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간판만’면세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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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간판만’면세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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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코리아…등쳐먹기 혈안

[일요시사=경제1팀] 간판만 면세점인 이른바 ‘짝퉁면세점’들이 난립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진짜 면세점인양 행세를 하고 있는 것. <일요시사>가 확인해보니 이름도 모를 제품을 수십만원에 파는 등 바가지 횡포가 극에 달했다. 여행사와 판매점이 ‘짜고 치는’, 그 현장을 가봤다.

지난 15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한 면세점. 정체불명의 이곳은 ‘韓國 化粧品 免稅店’(한국 화장품 면세점), ‘서울 면세점·듀티프리(Duty Free)’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 중이었다. 외관의 중심에는 한류스타 ‘손예진’이 전속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한 화장품 광고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한국인은 나가!”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은 없고 6∼7명의 직원들만 근무하고 있었다. 향수,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전문매장 이었지만 홍삼 등의 건강 제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제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생소한 브랜드의 화장품 세트가 20만∼30만원대의 고가에 팔리고 있었다. 국내 화장품 매장에선 보지 못한 이름 모를 달팽이 크림이 5만∼7만원에 팔리고 있는가 하면 마스크팩 한 묶음이 2만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또 국내 저가 브랜드 화장품이 교묘하게 이름을 바꿔 2∼3배 비싼 가격에 전시돼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는 건강식품 역시 접해 보지 못한 브랜드를 내걸고 고가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때 중국어로 얘기를 주고받던 직원 중 한명이 기자에게 다가와 “여기는 개인 고객에게는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며 “예약된 단체 관광객들에게만 판매하는 곳이다. 나가달라”고 말했다.   

이 매장 인근에서 10년 째 장사를 해온 한 상인은 “중국인 등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로 ‘파격 할인’을 해준다고 유혹해 뻥튀기 판매를 하는 곳”이라며 “당연히 한국인들에게는 사게 하지도 팔지도 않는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상인은 “이 곳 말고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동, 마포구 일대에 다양한 소규모 면세점들이 있다”며 “홍삼 면세점, 화장품 면세점 등 품목도 다양한 걸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모두 여행사와 상인들이 짜고 판매액의 50∼60%를 여행사에 리베이트로 주면서 관광객들을 면세점으로 유인하는 이른바 리베이트 영업을 하고 있는 곳들이다.

‘Duty Free’걸고 성업…정체불명 제품 뻥튀기
‘리베이트’여행사·상인 짜고 해외관광객 유인

여행사들은 과대광고와 단가 후려치기로 마구잡이식 모객을 한 뒤, 여기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업체로부터 받는 쇼핑 리베이트로 메운다.

리베이트의 경우 사람 수에 따라 일정액을 받기도 하고, 사람수+α(매출액의 일정부분)를 받기도 한다. 특히 검증된 업체가 아닌 경우에는 50% 내외의 리베이트를 받는 경우도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현지 가이드를 했던 한 관계자는 “고가 상품을 판매하는 곳 위주로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녔다”면서 “우리에게 리베이트로 지급되는 돈 이외에 업체에서 본사로도 별도의 리베이트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여행사와 업체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될, 공생하는 관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름만 면세점’ 행세가 가능한 배경에는 텍스프리, ‘사후면세제도’가 있다. 사후면세제도란 외국인 관광객이 사후 면세판매점에서 제품을 구입해,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고 자국으로 소지하고 출국했을 경우 물품에 부과된 세금을 환급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가입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사업장 소재 관할 세무서에 외국인 관광객 면세판매장 지정신청서만 작성하여 사업자등록증과 함께 제출하면 누구나 사후 면세점으로 등록할 수 있게 돼 있다.

때문에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숍 등을 포함해 사후면세점으로 등록한 업체들은 현재 전국 5400여개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 업체들은 관리·감독이 부실한 틈을 타 마치 ‘사전면세점’인 것처럼 ‘듀티프리(Duty free)’간판을 내걸고 사기성이 짙은 영업을 하고 있다.

사후면세제도 자체는 관광객들의 물품 구매를 증대시키는 등 긍정적 측면이 많은 제도다. ‘86아시아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도입된 후 지난 2001년 외국인 필수 관광지인 동대문의 한 쇼핑타운은 사후면세제도가 활성화되어 텍스프리존이 형성됐다. 명동의 화장품, 명품가게 80%가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면세점’ 간판까지 내걸고 리베이트 영업을 하는 업체들 탓에 처음의 좋은 취지가 크게 퇴색하고 있다. 더욱이 텍스프리 영업점의 듀티프리 간판 영업에 대한 제재 조치조차도 현재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정부기관들은 소관 사항이아니라는 이유로 제도적 보완 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면세점 간판을 내 건 것이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지만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짝퉁’우후죽순

이러한 안이한 대응 속에서 ‘짝퉁 면세점’으로 인한 피해는 전적으로 외국인들의 몫으로 남는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비단 몇 십명의 외국인 관광객으롤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여행객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끼쳐, 결국 대한민국 관광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가 이미 도래한 가운데 관계 당국의 빠른 시정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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