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내려놓는 의원들의 ‘금단현상’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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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내려놓는 의원들의 ‘금단현상’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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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는 떼도 특권은 못 버려!

이주현 기자  2012.03.02 20:05:04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4·11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생존이 걸린 공천권획득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을 받고 당선된 이들은 엄청난 특혜를 받으며 4년을 호의호식할 수 있지만 낙선한 이들은 엄청난 데미지를 입는다. 현직의원이 도전에 실패해 직함 앞에 ‘전(前)’자를 달게 된다면 데미지의 강도는 더욱더 크다. 엄청난 특권들이 사라져 버리고 나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껴 일종의 ‘금단현상’도 겪는다고 한다. 특권을 갈망하는 그들만의 금단현상을 살펴봤다.

권력·돈·비서에 공항 이용 특전까지, 낙천·낙선 땐 금단현상
불출마 선언한 정장선 “금배지 특권 내려놓기 쉽지 않네요”

국회의원들이 맛보는 특권의 달콤함은 일반 국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평생연금에 열차표와 항공권, 유류비, 비서들 월급까지…. 이 모든 것이 ‘공짜’다. 회장님들도 부러워 할 엄청난 혜택이다.

여기에다 헌법으로 보장된 불체포·면책특권까지 더해진다면 이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도 금배지를 다는 순간 생기는 특권이 2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본지 835호 ‘무소불위 국회의원 그들만의 특권 집중분석’ 기사 참조).

2만5000원짜리 의원배지가 ‘금배지’로 불리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어서다.

금배지가 뭐기에

이런 달콤함을 맛본 이들에게 특권을 한순간에 털어내 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신들의 손발 역할을 하던 수행비서가 없어지니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부터 겪는다.

금단현상의 첫 번째로 찾아오는 증상은 걸려온 전화를 스스로 받을 때 느끼는 처량함이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수행비서가 다 받아주었는데 이젠 스스로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자신을 초라하다고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금단증상은 심리적으로 도저히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공황상태를 초래한다고 한다.

한 전직의원은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를 받을 때마다 배지가 떨어진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요금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내고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3선의 정장선 의원은 “국회의원직에 따르는 권력과 특권을 하나씩 포기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솔직한 고백을 할 정도였다.

검소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정 의원은 ‘내려놓기’ 연습을 위해, 지난달 해외에 나갈 땐 직접 수속을 해봤다고 한다.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민주통합당 정장선 의원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민주통합당 정장선 의원
지난해 12월 출국 때는 “이런저런 의전을 받아가며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할 일이 있었는데, 배지를 뗀 뒤에는 공항 이용이 얼마나 고단할지 걱정되더라”고 말했다.

출국수속은 공항 측에서 해주고, 보안검색은 약식으로 받으며, 의전실을 무료로 이용했던 ‘특권’과의 작별이 두렵다는 것이다.

주변의 태도 변화 또한 그들에게 적잖은 공허감과 허탈감을 안겨준다. 정 의원은 “굉장히 가깝게 대했던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일도 생겼다”며 “주류사회에서 역할을 하다가 갑자기 떨어져 나갔을 경우 생기는 허탈감과 공허감을 이겨나갈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의 한 전직의원은 불교·기독교 등을 전전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퇴임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 되는 법조인과 사업가 출신을 제외한 다수의 정치인들은 생계도 걱정이다.

정 의원 역시 최대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그가 지난해 신고한 재산은 3억9800여만 원이다. 행정공무원 출신이라 별다른 자격증도 없어 취업도 마땅찮다.

방송인 출신의 한 전직의원은 “앵커는 떨어지면 백수가 된다. 변호사들이 부럽다”고 밝힐 정도다.

정 의원은 65세 이상 지급되는 120만 원의 지원금 대상도 아니라 생계를 위해 친구들이 하는 중소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을까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낙선한 의원들은 ‘정치 백수’가 되거나 칩거하는 사람도 적잖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 재입성을 노리고 있는 한 후보자는 “금배지를 다시 달 수 있다면 처·자식 빼고 다 바꿀 수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다.

정 의원도 고민을 거듭하다 아내(중학교 교사)에게 “다시 나서볼까”라고 했더니 “이혼하고 출마하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설을 통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롭다는 사실을 잘 알 텐데 제발 좀 그만두라고 해도 막무가내인 걸 보면 중독증상이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염려했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인 보좌제가 아닌 비서진 풀(pool)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정착시키면 특정 상임위에서 오랜 경험을 한 보좌진을 분야별로 활용할 수 있어 입법 활동이 더 활발해질 수 있고 보좌진의 직업적 안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물론 보좌진의 비리 연루도 막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생계유지도 걱정

이처럼 국회의원들은 금배지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공천권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생기고 중진의원들이 ‘용퇴 압력’을 받으면서도 버티는 것은 이러한 이유들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 전면에 섰을 때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고 금배지를 향한 열망이 심중에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최근 웰빙시대를 맞이해 금연열풍이 드세다. 금연에 반드시 수반되는 금단현상을 잘 이겨내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듯이 국회의원을 꿈꾸는 이들이 특권을 내려놓는 금단현상을 잘 이겨낸다면 대한민국은 더욱더 건강하고 깨끗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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