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호위무사'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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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호위무사'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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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잘못된 애국이 낳은 ‘백색 테러’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지난 9일 서울고등법원 청사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출두했다.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 전 원장이 항소심 선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함이었다. 많은 사진 기자들이 동행해 그의 모습을 찍었다. 공개된 사진에는 원 전 원장과 대여섯 명의 군복 입은 남성들이 함께 보여 궁금증을 자아냈다.

60∼70대로 보이는 이들은 보수단체인 ‘애국기동단’ 회원들이었다.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사뭇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킨 그들의 모습은 마치 고대 호위무사를 연상시켰다. 그날 법정 앞에는 같은 복장을 한 20여명이 추가로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곤 법정 앞에서 서로 거수경례를 주고받더니 법정 안으로 들어가 재판을 지켜봤다.

아스팔트 보수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보수단체가 존재한다. 이들은 이번 원 전 원장의 사례처럼 보수정당의 주요 인사들을 호위하기도 하지만 폭력과 폭언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들은 호위무사이기 전에 행동대장이다.

2009년 6월16일 애국기동단 소속 해병대구국결사대와 NIC 회원 30여명은 변함없이 빨간 베레모를 쓰고 어깨에 가스총을 맨 채 덕수궁 분향소 앞을 막고 있던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물론 분향소를 지키려는 시민들과 이를 파괴하려는 보수회원들 사이에 일대 몸싸움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애국기동단 회원 일부는 공중으로 가스총을 발포하는 과격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현장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은 “전직 대통령이 이북에 가서 돈을 퍼줬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 핵을 쏘고 있다”며 “노무현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그를 왜 추모하는가”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무현 알바들이다”라고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또한 결의문을 통해 “좌익 사냥을 하며 우리가 즐기고 있어야 할 이 때, 왜 우리가 이곳에 나와야 하는가”라며 “공권력을 앞장 세워 깽판 세력과 싸워야 할 우리가 이러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의문 낭독이 끝난 후 보수단체 회원 3명은 태극기 위에 혈서로 ‘척결 좌파 세력’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2011년 8월경 정동영 당시 민주당 의원은 광복절에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여했다가 한 보수단체 소속 여성으로부터 욕설과 폭행을 당했다. 그때 현장의 모습이 녹화된 동영상이 세상에 공개됐는데, 동영상 속에는 한 50대 여성이 정 의원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뱉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건이 있은 후 문제의 여성이 소속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체의 대표가 개인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머리채를 잡혀 봉변당한 사건을 놓고 백색테러 운운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며 “얼굴에 상처라도 났는가? 머리가 깨졌는가? 서울 한복판을 폭력과 테러로 얼룩지게 한 장본인들은 바로 거리에 나와 정치선동을 일삼는 민주당과 민노당 국회의원들이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부상을 당한 쪽은 머리채를 잡은 여성이다. 현장에서 남성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119구급차에 실려 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목격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폭언을 한 여성은 갑자기 허리를 다쳤다며 119를 불러 사라졌을 뿐 폭행을 당한 사실은 일체 없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한 극우단체 회원은 4·19혁명 관련 단체 회원들의 천막 농성장에 난입해 커터칼로 현수막을 찢는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연행됐다. 그는 “상식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논리와 행동을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들이 하는데 이성적으로 대응해선 아무 것도 못한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2014년 9월28일에는 ‘서북청년단’(이하 서청)이란 이름의 극우세력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매단 노란 리본을 철거하려고 시도하다 저지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 서청의 한 고위관계자는 인터뷰를 통해 “좀 더 강력한 행동을 하는 우익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중략) 최근 계기는 세월호다. 유족들 뒤에는 특정 지역 단체와 종북 좌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폭언과 폭력…안되면 종북몰이까지
전방위 고소…여권과 커넥션 의혹도

2015년 2월2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당사 앞에는 주로 60∼70대로 보이는 노인 30여명이 모여 새정치연합 권은희 의원의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권은희를 즉각 처벌하라”며 “광주의 딸로 태어나 거짓 인생을 산 권은희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인생을 망친 원흉”이라고 주장했다. 연설을 맡은 사람은 이어서 새정치연합으로 화살을 돌려 “(새정치연합) 당내에는 종북세력이 있다”며 “만약 박근혜 대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면 이석기 같은 북한추종자들이 대법원장 자리에 앉았을 것이 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흔히 ‘아스팔트 보수’라 불린다. 거리 위에서 과격한 행위와 욕설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전문가는 이들의 행위를 두고 “공권력이 자신들을 비호한다는 판단 때문인지 공격적이고 포악하게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 조직의 공통점은 자신의 행동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과격보수단체의 고위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시국이 옛날 해방 공간과 비슷하다. 이걸 다잡기 위해선 좀 과격한 단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자신들을 독일의 극우단체인 ‘네오나치’에 비유해 꼭 필요한 존재들이라 역설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법이나 국가권력으로 안되는 일을 나라를 위해 해줄 수 있다며 그로 인해 국가가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념이 다르다고 상대방에게 폭력과 폭언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그것도 근거 없는 종북몰이로 무고한 사람을 마녀사냥하는 것이라면. 정치계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들 조직의 행위를 흔히 ‘백색테러’라 명명한다. 백색이라 해도 이들의 행위는 테러일 뿐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단체들과 당국 간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정윤회 조사 등 주요 사건이 있으면 보수단체 회원의 고소장이 남발되는 것은 물론 이렇게 접수된 고소장이 다른 것보다 빨리 배당된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이에 대해 중앙지검 관계자는 한 언론을 통해 “대부분의 사건은 당일 배당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며 “밖에서는 의미를 부여할지 모르지만, 며칠이 걸리는지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축했다.

고소장 남발

전문가들은 백색테러가 만연하는 이 시점에 진정한 보수주의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단국대학교의 한 교수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전통적 보수주의가 오히려 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것에 기초한 겸허함·신중함”이라고 말한다.

즉 관용과 베풂 같은 인간적 덕목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 본래적 보수주의의 뜻이라는 것이다. 칼럼은 “현대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킨 물신주의, 이기주의 등에 대해 가장 강력한 비판을 가하는 집단 중 하나가 오히려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고 설명한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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