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성추행 경계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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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성추행 경계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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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만지다 팬티로 ‘쑤욱’

 

[일요시사=사회팀‘30미터 청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성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의료계에서 나온 자조적인 목소리다. 모호한 성범죄 적용 기준으로 환자들은 물론 의사들까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적절한 진료임에도 불구하고 성추행 등으로 오해를 하는가 하면 배 부위를 진찰하다가 팬티로 손을 넣는 등 피해 사례도 다양하다.

지난달 22일 인천의 한 중소병원 소아과 의사인 김모씨가 진료과정 중 무리한 신체접촉을 하는 등 여중생 3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인천지방검찰청에 따르면 피해 여중생들은 김씨가 진찰 도중 성기를 허벅지에 닿게 하는 행위나 청진기를 가슴에 대는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 4월 감기증세로 병원을 찾은 중학생 A양에게 다리를 벌리게 하고 다가가 무릎에 성기 부위를 밀착시키고 또다른 여중생 B양은 침대에 눕혀 배 부위를 진찰하던 중 팬티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적절한 진료다”

이번 사건은 피해 여학생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며 알려졌다. 피해 여학생은 병원을 찾은 후 울면서 부모에게 성추행 사실을 알렸다. 피해자 가족들이 병원에 찾아가 항의하자 병원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사과조차 하지 않아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 여학생들의 부모는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정상적 진료행위의 도를 벗어나 환자인권을 철저히 무시한 행위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김씨는 의도적인 신체접촉은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경으로 귀 안쪽을 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신체 접촉을 피해자들이 과도하게 해석한 것”이라며 “정상적인 진료 과정이었다”고 반박했다.

진료과정 중 무리한 신체접촉 지적
신고·고소 잇달아…미성년 피해도

같은 달 인천지역의 또 다른 병원에서는 영상의학과 소속 방사선과에 근무하는 C씨가 119구급대에 의해 실려온 응급환자 D씨의 속옷을 벗기고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6월 피해자 D씨는 부부싸움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옮겨왔고, 성추행 범행 당시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병원을 퇴원한 D씨가 며칠 뒤 성추행 사실을 인천 원스톱지원센터(여성·학교성폭력 피해자 전담의료기관)에 신고하면서 C씨의 범행이 드러났다. 현재 C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청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강간 및 강제추행 등 성범죄로 입건된 의료계 종사자들은 354명이었다. 강간죄의 경우, 2008년 43명에서 2010년 67명, 2012년 83명으로 4년 새 2배 가량 증가했다. 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의료계 직종 근무자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강 의원은 “몸이 아픈 환자들은 의사에게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맡기는 데다 의사들은 수면유도제, 몰핀 등 각종 약물을 다루기 때문에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며 “진료실 및 수술실 내 성범죄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라 2012년 8월2일자로 아동·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확정판결을 받은 의료인의 취업과 의료기관 개설이 10년간 제한됐다.

앞선 김씨의 경우 유죄가 확정되면 현행법에 따라 10년간 의료기관의 개설이나 취업이 불가능하다. 사회적으로 의사들의 성추행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김씨의 판결에 의료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모호한 성범죄 기준
환자·의사들 불만

과거 당연히 여겼던 청진이 성추행의 원인이 되어 최근에는 청진을 받는 일부 환자들이 의사를 비난하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자 의사들은 “청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환자의 경우 청진을 하지 않으면 무성의한 진료라고 생각해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같은 증상으로 여러 병원을 찾은 경험이 있는 한 환자는 이전 병원에서 없었던 신체 접촉이 과잉진료로 느껴져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촉진, 타진, 청진 등은 기본적인 진찰과정으로 오진의 확률이 낮출 수 있어 의사가 신체를 만지는 것은 제대로 된 의료행위라고 말한다.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신체적 접촉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진찰 과정과 피해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성폭력 혐의의 적용이 적절치 못하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폭력 특별법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의료계에 별도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치심 느낀다” 

경기도 부천의 의사 박모씨는 “성추행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다. 본인이 불쾌감을 느끼면 성추행이라 생각한다”며 “청진기로 진료 시 남자는 몸 앞쪽에서 듣고 여자는 몸 뒤쪽으로 듣는 방법이 있다. 거기서 단점은 등으로 들을 경우 후천적 심장병과 같은 병을 찾아내기 힘들다. 환자의 병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 청진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사협회 아청법 헌소
“의사들만 괴로워”

의사협회는 지난달 16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과잉입법의 논란이 있었던 아청법 헌법소원과 관련해서는 아청법 위반으로 인해 행정처분 받은 회원들의 소송을 지원한다.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는 정식 재판을 포기하고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의료기관 개설허가 신청이 거절당했다. 이처럼 아청법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행정소송, 헌법소원을 동시에 제기해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협회의 방침은 가능한 빨리 헌법소원에 나서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통해 10년간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제한 등 아청법의 모순이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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