흰자위로 가득했다.

“어서 당기게. 박정희를 생각하면서!”

호룡의 다그치는 소리가 이어지자 석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 아니 그보다도 더 빨리 “퍽” 하는 소리가 들린 듯했고 이어 남자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기울었다.

곁에서 남자를 잡고 있던 두 남자가 옆으로 물러서자 남자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계속 쏘지 않고 뭐하는 건가!”

의문의 남성…조국과 당 배신 대가는?
영란과 호룡 음모…살인 저지른 석원

영란의 다그침에 석원이 이미 죽은 듯한 남자를 향해 마치 기계처럼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 “퍽” 하는 소리가 번갈아 석원의 귀를 파고들었다. 석원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저 쇠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탄창이 빈지도 모르고 방아쇠를 당겼던 터였다.

“호룡 동무, 석원 군을 내 방으로 보내도록 해요.”

영란이 희미한 미소를 보내며 방을 나갔다.

“잘했네!”

영란의 모습이 사라지자 호룡이 권총을 잡고 있는 석원의 손을 잡았다.

“사람도 죽여 본 사람이 죽일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실전이라 했던 거고.”

귀에서 윙윙 거리는 호룡의 소리를 들으며 이미 죽은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흡사 인간이 아닌 개처럼 보였다. 그 기이한 현상에 직면하자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막상 일을 끝내고 나니 어떤가?”

“이상하게도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막상 답을 하고는 순간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이 이상한지 호룡에게 묘한 미소를 보냈다.

“그런데 자네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는가?”

이외의 질문에 석원이 시선을 다시 바닥으로 주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생면부지의 인간이었다.

“일전에 만경봉호에 승선했을 때 기억나는가?”

“당연히 기억합니다만. 그 일과 무슨 상관있다고.”

석원이 순간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렸다.

“내 그때 말하지 않았는가. 북조선에서 한번 배신한 놈은 어떻게든 찾아낸다고.”

“그러면 바로 그 사람들의…”

석원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마치 그를 즐기기라도 하듯 호룡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동일이 한여름의 더위를 쫓으며 사무실에서 이런 저런 생각하는 중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이어 비자발급 업무를 맡고 있는 미스 오가 한 뭉치의 서류를 들고 들어섰다.

“뭔가요?”

“오늘 산트라벨 여행사에서 신청한 비자 발급 서류들입니다.”

“또 단체 신청인가요?”

동일이 서류를 받아들고 마치 무게를 재듯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이번에는 일부 개별적으로 신청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검토하고 돌려줄 테니 자리로 돌아가서 기다려 주세요.”

동일이 미소를 보내자 미스 오 역시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자리를 물렸다.

문이 닫히는 모습을 확인한 동일이 단체 비자 신청서류는 제쳐두고 개별 서류를 뒤적였다.

그리고는 한 서류에 시선을 멈추었다.

물론 아베 고타로 명의로 된 신청서류로 역시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하겠다는 사유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를 한쪽으로 제쳐두고 다른 서류들을 뒤적였다. 차주선에게 사전에 설명 들었지만 혹시나 모르는 일이라 샅샅이 살펴보았다.

문석원의 연인인 기미코의 서류는 보이지 않았다.

“문석원 혼자 비자를 신청할 듯합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오사카 바닷가 한적한 곳에서 동일이 차주선과 자리를 함께했다.

“문석원이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기미코를 설득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기미코는 남편 눈치 때문에 차마 함께하지 못할 듯합니다.”

“오히려 잘된 일 아닙니까? 기미코가 함께한다면 일이 상당히 번거로울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여하튼 문석원이 그녀의 남편인 고타로 명의로 비자를 신청할 터인데 문제없겠습니까?”

“우리는 문석원에게 비자를 발급해 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일본인인 고타로에게 발급해 주는 것뿐이지요.”

주선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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