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방패 “상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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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방패 “상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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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예산 국회 단독처리 ‘유연한’ 김무성이 왜?
2010년 화려하게 부활한 박지원 최종 목표는?

‘원내대표’란 국회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의원을 말한다. 소속의원을 통솔하고 원내 당무를 맡아보며 타당 대표와 다방면 접촉을 통해 국회 정상화를 유지시킨다. 의원들 규율 유지를 위한 행동 통일을 기하고 의원들 질의 순서를 결정하며 출석을 독려하는 역할도 한다. 국법상 기관은 아니다. 이전 명칭은 ‘원내총무’였지만 2003년 열린우리당의 전신인 국민참여통합신당이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명칭을 원내대표로 바꿨고, 그 후 다른 당들도 원내대표란 명칭으로 바꿔 쓰고 있다.

지난해 5월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4일)과 박지원 민주당 의원(7일)이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제18대 국회 후반기 정국을 이끌어 왔다. 얼마 후 국회에서 열린 첫 상견례에서 김무성 원내대표가 ‘국민이 바라는 정치’와 ‘통큰 정치’를 말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초심을 잃지 말자’고 화답했다. 두 원내대표는 사석에서 호형호제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고 시작 분위기도 참 좋았다. 지난 7개월여 국회 운영에 큰 잡음이 없었다. 수시로 귀를 맞댔고 사우나에서 같이 땀도 뺐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정치’의 복원이 차츰 현실화됐다.

하지만 2010년 마지막은 결국 충돌이었다. 김영삼·김대중이라는 막강한 정치 스승들의 후광 속에 첫 회동이 포옹으로 시작됐지만 여·야라는 숙명적 간극 속에 충돌로 끝맺었다. 2010년 12월8일 국회 본회의장의 시곗바늘이 오후 4시 정각을 가리키자 예견됐던 여야의 몸싸움은 결국 시작되고 말았다.

김무성, 이제는 ‘여당 주류’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협의를 하지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구성 등 국회 활동 전반에 관한 권한을 갖는다. 그래서 정국이 경색되거나 회의가 교착상태에 빠지면 해결책의 모든 초점이 원내대표에게 쏠린다. 하지만 두 원내대표는 이번 연말 예산 국회의 책임이 본인들에게 쏠린 것이 억울할지 모른다. 김 원내대표는 ‘국민과 약속한 날짜를 지키기 위해 8~9일 본회의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이야기를 수 없이 했고 박 원내대표도 ‘몸집이 큰 여당에서 물리력을 동원하는데 이걸 누가 감당하느냐’라고 되물을 수 있다.

사실 민주당과 의사일정을 최대한 합의해 처리해온 김 원내대표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예산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연말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지 않겠냐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그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김 원내대표가 왜 단독처리를 강행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초점이 쏠린다.

‘친박 좌장’이었던 김 원내대표는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뒤 정치적으로 큰 시련을 맛봤다. 박근혜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그에게 여당 주류는 이듬해 총선 공천권을 주지 않았다. ‘친박 무소속’으로 4선 고지에 성공했지만 18대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 소신발언을 한 뒤 친박도 친이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서게 됐다.

지난해 5월 여당 원내대표에 올랐지만 친박은 물론이고 친이계 시선도 곱지 않았다. 그가 원내대표단을 구성할 때 일부 여당 의원들은 “김무성은 못 미덥지만 이군현 봐서 도와주자”라는 말도 나왔다. 참고로 이군현 의원은 현재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이며 이재오 정무장관의 측근이다.

그러나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친이·친박 구분 없이 초계파적 협력을 받아 그의 입지가 보다 탄탄해졌다. 어중간한 당내 입지를 극복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인 ‘강력한 카리스마’가 성공을 거둔 셈이다. 결국 김 원내대표는 ‘친박 좌장’에서 명실상부 여당 주류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면 원내대표를 거친 인사는 대부분 차기 당 대표를 꿈꿨고 적지 않은 숫자가 그 꿈을 이뤄냈다.

전남 목포가 지역구인 재선의 국회의원 박지원. 그는 지난 2006년 5월 4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알선수재죄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 됐다. 하지만 그가 2010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해 5월 원내대표로 올라선 이후부터 줄곧 승승장구다. 원내대표 당선 이후 박 원내대표는 지난 7개월여 특유의 꼼꼼함과 치밀함으로 별다른 잡음 없이 민주당을 이끌어왔다. 여야 원내대표 첫 회동 이후 일주일 만에 ‘스폰서 특검’에 합의했고 집시법 개정 보류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법의 순차적 통과가 그의 결과물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주요 현안에 대해 꾸준히 소통한다. 박 원내대표는 ‘원외’인 손 대표가 국회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로 보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손 대표가 장외투쟁을 벌였을 때, 일부 측근 의원과 당직자를 제외하고 열성을 보이는 의원들이 많지 않았지만 그 후 투쟁이 성과를 거두게 되기까지 박 원내대표의 독려가 큰 힘이 됐다는 후문이다.

박지원,‘파워맨’으로 부활

만약 손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 2011년 말 대표직은 공석이 된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권 출마자는 대선 1년 전 대표직을 사퇴해야 된다. 대표직이 공석이 되면 다시 경선을 치러야 한다. 당내에서 박 원내대표가 차기 대표 경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의원들이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줄 서고 있다”라는 말도 나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어차피 의원들은 2012년 총선 공천장을 줄 사람에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의 책임을 지고 박 원내대표가 사퇴를 고민하자 복수의 최고위원들이 “누가 원내대표 자리에 있었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사퇴를 만류했다고 한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모든 의원들이 만류해 사퇴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결국 재신임 받은 박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같은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동교동과 상도동의 정치 9단들에게 정치를 배운 두 원내대표. 이들은 오는 설명절에 당대표를 향한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닌 동상동몽(同床同夢)을 꾸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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