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국세청 잔혹사'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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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 '국세청 잔혹사'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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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건만 터지면…뇌물 걷는 국세청

[일요시사=경제1팀] 전 국세청 차장 구속을 시작으로 중수부 격인 조사4국과 전 청장의 자택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국세청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사실 내국세의 부과 및 징수를 담당하는 국세청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대기업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으레 국세청 관련 비리가 이어졌다. 대형 사건만 터지면 국세청이 꼭 연루될 정도다.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 7월30일 서울국세청 조사4국과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울국세청을 방문해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고 조사4국에서 2006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주식 이동과 관련한 세무조사 자료 일체를 제출받았다. 검찰은 또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전 전 청장의 아파트 자택에 수사진 3명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내부 보관 문서, 각종 장부 등을 확보했다.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와 관련, 국세청은 2006년 이 회장의 주식 이동 과정을 조사해 3560억원의 탈세 정황을 확인했지만 한 푼도 세금을 추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송광조 서울국세청장은 지난 1일 사의를 표명했다. 송 청장은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월27일 검찰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CJ 로비 의혹 수사과정에서 송 청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드러나 국세청에 비위사실을 통보했다"며 "다만 형사처벌할 정도의 범죄혐의는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전군표,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의혹

국세청 비리는 잊을 만하면 터진다. 국세청장이 비리에 연루되지 않고 임기를 마치는 사례가 오히려 드물 정도다. 국세청이라는 조직자체에 견제와 감시가 어려운 폐쇄적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내국세 부과 및 징수 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으로서 내국인의 소득이나 거래에 부과되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상속세 등의 내국세 부과·감면 및 징수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어처럼 국세청은 국민의 혈세를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이권개입 논란에 시달리며 '국민'보다는 '기업'을 위해 일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1966년 3월 재무부 외청으로 발족한 국세청 초대 청장은 5·16 쿠데타의 주체세력이자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을 지낸 이낙선 전 청장이다. 2대 청장은 해병대 준장 출신의 오정근 전 청장, 3대는 육군 대령(육사 8기) 출신의 고재일 전 청장이다. 5대 안무혁 전 청장과 6대 성용욱 전 청장도 각각 육사 14·15기로 군인 출신이다.

군인 출신이 잇따라 수장을 맡게 됨에 따라 국세청은 초기부터 '상명하복'이 철저했다. 국세청 직원들은 상관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했고 자연스레 내부 견제와 감시는 어려워졌다.


2012년 9월 기준 국세청 총인원은 2만14명. 정무직 1명을 제외하고 고위공무원은 34명으로 0.2%, 3급 14명으로 0.1%, 4급은 309명으로 1.5%, 5급은 1084명으로 5.4%를 차지하고 있다. 사무관인 5급 이상으로 올라서기가 무척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철저한 정보 비밀주의까지 겹치면서 국세청의 비리는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뭔가 비리가 터졌다 하면 제일 먼저 청장이 직격탄을 맞은 이유다.

국세청이 외청으로 발족한 이래 배출된 국세청장 중 8명은 장관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권력과의 유착이나 검은 돈의 유혹에 넘어가 각종 비리나 의혹에 연루되면서 옥고를 치르거나 불명예 퇴진한 청장도 많았다.

실제 초대 이낙선 전 청장부터 김덕중 현 청장의 전임자인 19대 이현동 전 청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8명이 구속되거나 검찰 수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전현직 고위직 줄줄이 'CJ 쓰나미' 휩쓸려
역대 국세청장 19명 중 8명 검찰 수사 받아

먼저 안무혁(5대), 성용욱(6대) 전 청장은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안기부장과 국세청장으로 재임하면서 기업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불법 선거자금을 거둔 혐의로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공소장과 재판기록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87년 10월 당시 안기부장이던 안 전 청장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성 전 청장과 함께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라고 지시했다.

안 전 청장과 성 전 청장은 그해 말 기업 대표들을 사무실로 줄줄이 불러 대선 자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이들이 13대 대선을 앞두고 걷은 자금은 114억여원에 이른다.

10대 임채주 전 청장은 1997년 대선 당시 이른바 '세풍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세청 고위간부들이 개입한 탓에 '세풍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임 전 청장과 이석희 전 차장 등이 기업인들을 협박, 한나라당에 대선자금을 조달해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경쟁 상대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친동생인 이화성씨가 구속 기소돼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 추징금 5000만원 선고를 받았다.

12대 안정남 전 청장은 2001년 9월 건교부 장관으로 기용됐다가 부동산 투기, 증여세 포탈 등 의혹이 제기돼 취임 20여 일 만에 장관직을 사퇴했다.

최초 호남 출신인 13대 손영래 전 청장은 썬앤문그룹 세무조사와 관련해 뇌물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손 전 청장은 2002년 6월 썬앤문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서 서울국세청 홍모 전 과장에게 지시해 71억원 이상이었던 세금을 25억원 미만으로 줄여 추징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철저한 상명하복
폐쇄적 조직문화

15대 이주성 전 청장도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6월, 추징금 960만원 등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전 청장은 2005년 11월 대우건설 인수를 시도하던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을 만나 매각권한을 가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시가 20억원가량의 아파트를 받았으며 2005년 모 건설사 대표이사 K씨에게서 식탁, 오디오 등 비용으로 5000여만원 상당을 받고, 지인들에게 1000만원 가량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수백∼수천억 만지다보니 몇억은 껌값?"

현재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16대 전군표 전 청장은 검찰과의 질긴 인연을 자랑한다. 검찰 조사만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지난 2006년 정상곤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미화 1만달러와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6월을 선고 받았다.

검찰-국세청
'질긴 악연'

감옥에 있던 2009년에는 17대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게 그림 로비를 받았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한 전 청장의 부인이 전 전 청장의 부인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500만원짜리 그림 '학동마을'을 줬다는 혐의였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아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다.


전 정 청장에게 인사청탁을 한 혐의를 받은 한 전 청장도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9년 한 전 청장이 물러나면서 국세청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은 지난 7월27일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와 관련한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 등에 따르면 허씨는 2006년 하반기께 CJ그룹 측이 전 전 청장의 취임을 전후해 미화 30만달러를 전 전 청장에게 전달해달라며 건넨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검찰과 국세청의 악연은 수차례 압수수색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2009년부터 벌써 일곱 차례나 된다. 올 3월 국세청 직원 뇌물수수와 관련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한 것을 빼면 6번은 검찰이 했다. 또한 지난달 12일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의 현대그룹 경영 부당 개입 의혹과 관련해 서울국세청 조사1국을 압수수색한 것을 제외하면 5번 모두 특별세무조사 전담부서이자 국세청의 '중수부'로 통하는 조사4국이 털렸다.

조사4국은 과거 청와대로부터 지시받은 사안과 사정기관의 첩보를 통한 세무조사를 도맡아 했다. 성격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요즘에도 대규모 세금 탈루 혐의가 있는 회사 개인을 심층 세무조사한다. 재계는 "조사4국이 떴다"는 말만 들어도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이다.

국세청이 '안방'을 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5월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이던 대검찰청 중수부가 서울국세청 조사4국과 세무조사 당시 조사4국장이었던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사무실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

당시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은 박 전 회장의 청탁을 받고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로비에 나선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다. 검찰은 국세청 압수수색에서 1700억원 상당의 탈세 의혹을 내부적으로 조사한 자료를 확보하고 천 회장이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정황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서하면서 수사가 중단됐다.

2010년 10월에는 태광그룹 편법증여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이던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가 서울국세청 조사4국에 수사관을 보내 태광그룹 세무조사 관련 자료를 압수했다.

정치에 개입하고 
기업서 돈 받고 
5년새 7번 압색

국세청은 2007년 태광그룹의 모기업인 태광산업과 비자금 창구로 알려진 고려상호저축은행 등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벌였다. 당시 국세청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996년 선친인 고 이임용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차명 주식을 현금화해 1600억원가량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2008년 초 이 전 회장이게 상속세 790여억원을 추징했으나 '(세금포탈에)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하지 않아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서울국세청은 조사1국 사무실도 2번이나 뒤집어졌다. 서울국세청 조사1국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부서다. 지난 7월22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조사1국을 방문,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조사국 측의 협조를 받아 '황두연 사건'과 연관된 현대상선의 2011∼2012년 세무조사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황 대표가 현대그룹 계열사에 실제 단가보다 부풀린 사격으로 납품한 뒤 차익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모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황 대표와 현대상선이 미국 내 물류를 담당하는 용역업체를 통해 340만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당시 황 대표와 현대그룹 간 직접적인 유착관계를 찾지 못해 현대상선에만 세금 30억여원을 추징했다.

임원급이 아닌 일반 직원들 사이에도 비리는 존재했다. 올 초에는 경찰이 국세청을 압수수색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지난 2009년 서울 강남경찰서가 변호사법 위반 사건 수사를 위해 중부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한 이후 처음이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3월 서울국세청 조사1국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지난 1월부터 서울국세청 조사1국 전·현직 직원 10여 명이 세무조사 대상 기업들로부터 각각 수천만원대의 뇌물을 조직적으로 건네받은 정황을 잡고 수사를 벌여왔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서울국세청 조사1국에 근무하던 2010년 해운회사와 식품회사, 유명 사교육업체 등 7곳을 세무조사하면서 이들 업체로부터 '잘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받은 뇌물은 모두 3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국세청에선 잊을만하면 비리가 터지는 악순환이 수차례 반복돼 왔다. 그러면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의 첨병이 되어 힘을 키워왔다. 차관급인 청장이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이유다.

국세청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면서 권력기관으로 군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특히 국세청장 임기제, 국세청법 도입 등과 같은 제도개편을 통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세금 적게 받고
뇌물 많이 받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도 국세청 개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과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좋은예산센터·복지국가소사이어티·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조세개혁포럼'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지난 2월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은 '세무조사에 관한 법'을 발의했다. 세무조사의 실효성과 공평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전문가가 과반수 이상 참여하는 세무조사위원회에서 세무조사 기준을 승인토록 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국세청도 나름(?) 개혁을 위해 힘쓰고 있다. 김덕중 청장이 취임하자마자 30명으로 구성된 '세무조사 감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비리와의 단절을 선언했고 한 번이라도 금품수수가 적발된 직원에 대해서는 조사 분야에서 영원히 배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과거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일 뿐"이라며 "세무행정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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