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구석구석 둘러본 ‘노짱이 꿈꾼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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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구석구석 둘러본 ‘노짱이 꿈꾼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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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김설아 기자  2012.05.09 09:13:39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딱 3년 전, 그러니까 2009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그해 5월23일 노무현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향년 63세의 일기로 서거했기 때문이다. 어린 손녀를 태운 자전거를 몰며 함박웃음을 짓던 밀짚모자 노무현을 국민들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연대기는 그렇게 끝이 났고, 그가 만들었던 시간은 마감되었다. 그 자리는 남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3년, 세 번째 5월이 다시 찾아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추모전엔 다시 사람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벌써3년, 그곳에선 정말 잘 지내시나요.
때 이른 초여름의 열기가 내려쬐던 지난 5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노무현이 꿈꾼 나라’ 추모전시회를 찾았다. 이른 무더위 속에서도 3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이 손을 잡고 전시회장을 찾은 30~40대 부부, 풋풋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20대 대학생, 편안한 차림의 할머니부터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아저씨까지…. 3년이 지났는데도 그를 떠나보낸 안타까움은 계속되는 듯했다.

과연 이곳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치열했던 삶과 다시 마주하다

전시관을 들어서는 입구에 들어서자 군복에 환한 미소의 노 전 대통령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그리고 만화가 강풀의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빗속에 밀짚모자가 하나 떠 있고, 모자를 쓴 사람 대신 자라나는 꽃 한 송이가 있다.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왜 비가 오면 당신 생각이 나는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강풀이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그린 이 그림을 지나면 ‘노무현이 꿈꾼 나라’ 전시실로 이동하게 된다. 이번 추모전시회는 ‘인간 노무현’의 출생에서부터 서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테마로 구성되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19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다”라는 글로 인간 노무현의  일대기가 시작된다.

노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 졸업앨범, 그리고 권양숙 여사와 커피한잔 값 들이는 일 없이 맨입으로 연애한 이야기까지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가 연표로 정리되어 있다.

한 자 한 자, 노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꼼꼼히 읽는 관람객들이 많아 여느 전시와 달리 동선의 움직임이 매우 느리다. “벌써 3년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아” 20대 여성 관람객들이 대화를 나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모습들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서민 여러분과 소주 한 잔을 함께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대통령이 되고자 합니다!” 연대기 사이사이에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책과 읽은 책, 모자·필기구·안경·재떨이 등 유품과 각종 증명서 및 명함 등도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전시회…잔잔·애틋한 추모행렬
출생에서부터 서거까지 ‘인간 노무현’이 걸어온 길 재조명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토로했다.

광주에서 온 윤이경(30·남)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나에게 늘 고마움이었고 미안함이었다. 그 분을 통해 식어버렸던 내 마음 속의 열정이 다시 타올랐고 그 분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통해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미래를 봤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너무도 쉽게 그분에게서 등을 돌렸고 그분은 너무도 어이없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분을 그런 극단적인 결정으로 내 몬 것은 새로운 권력의 횡포가 아닌 나의 무관심이었고 손가락질이었다. 그렇게 그분이 떠난 후에야 나는 그분의 존재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학생 김지혜(23·여)씨는 “진실과 올바른 것, 우리 국민들을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던 대통령님의 모습을 늘 존경해 왔다”며 “‘국민고생시대’에 살고 있는 현정권에서 더더욱 노 대통령이 그립고, 그런 그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는 노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에 대한 어록들과 자료들이 등장한다.

‘민주주의’ 부분에는 노 전 대통령 마지막 신년인사회였던 2008년 1월3일 “민주주의가 많이 아쉽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왜 일찍 만족하고 일찍 포기해 버릴까, 이런 답답함이 있습니다”라고 토로한 심경을 소개했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정리해 생전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복지, 경제, 외교 등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의 업적과 정치 철학에 대해서도 정리되어 있고, 노 전 대통령의 피규어와 함께 방북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수원에서 온 관람객 정승연(27·여)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시대정신과 정치철학을 둘러보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그를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써 부끄럽다”며 “이젠 시민이 힘을 모아 민주주의를 지키고, 성장해 나가야 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바로 이 메시지를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MB시대 깊어진 ‘노무현 향수’

이쯤 발걸음을 옮기면 눈시울을 붉히는 관람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에 관련한 전시에서는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는 관람객도 보였다.

서거 당시 치러진 국민장과 노란 추모물결 영상에 관람객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사랑합니다. 편히 쉬세요”라는 영상의 마지막 메시지도 관람객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냄새 풍기는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미공개 사진전’ 코너. 그동안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대통령의 공간과 일상모습 등 30여점이 새로 공개됐다. 청와대 본관에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손녀 서은이와 함께한 ‘할아버지 노무현’의 모습은 물론 민간인 노무현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공개된 사진에는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 여사와 대통령 전용기에서 라면으로 식사하고 있는 모습, 관저 이발소에서 분장사로부터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모습, 손녀와 함께 잔디밭에 앉아 과자를 먹는 모습, 비둘기들에게 ‘이리온나’라는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 등이 담겨있다.

또 사진과 더불어 “사랑하는 할매 할배”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사인하고 손녀들의 이름을 각각 써넣어 서로 구분할 수 있게 배려한 손녀들의 장화 세 켤레와 밀짚모자도 함께 전시돼 있다.

미공개 사진 30여점, 영상 및 유품 공개에 가슴 먹먹
관람객들 “해가 지날수록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대통령”

미공개 사진을 보고 나오면 한 쪽 벽면에 빼곡히 들어찬 ‘방문객들의 메시지’가 있다. “당신의 서거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돌김”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꿈 꾼 나라 꼭 이루겠습니다!-형규·민규 아빠” “당신을 사랑하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 합니다” 등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들이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노 전 대통령의 살아생전 ‘말씀’을 캘리그래프(손글씨)로 손수 엽서에 적어주는 서비스도 시행한다. 재능기부를 한 캘리그피스트인 허수연씨는 “팔이 아플까 미안해하지 마셔요. 저는 마음으로 씁니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관람객들이 원하는 글귀를 그 자리에서 직접 쓴 뒤 나눠줬다.

그 옆에선 추모 특별 영상전이 진행 중이다. 앉아서 편히 볼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퇴임 뒤 활동과 국회 5공 청문회 장면, 노래 부르는 모습 등 노 대통령을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이 전시된다.

이 밖에도 판화, 바람개비 등을 나눠 주는 서비스와 노 전 대통령 관련 출판물, 강풀의 일러스트로 꾸며진 휴대폰 케이스, 배지, 티셔츠, 가방 등을 파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전시회 관람은 무료다. 대신 출구 쪽에 ‘자발적 모금함’이 있다. 대부분 관람객들은 적게는 몇 천원에서 많게는 몇 만원까지 자발적 요금을 내고 있었다.  

관람을 마친 김영진(48·남)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얼마나 시대에 앞서갔는지 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그의 발자취를 보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대통령이 있었음을 감사하고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기리며

또 다른 관람객 이민규(33·남)씨는 “전시를 보는 내내 죄송하고 죄송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그러나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노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고 우리는 그 분이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를 풀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곳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번 추모전시회가 우리 사회의 과제를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며 “밀짚모자가 유난히 잘 어울리던 그를 더는 볼 수 없지만 그의 소신과 철학을 실천해야 한다는 슬픈 다짐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때 이른 더위 속에서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자 하는 관람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전시회장 밖으로 나오자 관람객들의 긴 행렬이 세종문화회관을 돌아서까지 이어졌다.

관람을 마친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는 또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채워졌다. 노무현이 꿈 꾼 나라 속으로…. 그들의 수많은 발걸음은 어떤 의미일까.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전시회에서 받은 노란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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