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6인 현미경 검증⑮ 고향(지역지지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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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대선주자 6인 현미경 검증⑮ 고향(지역지지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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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가?" 고향 민심 잡아야 대권 잡는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 4인(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고 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학력·롤모델·취미·별명·저서·친구까지 살펴본데 이어 열다섯 번째로 그들의 '고향'을 살펴봤다.

지역주의는 반드시 척결해야할 구태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15대 대선 당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라도 지역에서 무려 98%의 지지율을 얻어낸 것은 신화로 불리면서도 여전히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지역주의의 벽이 얼마나 높은가를 실감하게 해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선출마의 뜻을 밝힌 후보들이라면 그들의 고향(지역지지 기반) 역시 중요한 검증 대상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구·경북>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고향"

지난 8월9일 경북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선경선 대구·경북 합동토론회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의 팬미팅 현장을 방불케 했다. 청중들은 다른 후보가 연설을 할 땐 야유를 보내다 박 후보가 등장했을 땐 체육관이 떠나갈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심지어 평소 박 후보를 강하게 비판해온 김문수 후보는 이날 한 남성으로부터 멱살을 잡히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박 후보의 입지가 얼마나 탄탄한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박 후보는 1952년 2월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 아버지인 박정희는 겨우 여순사건의 회오리를 벗어나 대구에 집을 마련한 상태였다. 박 후보는 한국전쟁이 끝나자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박 후보가 대구사람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박 후보에게 대구는 매우 특별한 도시다. 박 후보가 정치와 처음 인연을 맺게 해준 곳이 바로 대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무려 18년여를 두문불출하던 박 후보는 1998년 4월 치러진 대구시 달성군의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15대 대선 당시 TK(대구·경북)의 표심을 흔들 적임자로 박 후보가 지목돼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박 후보를 직접 설득해 정치에 입문시킨 것이다. 이후 박 후보는 대구 달성에서 내리 네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박 후보가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박 전 대통령의 후광이 그가 가진 정치적 자산의 전부였다. 하지만 박 후보는 여러차례 위기에서 당을 구해내며 곧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박 후보의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의 고향 역시 경북이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 171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1917년 태어나 1937년까지 살았던 집을 복원한 것이다. 구미시는 최근 이 일대를 대규모 공원으로 꾸몄다.

1979년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박 후보의 공식 정치행보가 시작된 곳도 바로 이 생가였다. 박 후보는 정치입문을 결심한 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생가에 초청해 입당을 선언했다. 생가는 그 이후로 '정치권의 성지'가 됐다. 경북에서는 선거에 나서려는 많은 정치인들이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자신의 출마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재인 <경남·부산>
"태어난 곳은 거제, 정치적 고향은 부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3년 1월24일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함흥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흥남시청 농업계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 때 미군 군용함정(LST)을 타고 남한으로 피난 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하지만 문 후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를 했다. 이후 문 후보는 부산남항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또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법무법인 부산에서 같이 활동했다.

문 후보는 부산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굵직한 시국사건들을 변론했다. 비록 거제도에서 태어났지만 문 후보의 정치적 지역 지지기반은 누가 뭐래도 부산·경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문 후보는 지난 4·11 총선 당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산 총선 패배론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시 문 후보가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는 '낙동강벨트' 전략으로 이 지역 선거전을 주도했음에도 부산·울산·경남 의석수가 단 3석에 그쳤고, 결국 이는 문 후보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단 의석수만을 놓고 본다면 2004년 총선에서 3석, 2008년 총선에서 2석, 이번에 다시 3석이 됐다. 지역출신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전면에 나서 치른 선거치고는 아쉬운 결과다.

그러나 문 후보의 낙동강벨트 전략을 실패라고 잘라 말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후보들의 득표력이 전체적으로 크고 넓어졌다. 부산에서 45% 이상을 득표한 후보만 4명이나 됐고, 40% 이상은 7명에 이르렀다.

경남에서도 낙동강벨트를 중심으로 새누리당 후보와 초박빙의 승부를 펼친 곳이 적지 않았다. 비록 승리하진 못했지만 문 후보의 힘을 보여준 것만큼은 사실이라는 평가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문 후보의 정치적 고향 부산의 표심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학규 <경기도 시흥>
"누가 뭐래도 난 경기도민"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47년 11월22일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손 후보는 10남매 중 막내였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그가 4살 되던 해인 195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965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 7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1∼1988년에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수료하는 등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하대와 서강대 정치학과에서 4년간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1993년 민주자유당(현 새누리당의 전신)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손 후보는 제14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경기도 시흥이 고향인 손 후보는 특이하게도 경기도 광명을에 출마했다. 당시 보궐선거 지역이 경기도 광명, 부산 사하, 부산 동래갑 세 곳 뿐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손 후보는 당당히 당선증을 거머쥐었고 이후 경기도 광명시는 손 후보의 정치적 고향이 되었다.

손 후보는 경기도 광명시에서만 3선을 했다. 손 후보는 광명시와의 인연에 대해 "광명시민들이 나를 국회의원으로, 경기도지사로, 장관으로 만들어 준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손 후보가 소유하고 있는 약 4억원대의 경기 광명시 철산동의 아파트는 그의 가장 큰 재산이기도 하다.

한편 손 후보의 고향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인데 현재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으로 바뀌어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손 후보가 지역지지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도민인 척 하려고 옛날 주소를 출생지로 그대로 쓰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그만큼 경기도는 손 후보의 가장 큰 지지기반이다. 그러나 경기도는 영호남 등과 비교할 때 지역출신 정치인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가 많아 이번 대선정국에서 경기도의 표심이 손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미지수다.

 

정세균 <전북 진안>
"나는 전국구 정치인"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0년 9월26일 전북 진안에서 4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오지의 환경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검정고시를 치르고서야 중학교 졸업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전주 신흥고에 진학하게 된 이후 뛰어난 성적으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면서 지역에서는 촉망받는 인재가 됐다.

정 후보는 지난 1995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정치입문 제안을 받고 1995년 총재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정 후보는 민주당 진안·무주·장수 지구당위원장과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전북도지부 회장을 거쳐 다음해 고향인 진안·무주·장수 지역구에서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그는 이후 18대 총선까지 고향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한다.

정 후보는 이러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정치 입문 후 승승장구의 행보를 이어갔다. 정 후보가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하고 당대표를 세 번이나 역임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에서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 후보는 지난 1일 열린 민주당 전북지역 경선에서도 이러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정 후보는 그동안의 경선과정에서 줄곧 꼴찌를 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너무 탄탄한 정 후보의 지역기반은 그가 전국구 정치인으로 도약하는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정 후보의 호남 이미지가 너무 강해 타지역 유권자들이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다. 때문에 정 후보는 지난 4·11 총선에서 정치입문 17년 만에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정치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친박계의 좌장격인 홍사덕 후보와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정 후보는 아무런 지역기반이 없는 종로구에서 맨주먹으로 승부해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종로구에서의 승리는 정 후보가 이번 대선출마 결심을 굳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김두관 <경남 남해>
"지역주의 극복이 목표"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는 1959년 4월10일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태어났다. 김 후보는 남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남해에서 보냈으며 정치 입문도 남해에서 시작했다.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김 후보는 젊은 시절 고향에서 남해농민회를 조직하고 농민운동을 펼쳤으며 고향 이어리에서 이장을 맡기도 했다.

또 <남해신문>을 창간해 직접 신문을 배달하며 마을주민들과 소통해 나갔다. 이 같은 행보는 이후 김 후보가 37세의 최연소 남해군수에 당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1995년 초대 지방선거와 1998년 2대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연이어 남해군수로 당선됐다.

그러나 김 후보는 지역주의의 폐단을 극복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고 스스로 회고 한다. 남해에서 나고 자라 남해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한 김 후보이기에 무척 아이러니 하다.

김 후보는 평소 기득권층과 결탁한 지역 패권주의세력이 이러한 지역정서를 이용해 국민 생활과 직결된 각종 정치 사회적 쟁점을 왜곡하고 국민 화합은 물론, 지역균형 발전과 미래지향적 가치들의 발현을 가로막아 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김 후보는 집권 보수 여당의 텃밭인 PK(부산·경남)지역에서 패배를 무릅쓰고 야당이나 무소속으로 수차례 국회의원 선거와 경남도지사 선거에 도전했다. 남해군수를 2번이나 연임한 김 후보였지만 이 과정에서 김 후보는 무려 5번이나 선거에서 패배하는 아픔을 맛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집권여당의 후보가 되면 쉽게 당선될 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지역주의의 벽을 깨트리고 당당히 경상남도지사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수차례 실패에도 결코 영남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 후보의 행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사람들은 그를 '리틀 노무현'으로 불렀다. 마침내 지역주의의 벽을 깨트린 그는 대선에서도 지역주의의 벽을 깨트리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안철수 <부산>
"부산토박이, 롯데자이언츠 왕팬"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진구 범천2동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해 10대 시절을 모두 부산에서 보냈다.

안 원장의 할아버지 또한 일제강점기 때 부산상고를 나와 은행 지점장을 지냈다. 안 원장의 아버지 안영모 씨도 부산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 지난 1963년 범천의원을 개원한 뒤 부산진구 범천동에 터를 잡고 49년간 병원을 운영했다. 비록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줄곧 서울에서 생활한 안 원장이지만 그의 정치기반은 부산과 경남에 있음이 확실하다.

실제로 그는 야구의 도시 부산사람답게 야구도 무척 좋아한다. 자신의 고향인 부산 연고팀 롯데자이언츠에 대해 특히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안 원장은 롯데가 성적이 나쁜 시즌에는 가슴이 아파 아예 경기를 보지 않기도 한다고 한다.

안 원장은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서도 "스포츠 중에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부산고를 다닐 때는 부산고가 3년 동안 전국 우승을 다섯 번이나 했을 정도로 야구 명문이라 응원하러 많이 다녔고, 이후 롯데 팬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안 원장이 부산·경남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의 대선에서 부산·경남은 새누리당 후보들에겐 말 그대로 텃밭이었다. 지난 대선 때는 야권 후보를 모두 통틀어 15% 안팎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경남 김해가 고향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부산·경남권에서 30% 득표에 실패했다. 게다가 올해 대선은 박근혜, 문재인, 김두관 후보와 안철수 원장까지 유력대선후보 중 무려 4명이 경상권이다.

그럼에도 안 원장이 부산·경남권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난 7월19일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 되었을 때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가장 많이 판매 된 곳은 안 원장의 고향인 부산(7.7%)이었으며 경남 5.3%, 인천 4.7%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종의 정치적 실험을 하고 있는 안 원장이 선거과정에서 과연 구태정치로 치부되는 '지연'을 활용할 지는 의문이다.

안 원장 모교인 부산고 총동문회나 동기회 등에서도 언론 접촉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이다. 부산고 재경동문회측도 일찌감치 "본인이 깃발을 들면 도울 의사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안 원장의 고향이 부산이긴 하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어 투표함을 열어보면 경남권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안 원장이 부산·경남에서 어떤 돌풍을 일으킬 지는 예측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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