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부인 낀 '김이사 사기단' 풀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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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 부인 낀 '김이사 사기단' 풀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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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낚시터 돌며 '강태공' 낚았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2세, 국회의원 등 권력층을 사칭한 사기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이 같은 수법으로 수십억원을 챙긴 일명 '김이사 사기단'이 검찰에 붙잡혔다. 이중 실제 대기업 임원 부인도 포함돼 있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거짓말에 왜 사람들은 쉽게 속아 넘어갈까. 사건의 전말을 파헤쳤다.

외국계 펀드회사 이사와 주식투자 전문가, 대기업 총수 손녀 등 상류층을 사칭하며 비자금 세탁을 도와달라는 명목으로 거액을 받아 챙긴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이태형)는 지난 23일 신분을 위장해 비자금 세탁에 필요한 돈을 투자하면 수억원을 준다고 속여 총 32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이모(47)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나 이런사람이야"

또 대기업 총수 손녀, 청담동 명품보석가게 사장, 공기업 사장 딸 등으로 행세하며 사기거래의 중심 역할을 한 김모(39·여)씨와 사기 피해자임에도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들을 끌어들인 김모(54)씨 등 총 4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09년 11월부터 전남 신안군 등의 낚시터를 돌며 '강태공(낚시꾼)'을 대상으로 100억원대 비자금 세탁을 도와주면 수고비를 챙겨주겠다고 현혹해 올 초까지 피해자 8명에게서 32억 여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 일당은 각각 신분을 사칭해 속임수에 걸려든 피해자들에게 먼저 돈을 계좌로 수 천만원을 송금해주고 다시 수 천만원의 돈을 추가로 입금 받는 '계좌 돌리기'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자금을 세탁해주면 나중에 수 억원의 이익을 챙겨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애초 송금액보다 1억∼2억원 더 많은 돈을 받아 챙겨왔다.

이씨는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핑계로 5개의 가명을 돌려 사용했고, 피해자들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를 이용해 각각의 피해자들과 연락하는 등 신분을 철저히 속여 왔다.

또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부인 역을 맡은 김씨가 재벌의 손녀딸 행세를 했고, "부인이 소장하고 있는 70억대 보석"이라며 가짜 보석을 피해자들에게 담보로 맡겨놓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약속했던 수고비 지급이 늦어지는걸 의심하는 피해자에게 이씨는 "비자금의 주인이 주식투자의 대가인데 주식투자를 통해서 몇 배로 불려 줄테니 기다리라"며 충북 괴산군에 있는 토지문서를 보여주고 맡긴 돈은 언제든 돌려줄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김씨 등 3명은 자신이 투자했던 돈을 돌려받기 위해 이씨의 사기행각에 가담했다. 이들은 지인에게 가짜보석과 위조어음 등을 주면서 "김이사 덕에 수십억을 벌었으니 안심하고 투자해라"고 속였다. 이 같은 수법에 총 8명이 피해를 입었다.

"재벌 손녀인데" 비자금 세탁 미끼로 32억 꿀꺽
상류층 맹신 노리고 신분 위장…피해자도 가담

8명 가운데 3명이 이씨를 고소했지만 경찰 수사에서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가 검찰에서 지난 7월부터 집중수사를 진행해 전모를 밝혀냈다. 이씨 일당은 미리 각본을 짜서 수사관의 예상문답까지 준비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특별한 수입이 없던 이씨 등은 김씨 등에게서 가로챈 돈으로 외제 승용차를 여러 대 사용하면서 매달 신용카드를 1000만원 이상 사용하는 등 4년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왔다"며 "사기단이 낚시터를 범행 장소로 택한 건 평일 낮에 낚시를 하는 사람 가운데 거액의 자산가가 많고, 이들이 낯선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린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검찰 조사결과 부인역 김씨는 실제 대기업 임원의 부인으로 아침 저녁에는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고 낮에는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사기 행각에 가담하는 등 철저한 이중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사기단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씨와 내연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는 이번 사건 외에도 전남 순천 등 전국에서 총 4건의 범죄로 수배 중이었다. 유사 피해 사례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고 보강 수사를 하고 있다"면서 "사칭사기에 현혹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권력층에 대한 맹신'이 이번 사건과 같은 범죄를 양산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여기에 비정상적인 방법이라도 한 몫 챙겨보겠다는 일확천금의 욕망이 작용해 사기범행이 의외로 쉽게 성공한다는 것.

실제로 우리나라는 사기사건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사기·공갈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연평균 2만9913건으로 도로교통법 위반(2만3291건)보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범죄심리학 관계자는 "서구에서는 철저히 서류나 법 절차에 따르지만 한국사회에선 상대를 믿고 맡기는 식이다"라며 "결국 권력 사칭범죄에 속아 넘어가면 차후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등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사기를 당한 후에야 법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피해자들의 욕심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기대감 역시 한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잇따른 '사칭사기'

검찰 관계자 역시 "사칭 피해자들의 경우 그 정도 위치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거라 믿었던 경우가 많았다"며 "노력 없는 대가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매사에 좀 더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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