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왕' 구속에 벌벌 떠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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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왕' 구속에 벌벌 떠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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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왕'이라 불린 권 혁 시도상선 회장

국세청 첫승…역외탈세 "꼼짝 마!"

[일요시사=경제1팀] '구리왕'과 '완구왕'과의 세금전에서 잇따라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켰던 국세청이 '선박왕'과의 전쟁에서 드디어 첫승을 올렸다. 사법부가 선박왕에 대해 탈세 사실을 인정하고 중형을 선고한 것. 따라서 앞으로 역외탈세 조사는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선박왕을 찌른 국세청의 칼이 이번엔 어디로 향할까? 역외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이 역외탈세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권 회장은 국세청 발표 기준으로 대형 선박 160척을 보유해 국제 해운업계에서 '한국의 오나시스(그리스 출신 선박왕)'로 불려 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지난 12일 조세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권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권 회장이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해 온 태도 등에 비춰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 법정구속을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국내거주자 맞다"

검찰은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돼 권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법인세 포탈로 함께 기소된 시도상선의 홍콩 자회사(CCCS)에는 벌금 265억원을 선고했다.

앞서 국세청은 2011년 4월 권 회장이 국내에 근거지를 두고 있음에도 탈세 목적으로 조세 피난처에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했다며 추징금 액수로 역대 최대인 4104억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2200여억원을 탈세하고 국내 조선회사들과 선박 건조 예약을 체결하며 회삿돈 900여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권 회장을 기소했고, 결심공판에서 권 회장에게 징역 7년과 벌금 2284억원을 구형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역외탈세 혐의자를 어디까지 국내 거주자로 볼 것인가'였다. 소득세법에는 국내 거주자에 대해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년 이상 거소를 둔 개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외에서 직업을 갖고 1년 이상 계속 거주해도 국내에 가족 및 자산이 있는 등 생활 근거가 국내에 있으면 역시 거주자에 해당한다. 계속 외국에서 거주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비거주자로 본다.

그간 권 회장은 "거주지가 국내가 아닌 홍콩이다"며 "시도상선 본사도 홍콩에 있어 한국 국체청에 납세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권 회장의 국내 체류일수는 연간 104~193일이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권 회장이 1992년부터 서울 반포동에 주민등록상 주소를 두고 있으면서 해외법인 설립을 위한 서류 등에 주민등록상 주소를 반포동으로 기재해온 점과 함께 권 회장의 부인이 주로 한국에서 거주해왔고, 가족이 국내에서 수백 회에 걸쳐 병원진료를 받은 점 등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자산 보유현황, 직업활동, 복지혜택 영위 내역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국내에 거주했다고 볼 수 있다"며 "CCCS도 핵심적인 의사 결정이 국내에서 이뤄져 법인세법상 국내 법인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사실상 첫 유죄…권혁 시도상선 회장 법정 구속
조세포탈 추적 탄력…2심 앞둔 '완구왕' 어떡해

이로써 '구리왕'과의 세금전에게 패배하고 최근 '금품수수' 등으로 몰매를 맞아온 국세청의 체면이 조금이나마 서게 됐다. 역외탈세와의 전쟁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국세청은 카자흐스탄에서 구리 채광·제력 사업으로 1조원대의 수익을 올린 '구리왕' 차용규씨에게 1600억원의 과세를 통보했다가 작년 1월 과세전적부심에서 졌다. 적부심 위원회 멤버 11명 중 국세청 직원 5명을 제외한 민간인 위원 6명이 차씨 손을 들어준 것. 런던, 홍콩 등에 주로 사는 차씨는 한국 거주자로 볼 수 없어 한국 국세청이 세금을 추징할 수 없다는 게 적부심 결정의 주된 내용이었다. 국세청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국세청은 '성과주의에 쫓겨 무리한 조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국세청은 특정 납세자의 확인되지도 않은 세금 탈루 관련 정보를 일부 언론에 흘려 보도하도록 한 뒤 이를 이용, '정치적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었다. 국정감사에서는 역외탈세 성과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완구왕'의 경우는 좀 다르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박종완 에드벤트엔터프라이즈 대표는 2000년대에 봉제인형을 미국에 수출해 큰 수익을 올려 완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세청은 지난 2011년 박씨가 홍콩 법인을 통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어퍼컴퍼니에 이익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세금 437억원을 포탈하고 947억원 상당의 재산을 외국에 숨겼다며 2140억원을 추징하고 같은 해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법원은 "미국 영주권이 있는 박씨는 한국 국세청에 납세 의무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미국 국세청이 지난해 4월 말 박씨에 대해 미국 거주자가 아니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와 2심에서는 국세청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미국 국세청이 박씨를 미국 거주자가 아니라고 한 것은 한국 거주자로 판단한 것"이라며 "2심 재판에서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의 역외탈세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영국 '조세정의 네트워크'에 따르면 1970년부터 40년간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은 7790억달러(약 830조원)로 추정된다. 이는 중국(1조1890억달러), 러시아(7980억달러)에 이어 세계 세 번째 규모다. 조세피난처로 지목된 국가들도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조세피난처와의 외환거래가 지난 11년간 6배 가까이 늘었고 한국 기업이 세운 서류상 회사는 30대 재벌 소속 47개를 포함해 5000개 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엄벌 신호탄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08~2011년 역외탈세 조사 건수는 335건, 부과세액은 1조7960억원에 달한다. 국세청은 이를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지하로 숨어든 역외탈세 규모는 가늠조차 어렵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소송에 대해 "합법을 가장해 세금을 빼돌리는 부유층에 경종을 울릴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주춤해 왔던 역외탈세 조사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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