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공무원 70억 횡령사건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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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공무원 70억 횡령사건 전말

일요시사 0 1112 0 0

‘근면성실’ 시청 샌님의 기막힌 이중생활

[일요시사=사회팀] 전남 여수가 발칵 뒤집혔다. 여수시청 회계과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70억대 공금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 일개 지방공무원의 뻔뻔한 횡령 혐의가 밝혀지자 곳곳에서는 공무원의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76억원. 대담한 공금 횡령으로 부인과 함께 철창신세를 지게 된 남성이 있다. 그는 여수시청 회계과 8급 공무원인 김모(47)씨. 김씨는 지각·결근 한번 한 적 없는 근면 성실한 직원으로 아무도 그의 소름끼칠만한 이중생활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인이 사채놀이를 하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자 거액의 빚을 갚기 위해 공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빚만 갚기 위해 시작했던 공금 횡령은 개인적인 용도로 수십억 대까지 불어났고, 검찰수사 결과 김씨가 3년 동안 저지른 음흉한 행적이 모두 발각됐다.

대형 국고 손실

김씨는 지난 1992년 기능 10급으로 임용됐다. 교동사무소, 수도과 등에서 검침업무를 거쳐 2000년 9월경 기획예산과, 2년 뒤인 2002년에는 지금의 회계과로 부서를 옮겼다. 그는 2006년 9월인 4년 동안 별 문제없이 회계업무를 수행한 후 잠시 총무과로 부서를 옮기다 3년 뒤 2009년 7월, 회계과로 다시 복귀했다. 그는 무려 7년을 넘는 세월 동안 관공서의 직원급여, 세입·세출 등 회계업무를 전담하고 있었다. 운 좋게 다시 제자리를 찾은 김씨는 전입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범행을 시작했다. 원인 역시 돈에 있었다.

김씨의 부인은 지난 2007년경부터 사채놀음에 빠져있었다. 사채업자에게 사채를 받아 지인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시작했지만 채무자가 말없이 도망가면서 채권회수가 부진하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대부업체로부터 빌린 8억원을 변제하지 못했고, 고리 사채 또한 체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결국 2009년경에는 고리사채만 수십억원에 다다를 정도가 됐다. 채권자들은 하루를 멀다하고 변제를 독촉했고, 이에 정신적 충격을 받는 김씨 부인은 정신과 치료를 동반한 빙의를 겪기도 했다.

김씨는 부인의 간곡한 요청과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던 중 빚이라도 갚기 위해 공금 횡령을 결심했다. 그러나 김씨의 횡령은 해가 갈수록 대담해졌고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몇 차례에 걸친 공금 빼돌리기로 모든 채무는 변제했지만, 김씨의 돈에 대한 탐욕은 끝이 없었다.

그는 지인들로부터 64억원에 달하는 금액에 대한 차명계좌 11개를 개설했다. 김씨는 64억원 중 반은 채무변제로, 나머지 반은 친인척 명의를 이용해 부동산 구입과 차량 4대 구입, 생활비 충당이란 명목하에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돈이었던 것처럼 공금을 지출했다. 나머지 12억원은 대출금 상환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4억원에 이르는 돈은 또 다른 지인 2명에게 전했다. 김씨는 지인 중 1명에게 급전이 필요하다는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받아 돈을 빌려주기 위해 공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김씨는 3년 동안 거액을 횡령했음에도 모든 감사와 단속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시청 내 관리감독이 부실한 점을 이용, 관련 문서를 위조하거나 허위로 작성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지방자치제의 모든 업무는 전산화(e-호조시스템)돼 있지만, 유독 여수시청 내 김씨가 전담한 회계업무는 수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기로 업무를 하는 게 전산보다 정확하고 빠르다”는 김씨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평소 근면 성실은 물론 잡음을 내지 않고 묵묵히 일해 온 그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던 여수시는 그의 업무만은 예외로 해줬다. 만약 여수시가 예산과 지출 등을 포함한 모든 재정 상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산시스템만 사용했더라도 3년간 76억원에 이르는 거대 횡령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에선 근면성실…밖에선 횡령금으로 부귀영화
부인 사채 불자 지인들 차명계좌로 공금 빼돌려

매년 치르는 수박 겉핥기식 감사도 공금횡령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2009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3년간 10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회계감사를 실시해왔지만 공무원들의 안이한 업무수행 때문에 김씨의 거대 횡령은 발견할 수조차 없었다. 여수시는 사건 보름 전에도 시청 관계자의 비리 제보를 받고 특별감사를 실시한 바 있으나 단 한 차례의 비리도 잡아내지 못했다. 공직감찰 과정에서 들통난 김씨의 범행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와 허술한 업무체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예로 인식되고 있다.

김씨는 동료 직원의 횡령 제보에 따른 감사를 받게 되자 수면제 복용과 승용차 내에 번개탄을 피운 채 운전하는 등 부인과 함께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살기도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재차 감사를 받으면서 모든 범행이 낱낱이 밝혀졌고 지난달 29일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 등에 대한 자금을 추적한 결과 김씨 부인 명의 및 차명계좌에는 잔고가 거의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했고, 김씨 소유의 아파트 1채와 횡령자금이 유입된 친인척 명의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가압류를 신청했다.

회계과의 다른 동료들은 김씨의 범행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료 중 1명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가 자신의 범행이 탄로 나지 않을까 두려움과 초조함 속에서 돈을 빼내려는 기만술이었음을 알았다”며 “평소 성실하고 검소한 사람이라 공금에 손댔을 거라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또 다른 직원은 “말수도 적고 평판도 나쁘지 않았던 김씨가 범죄 때문에 가까운 친구들도 멀리하고 아내와 범행에 참여한 친인척들만 상대하다보니 일그러진 삶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씨는 회사내외로 철저한 이중생활을 일삼아 왔다. 출근할 때에는 소형차를 끌고 다니며 평범한 복장을 하고 다녔고, 돈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 반면 그의 부인은 외제차에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등 김씨가 횡령한 자금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해 왔다.

허술한 관리시스템

평생 밝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김씨의 위선적인 행동은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만천하에 공개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의 횡령자금은 이보다 더 많은 100억대까지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역대 정부는 공직자의 부정부패의 꼬리를 자르려고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악순환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을 접한 국민들은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김씨보다 국민의 혈세를 무책임하게 방치했던 대다수 공직자들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하루빨리 공무원의 기강을 바로잡고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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