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스토리’ 정상영 30억 뜯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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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스토리’ 정상영 30억 뜯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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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회장님’ 나는 ‘사기꾼’

[일요시사=경제1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이 사기꾼에 속아 수십억원을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그룹을 직접 경영하면서 숱한 투자를 경험해 본 그가 사기사건에 연루되자 재계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분위기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인도네시아 옥수수농장 개발에 필요한 토지 취득세 30억원을 빌려주면 원금과 이자는 물론 농장 지분 30%까지 함께 내주겠다.”

돈 굴릴데 찾다…
국내 굴지의 재벌인 KCC그룹 오너인 정상영 명예회장은 2011년 7월 지인의 소개로 만난 박모(52)씨로부터 이 같은 제안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다. 자신을 사업가라고 소개한 박씨는 “내 회사가 최근 인도네시아 파푸아주(州) 지역에 있는 옥수수 경작지 2만㏊(약 6050만평)를 개발할 수 있는 허가를 취득했다”며 정 명예회장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박씨는 “토지 취득세 30억원만 내면 토지 사용권을 얻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서 “취득세를 빌려주면 곧 이자 3.7%를 얹어 돈을 갚고 농장 지분의 30%를 함께 주겠다”고 정 명예회장을 설득했다.
KCC는 페인트 도료 등 화학제품 건자재를 생산하는 업체로, 옥수수가 최근 친환경 화학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정 명예회장은 박씨의 제안을 호재로 판단했다. 대량 생산할 경우 향후 판로가 무궁무진할 것이란 계산에서다.

정 명예회장이 박씨를 의심 안 해 본 것도 아니지만 서울 강남구 서초동에 번듯하게 차려놓은 사무실에서 “측량과 환경영향평가 등 제반 준비를 모두 마쳤고 현지 군수와 친분도 있다”는 그럴 듯한 말에 속아 넘어갔다.

박씨를 소개해준 지인 A씨가 ‘프로 겜블러(도박사)’로 과거 인기 드라마 주인공의 실제 인물이라는 점도 정 명예회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타짜’를 가려내는데 전문인 A씨 역시 농장 지분 10%를 지급하고 사업에 동참할 계획이었던 터라 그만큼 안전한 투자라고 믿었다.

결국 정 명예회장은 투자를 결정했고, 박씨 계좌로 30억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박씨는 돈을 갚기는커녕 이자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중간에 다리를 놓아준 A씨는 입장이 난처해지자 박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양호산)는 박씨를 사기혐의로 최근 구속기소 했다.

검찰 조사결과 박씨는 2003년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였으며 15억원의 사업 빚을 갚기 위해 정 명예회장을 끌어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가 호언장담하며 인도네시아에 운영 중이라던 회사는 실체가 불분명했고 호언장담한 것과 달리 현지에서 제대로 사업 절차가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는 과거 사기 전과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사업을 해와 대인관계에 능수능란했다”고 전했다. KCC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질문에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농장 투자하면 큰돈”무일푼 백수에 속아
‘브로커’역할 전문 도박사와 관계도 의문
“투자의 달인이…뭘 믿고 베팅?”

재계 한 관계자는 “재벌회장쯤 되면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텐데 어떻게 일개 사기꾼에게 수십억원을 사기 당했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30억이라는 돈의 자금출처와 도박사와의 관계에도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은 일전에 기업가로서 모은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며 “올해만 해도 개인 사재를 털어 모교인 동국대학교에 110억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는데 돈 욕심 때문에 사기를 당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기업체를 물려받은 다른 형제일가와 달리 창업을 통해 지금의 KCC를 일궈낸 인물이다. 1934년생인 그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 동생이다.

정 창업주와는 21살 차이로, 정 창업주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말투나 걸음걸이, 외모 등도 정 창업주를 닮아 ‘리틀 정주영’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현대그룹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경영 능력도 뛰어나 정 창업주는 한때 그를 정세영 회장의 뒤를 잇는 현대그룹 회장감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자신이 금강그룹(현 KCC그룹)을 이끌고 있다는 이유로 현대그룹 회장직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현대그룹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가족의 어른으로 누구보다 앞장 서 오기도 했다. 지난 2000년 ‘왕자의 난’ 때는 조카들에게 “화해하라”고 유일하게 쓴 소리를 가장 많이 한 현대가의 원로다.

또 ‘왕 회장’타계 직후 서산농장에 200여 만평의 기념관을 짓자는 얘기를 처음 꺼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타계한 조카 고 정몽헌 회장에 대해서도 개인 빚을 갚지 못해 고심하자 대신 갚아주는 등 아낌없는 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후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정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싸움을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조카며느리의 경영권을 뺏으려 한다’는 도덕적 비난이 쏟아졌지만 정 명예회장이 경영권 다툼에 뛰어든 것 역시  ‘왕회장’이 일군 현대그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리틀 정주영’
지난 40여년 동안 건자재 외길만을 걸어온 정 명예회장은 2000년 초반부터 슬하의 3형제(정몽진 KCC그룹 회장-정몽익 KCC 사장- 정몽열 KCC건설 사장)에게 지분을 증여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04년 지분 증여를 중단하고 자신이 나머지 지분(10%)을 직접 보유해 오다 지난해 지분 10% 중 절반을 블록딜(대량매매)방식으로 처분하면서 KCC그룹은 본격적인 ‘정몽진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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