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운대 ‘청소상납’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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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 ‘청소상납’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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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죽어도 구석구석 걸레질

[일요시사=사회팀] 갖가지 불합리한 처우로 고통 받던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측과 맞붙어 승리했다. 이들은 학교 측의 사과를 받아내고 노조활동을 보장받았다. 농성 나흘 만에 얻은 결과다. 도대체 광운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지난 9일 오후,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와 함께 광운대를 찾았다. 추운 날씨에 비 내리는 광운대 캠퍼스는 회색빛이 감돌았다. 정문으로 들어가 운동장을 지나자 대학본부인 화도관이 보였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곳이었다. 건물 1층을 바라보니 총무처 앞 로비에는 청소노동자들이 박스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박스에는 이불, 밥통, 커피포트가 있었다. 단단히 준비한 채로 학교 측에 항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당한 지시들

건물에 울려퍼지는 우렁찬 마이크 소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 벽면에는 항의 벽보가 가득했다. 천천히 그 글들을 읽어보니 그간 청소노동자들이 당한 불합리한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광운대가 책임지고 악덕업체 쫒아내자” “이사장은 왜 K건설을 끌어안고 있나” “비정규직 탄압하는 광운대는 각성하라” “K건설 몰아 내자”

2층 총장실 앞 복도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총장실 앞에서 만난 광운대 한 학생은 “학교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일에 학생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수십 명의 청소노동자들은 차디찬 바닥에 박스를 깔고 앉아 농성 중이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을 주축으로 고려대, 홍익대, 이화여대 등 총 15개 분회가 농성에 참가한 것. 이들은 학교 측의 사과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청소노동자들은 나흘 만에 갈등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들은 9일 밤 결국 합의를 이끌어 농성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했다. 광운대 측은 노동상납, 인권침해 등에 대해 노조에 공개 사과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광운대 노조는 지난달에 출범했다.

또 노조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으며, 이들이 속한 용역업체가 내년 집단교섭에 성실히 응하도록 관리감독 하기로 했다. 그 결과를 용역계약서에 반영하기로 약속했다. 청소노동자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관리자 및 직원도 해임하기로 했다.

노조는 “2014년 집단교섭을 통해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임금을 포함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의 노조활동 방해 시나리오 문건을 규탄할 예정이었으나 전날 합의에 도달해 이를 취소했다. 노조는 9일 밤 학교 측이 노동조합 활동을 계획적으로 방해하려 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공개했다. 광운대 측은 “해당 문건은 학교 측에서 작성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광운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걸까.

한여름에 이사장 아들 집 대청소
부친 산소 불려가 제사상 차려
휴식시간 도토리·은행 바치기도

광운대 청소노동자 A씨는 지난 여름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광운대 이사장 아들이 이사 올 집 청소를 하라는 것이었다. 한여름 같은 팀 노동자 8명이 빗자루 등 청소도구를 들고 학교에서 수 km 떨어진 집까지 걸어갔다.

3∼4시간 집 구석구석을 청소했지만 다음날 용역업체 사장은 다시 청소해야 한다며 노동자들을 또 데려갔다. A씨는 심지어 이사장의 돌아가신 아버지 묘역에 불려가 제사상을 차린 적도 있다.

B씨는 휴식시간에 ‘노동 상납’을 경험했다. 소장의 지시는 황당 그 자체였다. 산에 가서 도토리와 은행 열매를 모아오라는 것. 그는 휴식 시간에 두 번 산에 올랐다. 주운 도토리와 은행은 깔끔하게 껍데기를 까 소장의 지시대로 이사장의 집에 두고 왔다.



C씨는 1년 전 딸이 암으로 사망했다. 새벽 1시30분에 딸이 사망했지만, 그날 새벽 4시에 학교로 출근했다. 일을 마치고 소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2일장을 치르고 나왔다. 장례식을 치른 사이, 소장은 다른 청소노동자들 앞에서 “잘릴까봐 상 치르자마자 바로 출근하고 청소도 다 해놓고 갔나”고 비아냥거렸다.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또 용역업체 소장은 성희롱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현재의 용역업체로 청소노동자 파견회사가 바뀌면서 기존 청소노동자들의 월급을 깎았다. 수습기간이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청소 물품도 충분하지 않았다. 문제는 청소노동자들이 직접 사비를 털어 도구를 샀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쌓이고 쌓인 것.

참다못한 청소노동자들은 지난달 1일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 분회 출범식을 열고 학교 측의 부당노동행위를 막아갈라고 요구했다. 당시 학교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새로 온 용역업체 소장은 ‘눈에 띄게 행동하지 말라’고 청소노동자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참다못한 광운대 청소노동자 70여명은 5일 낮부터 총장실이 있는 대학본부 건물에서 농성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당한 불합리한 노동 행위에 대한 해명과 재발 방지 등을 요구했다.

광운대 측 관계자는 “모든 사항을 용역업체에 일임한 터라 업체 측에 진상파악을 요구했고 성희롱 한 소장은 이미 해임된 걸로 알고 있다”며 “사태 파악을 하는 중에 노동자들이 갑자기 점거농성을 시작해 총장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유 있는 농성

광운대 청소 용역을 맡은 K건설은 청소노동자들을 잡부 취급했다. 그런데 이 업체의 부당 노동 행위를 설명해도 학교 측은 입을 굳게 닫았다. 이 때문에 K건설 사장과 광운대 이사장이 막역한 사이가 아니냐는 소문까지 흘러나왔다. 타 대학의 경우 문제발생 시 용역업체를 퇴출시켰지만 광운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노총 운수노조 서경지부 관계자는 “학교 입장은 불분명하다”며 “모호하고 포괄적인 내용만 이야기하고 정확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광운대 청소노동자 문제는 학교 측의 사과로 일단락 됐지만 이와 유사한 사건이 타 대학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도 청소 딜레마
직접고용? 그대로 용역?
민주당이 최근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강창희 국회의장이 국회 사무처에 “적극 검토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지난 11일 전해졌다.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 정규직 전환은 2011년 18대 국회 박희태 의장이 약속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당시 권오을 사무총장은 “이번 용역 기간(2013년 12월)이 끝나면 국회에서 직접채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회가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오는 31일자로 근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국회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는 200여명에 이르며, 이들은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고 월 기본급 104만5740원을 받는다.

민주당은 국회 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청소 용역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현재 예산으로 직접 고용할 경우 3억9000만원의 예산절감 효과가 있고, 예산절감분을 노동자 인건비 인상에 사용하면 17%(1인당 20만원 안팎)가량 임금인상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2015년 말까지 계약돼 있는 국회 내 다른 시설관리용역 근로자와의 형평성 문제, 직접 고용 시 발생하는 정년(60세)을 초과하는 61세 이상 근로자(약 30%)에 대한 고용보장 문제, 잦은 파업발생으로 인한 노무관리 문제 등을 우려해 국회 청소노동자의 직접고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이들(청소노동자)이 무기 계약직이되면 노동 3권이 보장된다”면서 “툭하면 파업하려고 할 텐데 어떻게 관리하려고 그러는가”라고 말해 ‘막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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