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한 기도 없는 고흥 '쑥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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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한 기도 없는 고흥 '쑥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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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몰리는 무덤 없는 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국내 산야 곳곳엔 분묘가 종종 목격되는데 최근 후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방치 중인 분묘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화장 장려 시책 역시 반응이 시원찮다. 문제는 외면받은 묘지의 주인도 모른다는 점이다. 좁은 국토의 이용 효율성을 높이면서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새로운 묘지제도 정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남 나로도 앞에 위치해 있는 작은 섬 쑥섬은 단 한 기의 산소도 존재하지 않는 섬으로 유명하다. ⓒ고흥군
▲ 전남 나로도 앞에 위치해 있는 작은 섬 쑥섬은 단 한 기의 산소도 존재하지 않는 섬으로 유명하다. ⓒ고흥군

A씨는 1시간에 한 번꼴로 나로도항인 축정에서 쑥섬을 오가는 여객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A씨는 선장이 과거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3년 후배라고 소개했다. 쑥섬은 나로도 앞의 아주 작은 섬이다. A씨는 본인의 가까운 친구들 모두 이곳 쑥섬에서 태어나 자랐다며 선장을 돌아봤다. 

풍습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이 작은 섬에 애들이 왜 그렇게 많을까요? 우리 중학교 친구들만 하더라도 20명이 넘을걸요? 친구, 몇명인가? 아 참 쑥섬에는 ‘산소’가 하나도 없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그것도 빠뜨렸네요.”


섬을 향하는 배 안에서 A씨는 연신 들뜬 내색을 내비쳤다.

쑥섬은 전라남도 나로도 앞에 위치해 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2022년 대한민국에서 가볼 만한 100곳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관광객들은 섬에 들어오면 특이한 안내문을 볼 수 있는데 쑥섬에는 ‘산소가 한 기도 없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쑥섬은 마을주민들의 노력이 모여 무덤이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섬에 무덤이 단 한 기도 없게 된 이유도 눈여겨봄직하다. 작은 섬에서 살기 위해 땅을 효율적으로 만든 자발적인 주민들의 실천들이 이어져 이뤄낸 성과다.


주민들은 더불어 살기 위해 서로 조심하고, 서로 자제하는 생활문화를 만들었는데 이런 변화가 풍습과 문화로 이어졌다. 현재 쑥섬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더불어 사는 문화 풍습 또한 이색적인 풍광으로 꼽혀 유명해졌다.


최근 들어 후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방치된 분묘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명당 의식 때문에 묘소 대부분이 집단화되지 못한 상태로 선산이나 깊숙한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정부의 화장 장려 시책에도 불구하고 아직 화장률은 20.5% 수준에 불과하다.


어린 나이에 요절하거나 무의무탁자가 아니면 주로 매장이 진행된다.


그 결과 우리 산야 곳곳에서는 분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묘지 중 약 69%에 해당하는 1338만여기가량은 개별묘지 형태로 분산돼있다. 이 중 36%에 달하는 700만기가량은 연고자가 없이 방치된 무연고 분묘로 추산된다.


마을 주민들 노력 모여 유명세
후손 끊기면서 방치 분묘 늘어


실제 경북 구미시 청년회원 30여명이 최근 구미시립 공설묘지에서 제초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올해로 8년째 무연고 분묘 벌초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벌초작업을 벌인 연고가 없는 분묘에 안치된 ‘무연고 분묘’는 1320기에 이른다.


청년회원들은 “실제 후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무연고 분묘가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며 벌초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pixabay
▲ ⓒpixabay

방치된 무연고 분묘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문화의 변화다. 핵가족화로 사회변화가 늘어났다.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이 늘어나면서 조상을 숭배하고 성묘하는 전통문화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분묘는 산과 들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관리하기 어렵다. 여타 전통문화보다 관심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경제난에 시달리며 직장에 얽매이게 된 바쁜 현대인들에게 하루를 온전히 비워야 하는 성묘가 점차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 19사태로 심해진 개인주의로 인해 성과주의와 일을 우선시 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초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두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 역시 위기 의식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묘지문화에 대한 대수술을 시도한 바 있다. 시한부 묘지제도와 묘지 면적의 축소를 골자로 하는 묘지 및 매장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마련했으나 타 부처의 이해 부족으로 경제차관회의에서 무기한 보류됐다.


명당을 원하고 자기 땅이면 마음대로 묘를 써도 좋다는 생각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는 묘지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주변 경관을 훼손할뿐더러 각종 국토이용사업과도 마찰을 빚어왔다. 이에 점진적 개혁이 이뤄지도록 끈질긴 노력에 의한 일관된 정부의 정책 선행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무연고’ 사회적 문제로
지자체 해법 없어 골치


과거 전남 무안군 인근 천주교 공원묘지에서는 1987년 공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현재까지 약 3000기 이상의 불법묘지가 조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무안군은 불법 조성 묘지에 대한 현장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매년 과태료만 부과했다.


공원묘지의 다른 유가족들은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도 않은 채 소극 행정으로 일관해 특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반면 무안군도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관련 부서 담당 직원들이 매년 인사이동 등의 문제로 업무 연속성이 떨어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타 타개 방안이 없어 공원묘지 관리소 측과 무안군이 벌이는 행정 갈등은 온전히 유가족에게 피해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 서울시공단은 묘지 화장 비용 9만원과 납골당 10년 관리비 25만원 등을 자체 예산을 들여 지원하고 있다. 후손들의 무관심 속에 시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셈이다.


분묘 ⓒ뉴시스
▲ 분묘 ⓒ뉴시스

특히 무연고 분묘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탓에 비석이 훼손되거나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 후손을 찾기도 여의치 않다. 묘지의 모습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며 사망자의 이름도 남아 있지 않아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때문에 관리가 안 되는 분묘들이 환경 훼손과 외관상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받는 동시에 분묘 관리비 체납도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뚜렷한 타개책이 요원해 지자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현금성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모델


서울시는 2억원을 투입해 400기 정도의 방치 분묘를 개장·화장하는 것을 지원할 예정이다. 서울시설공단은 올해 말 까지 용미1·2묘지, 벽제묘지, 망우리묘지, 내곡리 묘지 등 시립묘지 5곳에 가족 묘역을 둔 유족이 개장·화장할 경우 최대 50만원을 지원한다. 공단은 개장·화장 1건에 80만~100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공단은 공고를 통해 묘지의 연고자를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후손들의 관심 부족으로 쉽지 않은 상황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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