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비례대표 '지역구 찾아 삼만리'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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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비례대표 '지역구 찾아 삼만리'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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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는 딱 한번 "재선의 길은 멀고 험하다"


[일요시사=정치팀] 벌써 19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다음 총선에 출마할 지역구를 찾지 못한다면 재선의 꿈은 물거품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은 이미 지역구를 결정하고 터 잡기에 나선 경우도 있다. 지역구를 찾아 떠도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실태를 살펴봤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는 선거제도다. 비례대표 후보들은 지역구를 따로 배정받지 않고 총선에서 각 정당이 정한 순번에 따라 국회에 입성한다. 정치색은 옅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를 국회에 진출시켜 적극적인 입법활동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 당초 비례대표제의 취지였다. 하지만 19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이 다음 총선에 출마할 지역구를 찾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낮은 생존율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비례대표는 연임이 불가하다. 재선을 노리고 있는 비례대표 의원들이라면 반드시 출마할 지역구를 물색해야 한다.

사실 비례대표 의원의 생존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지난 18대 비례대표 의원 출신으로 19대 지역구 의원으로 생환한 이들은 새누리당에서 나성린(부산진을), 민주당에서 김상희(부천 소사) 의원 두 명 뿐이었다. 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은 모두 54명으로 새누리당이 26명, 민주당이 21명, 통합진보당 2명, 진보정의당 4명, 무소속 1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다음 총선에서 몇 명이나 생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야 비례대표 의원 중 일부는 이미 공식적으로 당 지도부로부터 지역을 배정받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은 민주당 윤호중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구리시의 당협위원장을 맡았고,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은 민주당 이언주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광명을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당 김기준 의원도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양천갑 지역위원장을 맡아 활동 중이고, 4성 장군 출신인 민주당 백군기 의원은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의 지역구인 용인갑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3군사령부와 55사단이 주둔한 용인갑의 특수성을 고려한 배치였다.

또 민주당 홍의락 의원은 야권의 불모지로 불리는 대구 북구을의 지역위원장을 맡아 눈길을 끈다. 이들은 이미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지역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이같은 비례대표들의 조기 전진배치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전략이란 분석이다. 지역구 출마를 염두에 둔 비례대표 의원들에게 특정 지역을 할당해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대로 지역구 다지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당은 당협위원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비례대표가 미리미리 뿌리를 내려 재선을 하면 당으로서도 좋은 것이고,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서도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구 못 찾으면 정치권 떠나야
빈 지역구 생기면 너도나도 눈독

하지만 한 지역에서 두 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활동하다보니 잡음도 있다. 지난해 10월 경기 광명시에서는 시민의 날 기념식 때 손인춘 광명을지역위원장의 축사를 배제한 것을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새누리당 시의원 4명은 기념식 시작을 앞두고 갑자기 단상에 올라가 "시민의 화합과 소통을 도모하는 축제 책자에 손 의원의 축사를 넣지 않은 것은 민주당 중심의 편가르기 행태"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시의원들의 항의소동으로 행사는 20여분이나 지연됐다. 그러나 광명시는 시 주관 행사 축사의 경우 지역구 국회의원만 해당하고 비례대표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며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행사를 방해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와 같이 지역 국회의원이 두 명이 되면서 지역 행사장에선 축사 여부나 자리 배석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때문에 지방의회 의원들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새로 임명된 지역위원장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지역구 의원은 아니지만 현역 의원인 만큼 챙기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졸지에 보필해야 할 상전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한 지역구 의원은 어느 날 지역민들로부터 우리 지역의 국회의원이 바뀌었냐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자신의 지역구에 지역위원장으로 내려온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 행사에 와서 지역 국회의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생긴 오해였다.

공석이 된 지역구엔 비례대표 의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기도 한다. 민주당 서울 강서을 지역위원장은 김효석 전 의원이었다. 그런데 김 전 의원은 최근 무소속 안철수 의원 측 신당창당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에 합류했다. 서울 강서을은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성태 의원의 지역구다. 쉽지만은 않은 지역구지만 지역구가 공석이 되자 민주당 진성준 의원과 한정애 의원이 벌써부터 출사표를 던지고 경합 중이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은 비례대표지만 전남도당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민주당 제주도당 대외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주시 읍면동대책위원회 사무처장을 역임한 인물로 국회 입성 후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제주시 국회의원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충청권 국회의원 모임, 호남권 국회의원 모임 등 자신들의 고향과 연계된 의정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재선의 꿈

정치권 안팎에서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활동에 대해 본래 비례대표의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거세다. 비례대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입법활동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입법은 뒷전이고 재선을 위한 지역구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회의원 정수 조정과 관련해 지역구 국회의원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수를 늘리려고 하는 정치권의 움직임과도 상반된다.

한 정치전문가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본래 도입 취지와는 무관하게 자기 정치만 하려 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며 "비례대표 의원들의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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