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졸한’ 홈플러스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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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졸한’ 홈플러스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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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큰소리 치더니 뒤돌아 호박씨

[일요시사=경제1팀] 끊임없이 몸집을 불려가는 대형 유통업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상생경영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중소상인들이 겪는 고통은 줄지 않았고 대형 유통사의 부당한 횡포와 관행은 여전하다. 갖은 편법과 꼼수로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일도 빈번하다. 이 와중에 홈플러스가 신규 점포 확장 자제를 공언한 직후 새 점포를 내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을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 대표들은 지난달 22일 중소상인단체와의 상생을 위한 협의체를 발족키로 했다. ‘상생 합의문’에는 대형마트·기업형수퍼마켓(SSM)이 자발적으로 월 2회 이상 쉬고, 신규 매장 출점도 지역 중소상인들과 협의해 결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약속 하루 만에…

그러나 이 합의문 발표 당일 홈플러스는 경기 오산시에 대규모점포 개설 등록을 신청했다. 지하 2층, 지상 6층 건물에 총 매장면적 1만9,000여㎡ 규모의 홈플러스 오산 세교점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홈플러스는 다음날에 또 서울 관악구청에 ‘대규모 점포 개설등록 신청서’를 제출했다. 내년 9월에 완공예정인 관악구 남현동 남현프라자에 지하 5층, 지상 3층 규모로 ‘홈플러스 남현점’을 열겠다는 내용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2008년 남현동 산 69-2 일대 8천여 제곱미터 부지를 확보해 올 1월 공사를 시작했다.

점포가 들어서는 남현점 인근 1km 이상 거리에는 전통시장인 인헌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버스로 세 정거장 떨어진 거리. 1980년대부터 형성 돼 지역 핵심 상권 구실을 해온 인헌시장은 비록 59개 점포의 작은 시장이지만 점포 현대화를 높게 평가받아 지난 9월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최고의 전통시장’으로 뽑은 곳이다.

상인들은 “자발적 출점 자제를 약속하자마자 신규 매장을 확장하는 것은 기만행위”라며 전국상인단체연합회 등과 항의집회 신고를 하는 등 반발수위를 높이고 있다.

상인회 관계자는 “마트가 문을 열면 관악구청역(서울대입구역)을 중심으로 낙성대역과 사당역 등 지하철역을 중심을 우림시장(난곡), 인헌시장(인헌), 원당종합시장(인헌), 낙성대시장(낙성대) 등 147개 점포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며 “재래시장의 매출이 급감하는 것은 물론 홈플러스에서 반경 500m 안에 들어선 소규모 점포들은 붕괴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전국상인단체연합회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약속을 깬 상황에서 대형마트와 협의체를 신뢰할 수 없다”며 “입점 반대서명운동을 하는 등 온 힘을 다해 점포 개장을 막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오산세교점과 남현동 새 점포는 개점 계획을 미리 발표하지 않았을 뿐 갑자기 새 점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오산세교점은 이미 5월부터 추진해 오던 것으로 이번에 합의한 신규출점 자제와는 무관하고 남현동 역시 2008년 6월 부지를 마련했으며 올해 1월부터 이미 건물 공사에 착수해 현재 터파기 공사가 30% 가량 진행됐다”면서 “개점 계획을 미리 발표하지만 않았을 뿐 갑자기 새 점포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우연하게 등록 신청일이 ‘유통산업발전협의회 출범’ 합의 바로 다음날이었을 뿐, 이미 투자가 이뤄진 경우에는 출점을 강행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래시장과 ‘상생합의’다음날 점포 등록
중기청에 합정점 영업 개시 공문 발송까지

업계에서는 홈플러스는 합정점도 최근 상인들 반발에 부딪혀 개점이 연기된 만큼 남현동 새 점포도 개점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우려했는지 홈플러스는 합정점의 영업을 개시하겠다는 공문을 중소기업청에 보낸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14일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달 31일 중기청에 ‘합정점 오픈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홈플러스는 공문에서 “수차례 협상을 진행하는 등 상생 방안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고 천막농성을 펴고 있다”며 “더는 중기청의 사업 일시정지 권고에 의한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영업을 개시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 드린다”고 전했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홈플러스는 또 “시민단체들과 정치 세력이 개입해 합리적으로 수용하기 곤란한 비현실적 요구가 나오고 있다”며 “자율적인 상생방안 합의 타결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중기청은 홈플러스 쪽에 공문을 보내 “합정점 영업 개시 계획은 사회 전반의 상생협력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권고를 준수해 달라고 답변했다. 이를 두고 중소 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은 “홈플러스가 상생협의를 포기했다”며 비난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금 당장 오픈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매장 문을 열지 못해 본사 차원에서 겪는 어려움을 설명하기 위해 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상인들과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합정점은 당초 지난해 8월 개점 예정이었지만 인근 망원·월드컵 시장 상인들 반대로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도 주변 상인들이 천막농성을 벌이며 대치하고 있다.

상인들은 기존 홈플러스 상암점에 이어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 3곳(연남·망원·상암)이 줄줄이 들어섰는데 합정점마저 문을 연다면 재래시장의 존립자체가 무너진다며 오픈을 반대하고 있다.

“말로만 동반”

업계에서는 유통업체와 중소 상인들과의 상생 방안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홈플러스가 이같이 대응한 것은 경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국민본부는 보도자료에서 “지식경제부 주도로 대형마트가 자발적 출점 자제를 약속한 것이 바로 최근의 일”이라며 “상인들과 합의도 없이 영업개시를 강행하는 것은 상생의 가치를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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