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분서주 '양주 발바리'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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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분서주 '양주 발바리' 추적

일요시사 0 1302 0 0

비만 오면 아랫도리 근질근질

[일요시사=사회팀] 얼마 전까지 경기 양주경찰서에는 비슷한 수법의 성추행 범죄가 1달에 1번꼴로 접수됐다. 이 사건들은 모두 동일범의 소행으로 의심됐다. 비 오는 날이면 본성을 드러냈던 범인. 그는 귀갓길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성범죄를 일삼았다. 지난 1년 동안 비오는 양주의 밤거리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은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 마을에 비상이 걸렸고 여성들은 불안에 떨었다. 경찰의 끈질긴 추적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지난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 지금껏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화성사건 모방?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와 다르다. 완전범죄를 꿈꿨던 이들은 좁혀오는 수사망에 대부분 꼬리를 잡힌다. 그 어떤 지능범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 양주에선 비 오는 날 여성들을 노린 성추행 범죄가 잇따랐다. '양주 발바리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인근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지난 1년간 같은 수법으로 신고된 강제추행 범죄는 모두 10여건.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을 의심했다.

피해자들은 여성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며 "성추행을 당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비가 오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는 모두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연속된 성범죄가 또 다른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수사는 오랫동안 답보상태였다. 범인은 사건 현장 주변 CCTV에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우산을 쓰고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또 범행 때마다 인상착의를 매번 바꾸는 등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경계했다. 범인의 얼굴을 특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 용의자 검거에 애를 먹는 사이 주민들의 불안감은 높아졌다. 특히 마을 인근에서 일어난 성범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에 딸은 둔 부모들은 애가 탔다. 몇 년 전부터 양주 일대에선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지난 2011년 8월 섬유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오모(61)씨는 양주 한 놀이터 앞 노상에서 등교 중인 여자 초등학생을 뒤따라가 막으면서 자신의 신체 부위를 노출했다. 그는 2011년 3월부터 9월까지 같은 수법으로 음란행위를 4차례에 걸쳐 반복했다.

'묻지마 성범죄'는 양주 시내 또 다른 곳에서도 발생했다. 지난해 4월 양주 한 빌라 앞 노상에서 놀고 있던 A양은 강모(53)씨에게 강제추행 당했다. 이 사건을 목격한 A양의 친구는 강씨의 얼굴을 기억했고, 강씨는 곧 경찰에 붙잡혔다.

양주 일대 성범죄 잇달아 "주민들 불안"
1달에 1번 신고…귀갓길 젊은 여성 타깃

비슷한 시기 김모(19)군은 양주 일대에서 초등학생을 노린 성범죄로 악명을 떨쳤다. 김군은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초등학생 B양 등을 대상으로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고 달아나는 등 강제추행을 반복했다. 지난해 6월28일 김군은 B양의 친구인 초등학생 4명에게 붙잡혀 경찰에 인계됐다.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잦았다. 지난해 8월 조모(37)씨는 20대 주부 C씨를 강제추행했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걷던 C씨를 뒤따라가 신체 일부를 더듬고 달아난 것이다.

하지만 C씨는 자신의 신분노출을 꺼렸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원치 않았다. 성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수사기관도 공소제기를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없다. 자연스레 조씨는 법망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조씨는 1년 뒤 경찰에 구속됐다. 여대생 2명을 성추행한(강제추행 치상) 혐의였다. 경찰이 찾던 '양주 발바리'는 바로 조씨였다.

지난 8월23일 양주경찰서는 여대생 D(20)씨로부터 "새벽 2시께 괴한에게 성추행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D씨는 성추행 과정에서 넘어져 상해를 입은 상태였다. 경찰은 현장 주변 CCTV 10여대에 기록된 영상을 입수,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영상 속 D씨는 버스에서 내린 뒤 한 아파트 단지로 향하고 있었다. 짧은 스커트 차림의 D씨는 마침 비오는 날이라 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D씨와 멀리 떨어져 걷던 반팔 티셔츠 차림의 한 남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점점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이내 작정한 듯 D씨에게 달려들었다. D씨는 곧 넘어졌고 해당 남성은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이와 비슷한 영상은 양주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현장 인근 CCTV에는 어김없이 백팩을 맨 의문의 남자가 등장했다. 조씨였다. 경찰은 조씨를 용의자로 지목한 뒤 그의 도주로 파악과 CCTV 분석에 주력했다. 조씨의 집을 알아낸 경찰은 조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씨는 지난해 9월에도 같은 수법으로 E(23)를 강제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C씨를 성추행한 지 1달도 되지 않아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조씨는 주택가나 공원일대,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혼자 걸어가는 여성들을 뒤따라가 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조씨는 아이를 안고 가는 20대 엄마, 교복 차림의 10대 여학생 등 젊은 여성이 홀로 다니면 가리지 않고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시간은 인적이 드문 밤. 비가 오는 날로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경찰 조사에서 조씨는 "비오는 날 새벽이면 성적인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범행은 모두 4건이다. 그러나 비슷한 신고가 10건이 넘어 경찰은 다른 사건도 조씨의 범행으로 보고 있다.

범인 잡혔지만…

다만 한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사건을 없던 걸로 해달라고 했다"면서 "동네가 좁다 보니 이런 일로 이름이 알려지는 걸 꺼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조씨는 초등학생 남매를 둔 가장이자 평범한 회사원으로 전해졌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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