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1997년 관덕정 살인사건

한국뉴스


 

<풀리지 않는 미제사건> ③1997년 관덕정 살인사건

일요시사 0 4788 0 0
▲ 제주 관덕정 <사진=뉴시스>













중요부위 파내고 찢고…잔혹한 피살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끊이지 않는 잔혹범죄에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전체 사건 중 미제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초반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고 있다. 미제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지옥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일요시사>는 서서히 잊혀 진 미스터리 사건들을 다시 재조명 해본다. 그 세 번째 이야기는 ‘관덕정 살인사건’이다.

 icon_p.gif 
1997년 8월14일, 제주시 상도2동 시내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 ‘관덕정’ 인근의 옛 법원청사 철거 공사현장에서 벌거벗겨진 채로 버려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상태는 매우 참혹했다. 얼굴과 뒤통수, 목덜미에 심한 구타의 흔적이 있었고, 유두는 도려내졌으며 음부는 찢겨져 있었다. 

참혹한 시신훼손
 
사망 추정 시간은 새벽 3시, 경찰은 신원조사를 통해 피해자가 관덕정 부근에 있는 한 단란주점에서 일하던 고모(당시 32세)씨임을 알아냈다. 이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고씨는 자신이 일하던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현모씨와 일을 끝내고 새벽 늦게 귀가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체불명의 괴한이 현씨를 습격했다. 범인은 현씨를 피투성이로 만들고, 고씨를 인근 공사현장으로 끌고가 무참히 살해했다. 다행히 현씨는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돼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경찰은 사건현장을 중심으로 단서와 목격자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사건이 새벽에 순식간에 벌어졌다는 점 때문에 뚜렷한 증거를 포착할 수 없었다. 실제 사건현장에서는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라면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를 통해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 뿐.
 
사건발생 23일 후인 9월6일. 수사가 미궁에 빠지던 찰나, 경찰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살인범이다. 너희는 뛰어봐야 나는 날고 있다. 나를 못잡는다”. 이러한 전화는 다섯 번이나 걸려왔고, 경찰은 이 전화가 걸려온 발신지를 추적해 공중전화의 위치를 파악한 뒤 전화 수화기에서 지문을 조사해 추출한 끝에 용의자 김모씨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8월3일과 9월23일에 관덕정 인근에서 강간미수와 특수강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전 사건에서 김씨는 피해자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찍는 수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해 경찰은 심문을 실시했다. 김씨는 관덕정 살인사건을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자백했다.
 
그의 자백에 의하면 김씨는 새벽에 관덕정 인근을 지나던 중 두 여자가 싸우는 것을 보고 돈을 훔칠 목적으로 현씨를 돌로 내려친 뒤 핸드백을 들고 도망가려는데, 고씨가 쫒아와 핸드백을 돌려달라고 하자 근처의 공사현장으로 끌고가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백을 받아들인 경찰은 사건 처리에 들어갔고 김씨는 사건현장을 태연하게 재연하기도 했다. 사건은 종결되는 듯 했다.
 
단란주점 종업원 시신 나체로 발견
자수한 용의자 재판서 진술 뒤집어
강간혐의만 인정…8년 복역후 석방
 
그러나 재판장에 도착한 김씨는 기존의 혐의를 부인했다. 범행 재연까지 모두 끝내놓았던 그였기에, 그의 달라진 태도에 시선이 집중됐다. 김씨는 자신을 취재하러온 신문기자에게 “나 안했어, 안했어”라며 돌발행동을 보이며 자신과 관련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나머지 범행 또한 모두 자신이 짓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뚜렷한 물적 증거가 전무했던 경찰은 순전히 김씨의 자백에 의존해 정황을 맞춰갔었다. 그런데 김씨가 이를 부인하다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재판부는 김씨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김씨에게 ‘특수강도와 강간미수 혐의’만 적용해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김씨는 재판장에서 “사건 이전에 폭행을 당해 경찰서를 찾았으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앙심을 품고 공중전화로 전화해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바잭한 내용은 TV와 신문에서 본 걸로 대충 진술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사실, 정확한 사건 발생위치와 범행도구가 돌이라는 것, 그리고 옷 색깔과 피해자에게 쇼핑백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김씨가 목격자일 수 있다는 추측을 바탕으로 조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단순 강도 목적에서 살인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이지만, 시신을 심하게 훼손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이 사건만으로 그치지 않은 연쇄살인의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후 2012년 7월12일 오전 7시경, 제주 여성 피살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도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됐고 피해자 물품이 보란듯이 버려진 채로 있었다는 점에서 ‘관덕정 살인사건’과의 유사성이 발견되어 같은 범인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혹이 돌았다. 그러나 범인이 잡힌 시점에서 관덕정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2주 남짓 남은 상태였고, 결국 양자간의 관련성을 밝혀내지 못한 채 2012년 8월14일 공소시효가 종료됐다. 김씨는 8년을 복역한 뒤 2005년 출소했다. 17년 전 제주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잔인한 사건, 이제는 처벌조차 불가능해졌다.
 
관덕정 살인사건의 피해자 고씨의 시신이 발견되기 20여 분 전인 1997년 8월14일 오전 7시38분께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의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 강모(당시 39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강씨는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이 사건도 관덕정 살인사건처럼 여성의 중요부위가 흉기로 추정되는 물건으로 훼손됐다. 머리는 둔기를 맞아 함몰된 상태였다. 

17년째 미궁
 
최초 신고자였던 남편은 부인과 연락이 두절되자 직접 호프집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호프 종업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강씨가 먼저 퇴근을 시켰다”고 진술했다. 현장에는 지문과 혈흔 발자국 등이 확인됐다. 당초 경찰은 원한이나 금품을 노린 사건으로 추정했으나 현금과 신용카드 등이 들어있는 가방은 그대로 사건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나온 증거물과 주변인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용의자를 압축했다. 용의자 자택 압수수색까지 벌였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는 못했다. 뚜렷한 제보는 물론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수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17년이 지난 현재까지 수사에 진척을 보이지 못하면서 이 사건 역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khlee@ilyosisa.co.kr>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