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2002년 물탱크실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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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미제파일> ①2002년 물탱크실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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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환호 뒤로 사라진 엄마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끊이지 않는 잔혹범죄에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전체 사건 중 미제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초반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고 있다. 피해 가족들은 여전히 지옥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일요시사>는 서서히 잊혀 진 미스터리 사건들을 다시 재조명 해본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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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송씨는 여전히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린 아내의 영정. 그가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아내의 비극적인 죽음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관심 속 흐지부지
 
2002년 6월5일 청주시 수곡동,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A군은 학교 수업을 끝마친 후 여느 날 처럼 집으로 귀가했다. 그러나 현관에 들어서던 순간, A군은 집이 어딘가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실에 있던 소파는 제자리에서 한참 나와 있고 식탁의자는 넘어져 있었으며 전화선이 뽑혀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사라졌다.
 
저녁 준비는 하다가만 상황이었으며, 심지어 현관문은 잠겨있지도 않았다. 평소 꼼꼼한 엄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내 여동생 B양이 돌아와 엄마를 함께 찾았지만 엄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남매는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6일, 주부 강정숙(당시43)씨의 실종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실종 이튿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자택 내부는 수사하지도 않은 채 ‘접수해놓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고, 얼마 후 강씨의 실종이 ‘단순 가출’이라고 전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날 알게 된 사실. 실종당일 자택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한 은행에서 오후 5시22분에 현금 1000만원이 인출된 것이다. 경찰의 어떤 도움도 없이 가족이 직접 은행을 찾아가 관계자에게 사정한 끝에 보게 된 CCTV에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강씨의 카드에서 마구잡이로 돈을 인출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가족들은 이 사실을 경찰에게 알렸으나, 냉담한 반응만 돌아왔다. 당시 경찰은 “가출을 위해 내연남이나 다른 사람에게 시켜 돈을 인출한 거 아니겠느냐”며 강씨가 ‘바람이나서 도망갔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강씨의 가족들은 소극적인 경찰의 태도에 항의하며 CCTV에 포착된 ‘그 남자’의 사진을 직접 현상해 포스터를 만들어 배부했지만, 실종된지 한 달이 다 되도록 강씨의 행방은 묘연할 따름이었다.
 
이후 강씨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한 달 동안 남은 가족들은 이상한 현상을 감지했다. 집에서 무언가 썩는 듯한 악취가 진동하고 집 앞 복도에 구더기가 끓기 시작한 것이다. A군이 악취의 근원을 찾아 집을 뒤지다가 곧 옥상의 물탱크실 앞까지 다다랐다. 문 앞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것으로 미루어 악취와 구더기가 생기는 이유가 문 너머에 있으리라 확신했지만, 무언가 불안하고 복잡한 기분이 몰려왔다. 이내 A군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그곳엔 온몸이 부패해 죽은 채로 쓰러져 있는 엄마가 있었다.
 
실종 신고하자 “바람나서 도망” 경찰 냉담
한달 후 집 악취 진동…옥상서 사체로 발견
 
2002년 6월28일, 실종된 지 23일만에 강씨의 시체가 발견됐다. 경찰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시체를 수습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성의 없는 수사태도에 관한 질타가 두려워 사건을 덮으려는 데 급급했다. 범인에 대한 단서라고 해봐야 사건 당일 근처 은행에서 찍힌 사진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강씨의 시체는 이미 상당히 부패되어 있었던 까닭에 사인이나 사망시각을 추측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사건이 보도될 당시는 마침 한일월드컵 열기가 불을 뿜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월드컵으로 향해 있었다. 어느 누구도 평범한 가정주부의 죽음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사건은 흐지부지되어갔고 결국 수사는 종료되고 말았다.
 
이 사건에 대한 의문점은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현모양처. 강씨의 남편 송씨는 사고로 인해 1급 장애인이 된 상태였으나, 아내인 강씨의 보살핌에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초기 남편인 송씨를 용의자로 지목한 바 있다.
 
송씨는 혼자서는 거동조차 힘든 몸 상태였다. 둘째, 강씨의 소지품. 사체 발견 당시 강씨의 소지품도 함께 발견됐는데, 인출에 사용됐던 카드를 제외한 모든 소지품이 그대로 있었다. 셋째, 못 다한 저녁준비. 물탱크실에서 부패한 상태로 발견됐을 당시, 강씨는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자녀들에게 차려줄 저녁을 준비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넷째, 사건당일 인근 주민의 조용했다”는 증언. 다섯째, 알리바이. 은행에서 찍힌 정체불명의 사내를 수배하던 당시, 같은 빌라에 거주하던 세입자 중 인상착의가 비슷한 인물이 있었으나, 알리바이가 증명되면서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당시 경찰은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사건은 잊혀져갔다. 그러나 9년이 흐른 2009년, 한 방송이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경찰 수사가 재개됐다. 수사를 재개한 청주 흥덕경찰서는 강씨 예금 1000여 만원을 인출하는 장면이 찍힌 CCTV와 사건 당시 집 전화 통화 내역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했으나 진척이 없었다. 9년이나 흐른데다가 목격자나 증거도 전혀 없어 수사의 폭을 좁혀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재수사 후 2개월간 ‘CCTV에 찍힌 용의자와 닮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제보도 5건이나 접수됐지만 이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의 한 관계자는 “현장이 보존된 것도 아니고 목격자 등 범인을 추측할 만한 자료도 전혀 없어 수사에 진척이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며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가능성이란 ‘단순강도에 의한 살인’이거나 ‘원한이 있는 지인의 소행’ 혹은 ‘누군가가 제3자를 시켜 죽였을 가능성이 있는 살인 교사’ 등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9년 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섯가지 의문점
 
금전이 목적인 강도라면 시신을 유기하기보다 도주에 급급했을 것이고, 원한관계가 있는 지인이라면 살인이 목적이기 때문에 굳이 피해자 명의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살인 교사였다면 살해 후 시신을 굳이 집 옥상까지 끌고 가 방치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낮다는 추측도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증거도,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CCTV화면에 찍힌 용의자를 찾아내는 일”이라며 “화면에 찍힌 사람이 범인은 아닐지라도 범인과 깊게 연관된 관계라고 보고 끝까지 찾아내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현재까지도 뚜렷한 성과는 없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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