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무서워서…' 불편한 언론중재법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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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무서워서…' 불편한 언론중재법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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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언론부터 잡도리?

언론은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의 권력으로 불린다. 3부 못지 않은 힘을 가졌다는 뜻이다. 언론의 감시 기능은 힘 있는 자의 전횡을 막고 사회의 사각지대를 들춰낸다. 정보 전달과 여론 환기 기능도 중요하다. 언론 통제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국회 본회의장 ⓒ박성원 기자
▲ 국회 본회의장 ⓒ박성원 기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21대 후반기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에 넘기기로 국민의힘과 합의했다. 문제는 여야 합의 후 당 안팎에서 반발 기류가 거세게 일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입법 속도전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언론중재및피해구제등에관한법률’ 이른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다. 


감시 약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 등 ‘가짜 뉴스’에 대해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언론사가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 매출의 1만분의 1(하한선)부터 1000분의 1(상한선)까지 배상액이 부과될 수 있다. 배상액 선정이 어려울 경우 1억원까지 부과 가능하다. 


법조계에서는 발생한 손해 정도와 무관하게 언론사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산출하는 방식은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해배상액에 하한선을 두는 것이 기본 법리와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정정보도 시 기존 보도와 동일한 시간·분량 및 크기로 싣도록 규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정 대상의 내용이 기존 보도의 일부일 경우 분량을 기존 보도 대비 절반 수준으로 하도록 했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 정정보도 청구만 받아도 무조건 청구 사실을 해당 기사에 병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정 요건이 되는지 따지기 전에 오보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허위·조작 보도와 관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과실 추정’ 조항도 명확성이 떨어진다.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가 진실하지 않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책임을 면제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허위·조작 보도에 배상 강제
모호한 기준·위헌 지적 나와


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해 보도하거나 계속·반복적으로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 제목과 기사 내용이 달라 제목을 왜곡하는 경우, 사진 등 시각 자료와 기사 내용이 달라 왜곡하는 경우에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돼있다. 


이때 입증 책임은 언론사에 있다. 일반적으로 손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쪽에 입증 책임이 있던 이전까지의 사법체계 개념과는 다른 방향이다. 이 때문에 언론사에 입증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달 27일 민주당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열린민주당과 함께 표결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한 것을 두고 “독재정권이 캄캄한 밀실에서 못된 짓하던 그 모습, 그대로 판박이처럼 닮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원내대표는 “법안심사 과정을 공개하자는 야당의 요청을 묵살한 채 폐쇄된 밀실에서 마치 군사 작전하듯 법안처리를 했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정권 말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 보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지하철 가판대에 놓여있는 일간지들 ⓒ뉴시스
▲ 지하철 가판대에 놓여있는 일간지들 ⓒ뉴시스

언론 단체들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물론 그동안 정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낸 적이 거의 없는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까지 비판에 동참했다. 


관훈클럽은 “1957년 창립 이래 정치 현안에 대한 공식 의견 표명을 자제해왔다. 언론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가치 수호를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여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우리 사회 저널리즘의 미래와 국민의 알 권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여당 단독 강행 처리 예고
야당·언론 단체 강력 반발


그러면서 “대통령 임기 말과 선거를 앞둔 시점에 여당 단독으로(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것은 언론의 권력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자초하는 일이어서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권과 정치인, 고위 관료, 재력가 등 힘 있는 이들을 상대로 한 언론의 감시기능이 약화되면 이는 사회 전반의 불의와 부패를 부추겨 결국 국민 모두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권 대선후보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환영의 뜻을, 야권 대선후보들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논두렁 시계’ 보도, 4·7 지방선거 당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언급된 생태탕 보도 등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각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문재인정부와 집권 여당의 ‘언론 길들이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언론 관련 법 개정 시도가 언론중재법에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포털사이트의 뉴스 편집권을 제한하는 ‘신문법’과 언론 영향력 평가로 정부 광고를 집행하는 일명 ‘미디어 바우처법’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민주당이 ‘언론개혁 3법’으로 주장하고 있는 법안들이다.


국민 피해


정치권 안팎의 반발에도 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라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야당과 최대한 협의한다면서도 필요에 따라 국회법 절차에 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의석수 우위를 바탕으로 표결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문법과 미디어 바우처법도 늦어도 9월 안에 마무리한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일요시사 장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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