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야심작’ 기초연금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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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박근혜 야심작’ 기초연금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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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위한 연금 때문에 국민이 뿔났다

[일요시사=사회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공약인 ‘기초연금제도’가 본격적으로 윤곽을 드러내면서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65세 이상 노인만 수령 가능한 기초연금을 두고 역차별 논란을 제기한 것. 인수위는 소득별 혹은 연금수급여부에 따라 차등배분을 할 것이라 단언했지만, 납세자들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멋대로 정해놓고 국민의 의무? 그럼 나 이제부터 국민 안 해!”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 국민연금납부를 거부하는 최해갑이 나라를 위해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내뱉은 말이다. 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최해갑은 영화에서 “나라가 해준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연금을 내야하냐”며 국민의 의무인 세금과도 같은 국민연금납부를 극구 거부한다. 이는 단지 영화에서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올해 개정될 아이러니한 연금제도 때문에 세대 간 갈등과 계층 간 역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납세자연맹은 “차라리 국민연금 제도를 폐지하라”며 납부거부 태세에 돌입했다. 기초연금제도는 남기고 수년간 납입했던 적립금은 국민에게 돌려줘야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돈 내는 사람 따로
돈 받는 사람 따로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기초연금제도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우면서부터 시작됐다. 애초 박 당선인이 기초노령연금제도와 국민연금의 통합운영을 공약했지만 젊은 세대들은 추후 연금고갈을 우려, 기초연금안에 반기를 들며 사실상 국민연금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공약집에는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화해 모든 어르신에게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올려 지급하겠다’고 명시돼 있었다. 이는 65세 이상 모든 대상자에게 9만7100원이던 기초연금을 현재의 2배인 20만원 수준으로 올려주겠다는 의미와 같다. 여러 논란이 뒤따를 수 있는 민감한 사안임에도 박 당선인은 당시 명확하고 일관되게 공약을 내세웠다. 이에 10원 한 푼 내지 않고도 2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노령층은 하나같이 박 당선인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부작용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기초연금제도가 본격 시동을 걸면서 인수위 출범 후 기초연금의 재원을 국민연금의 적립금에서 충당하겠다고 발표해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 나아가 재산권 침해 논란까지 불거지며 극심한 세대 갈등이 벌어졌다.

이 같은 논란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20만원씩 주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겼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10년간 매달 8만9100원을 내면 65세 이후에 한 달에 15만원을, 18만7200원을 납부하면 22만5700원을 받을 수 있는데, 박 당선인의 공약대로 기초연금제를 도입하면 국민연금 가입자와 비가입자 간 차이가 대략 2만원밖에 차이나지 않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젊은 세대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새누리당 측은 기초연금 재원을 국민연금이 아니라 국고에서 마련할 것이라고 둘러대며 논란을 잠재우는 듯 했으나, 인수위가 차등지급법안을 발표하며 재차 논란이 커졌다. 이는 세대 간 갈등에서 벗어나 국민연금 저소득 가입자들을 중심으로 국민연금 형평성 논란으로 바뀌었다.

당선인 핵심공약 ‘기초연금제도’본격 윤곽
‘매달 20만원씩’65세 이상 노인만 수령 가능

애초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를 65세 이상 모든 노인으로 제한했던 박 당선인과는 달리 인수위의 경우, 국민연금 혹은 기초노령연금 수급 여부에 따라 지급 방식을 차등화 한다는 다소 엇갈린 방안을 내놓았다. 젊은 세대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을 예상한 인수위가 시급히 내놓은 대책마련이 차등화 지급이었던 것.

인수위가 구상 중인 4개 그룹별 기초연금 차등화 방안은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현행 기초노령연금 수급 여부에 따라 연금액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성실히 납부한 가입자라면 기초노령연금 수령 여부에 따라 지급 받는 연금액이 달라진다. 국민연금 가입자이면서 소득이 하위 70%면 기존 국민연금에 기초연금 일부를 더해서 받는다. 기초연금은 현재 소득 하위 70%에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 9만7100원에 추가 지급분 1만∼9만7100원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가입자 중 소득 상위 30%에 속한다면 기초연금 차등지급분인 1만∼9만7100원을 받게 된다.

얼핏 보면 국민연금 ‘성실 납입자’가 역차별 받는 것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차등 지급으로 보완하는 대안 같지만,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재원 마련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결국 차등화 지급은 소득수준과 가입여부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비효율적 방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연금공단 자금 운용

비난 목소리 거세

반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노인에게는 기초연금 20만원이 모두 지급된다. 그러나 국민연금 미가입자 중 소득 상위 30%로 현재 기초노령연금 미수급자라면 기초연금 20만원도 받을 수 없다. 이들에게 소액이라도 추가로 기초연금을 지급할지는 검토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 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 가입자도 기초연금 대상에서 배제키로 했다. 공무원과 군인, 사학연금 가입자는 전체 노인의 약 4% 가량으로 나타났는데, 인수위는 이들이 충분한 연금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어 기초연금 지급대상에서 배제된 것으로 추측된다.

연금고갈의 문제도 크다. 현재 젊은 층은 수십년간 열심히 인해서 적립금으로 모아둔 국민연금을 기초노령연금과 통합하게 되면 본인 앞으로 적립한 국민연금은 전부 노인연금에 충당할 것이고, 20∼30년 후엔 못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눈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기금이 고갈돼서 국민연금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처럼 세금을 더 거둘 수도 없고 대외신인도가 낮아 국채발행을 할 수 없을 때, 즉 나라에 외환위기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라고 입을 모으며 해명에 나섰다.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들 “역차별”주장
수십년 10만원씩 내도 고작 2만원 차이

연금논란은 과거 국민연금공단이 거액을 들여 투자했던 해외의 빌딩과 이마트 등 기업으로까지 불똥이 튀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국민연금은 2009년 10월 당시 ‘88 우드 스트리트’ 건물을 매입, 작년 6월 런던 사무소를 개설했다. 당시 빌딩 매입 가격은 1억8300만파운드(약 3150억원)로 국민연금은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50억원을 투자했다. 해당 건물 외에도 국민연금은 천문학적 숫자의 거액을 들여 영국 내 3개의 건물과 미국, 호주, 독일 내 건물을 매입·투자하면서 국민혈세를 남용한다는 강한 반발이 일었는데, 최근 기초연금제가 화두에 오르며 빌딩매입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어 궁지에 몰렸다.

이밖에 국민연금이 지난해 6개월 동안 6237억원에 달하는 술·담배·도박 산업에 대한 투자액, 직원사찰과 노조탄압으로 빈축을 산 이마트 등 비윤리적 기업에 대한 투자도 적지 않다. 국민연금은 최근 노동탄압 사실이 드러난 이마트 주식을 62만주(지분율 2.24%) 보유하고 있다. 이마트 외에도 최근 다수의 노동자가 희생된 한진중공업(지분율 3.21%)과 쌍용차에도 투자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의 노후보장을 위해 마련된 연금이 되레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격’으로 해석되며 세간에서는 “국민연금이 모순적 행보를 걷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뚜껑 열기 전까진
아무도 알 수 없어

국민연금공단 측은 사실상 노령연금도 지급하고 있어 현재 보유한 재원만으로는 인수위가 발표한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지급이 당장은 어려운 실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논란이 커진 후 민원이 여러 곳에서 발생하자 본부에서는 회의를 열어 가입자들을 상대로 하는 가이드라인을 급히 만들었고, 국민연금 가입자 중 연금 지급 사유(장애나 사망 등)가 발생할 시 연금을 조기 수급하는 경우를 대비해 상황을 지켜보고 정부에서 정확한 발표가 나오면 그때 환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덧붙여 자영업자 등 워낙 많은 가입자와 이해 관계자가 걸려 있기 때문에 예상과는 달리 국민연금 재원은 차기 정부에서도 쉽게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시선이 많다. 인수위가 발표한 기초노령연금제도는 연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계산 공식도 복잡하기 때문에 정확한 안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

<일요시사>와 통화한 국민연금공단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국민연금공단 차원에서 대응 방안이 문건화된 건 없다. 단 국민연금을 해지하겠다는 민원인들이 많아 전국 콜센터가 상담에 애를 먹고 있다”며 “재정 확보 문제가 걸려 있어 현 수급 연령(60세)을 단계적으로 상향해 65세로 조정하고  최대한 연금 수급을 늦출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인수위에서 국민들이 반응을 한 번 떠 본 것 아닌가 생각된다. 아직 정부가 출범하지도 않은 시점에 발표부터 먼저 한 것은 국민들의 반응을 보고 거기에 맞게 수정하겠다는 의중이 숨어있다고 봐야할지, 공약 이행 의지가 있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국민연금 적정부담수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보험료 인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높여야 한다. 이 경우 보험료는 현재 9.0%에서 13.0%까지 높아진다”고 했다. 이어 “올해부터 추진되는 3차 국민연금 개혁이 무산될 경우 보험료 인상폭은 더 커질 수 있다”며 “인상시기를 10년 미루면 보험료 인상폭을 61%로 더 높여야 2080년까지 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구 세대 간 갈등
한동안 지속될 듯

박 당선인의 주요 공약인 기초연금제도. 이는 소득과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따라 세분화하고,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한다는 전제조건이 맞물리면서 젊은층, 노령층 어느 한 계층도 만족시키지 못해 ‘허무맹랑한 공약’이라고 불리고 있다. 지금도 새누리당과 인수위, 국민연금공단은 기초연금에 관련해 가장 효율적인 제도와 방안을 찾고 있지만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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