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91∼'94년 대천 어린이 연쇄피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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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미제사건> ④'91∼'94년 대천 어린이 연쇄피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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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배 갈라 간 빼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끊이지 않는 잔혹범죄에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전체 사건 중 미제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초반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고 있다. 미제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지옥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일요시사>는 서서히 잊혀 진 미스터리 사건들을 다시 재조명 해본다. 그 네 번째 이야기는 ‘대천 어린이 연쇄피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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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아주 유명한 옛 이야기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쥐들의 등쌀에 괴로워하자 어디선가 홀연 낯선 사나이가 피리를 불어 쥐들을 몰고 가 강물에 빠져 죽게 한다. 하지만 시장과 의원들이 사나이에게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자 사나이는 또다시 피리를 꺼내분다.
 
그러자 온 동네 아이들이 사내를 따라가고 이윽고 마을에서 실종돼 버린다. 부모들은 다시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됐고, 그 마을은 아이들이 사라진 날을 기준으로 날짜를 세기 시작했다. 도대체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의 정체는 무엇일까. 
 
갓 태어난 아기들
 
교훈을 담고 있는 이 이야기는 20여 년 전의 한 사건과 일면 닮아 있다. 1991년에 일어난 ‘대천 어린이 연쇄실종 피살사건’이 그렇다. 사건의 시작은 어이없는 해프닝에서 비롯됐다. 1991년 8월16일 새벽, 충남 대천시(현 보령시 대천동). 김영철씨가 끔찍이 아끼던 생후 2개월된 아기가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다.
 
갓난아이가 사라지자 온 마을은 난리통이 됐다. 마을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적극적으로 아기를 찾아다녔다. 덕분에 10시간 만에 마을 외곽의 논두렁에서 아기를 찾게 됐다. 다행히도 약간의 타박상 외에는 건강한 상태였다.
 
이 사건은 마을에서 일어난 하나의 해프닝으로 남게 됐을 뿐,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는 아기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논두렁에 누가, 왜 갖다 놓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아기를 찾은 부모님과 마을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정확히 6개월이 지난 92년 2월16일. 김영철씨와 같은 마을에서 살던 가민택씨의 아기가 실종됐다. 생후 15일이 지날 무렵이었다. 또 다시 마을사람들은 경찰과 협심해 마을주변을 이 잡듯 뒤져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실종된 아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2월 초의 겨울날씨에 생후 보름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몇 시간이나 외부에 노출된 탓에 결국 후유증으로 폐렴 등의 합병증이 생겨 사망하고 말았다. 가민택씨의 집은 김영철씨의 집과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경찰은 이를 동일범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연쇄범죄의 기미를 발견했으나, ‘비밀수사’ 원칙을 고수했고, 사건발생 사실을 극비로 부치며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증거가 없었던 탓에 사건은 유야무야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 사건 이후 4개월여가 지난 6월4일. 김영철, 가민택씨와 같은 마을에 사는 유정덕씨의 생후 4개월 된 딸이 실종됐다.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수사 끝에 아기가 발견됐지만, 아기의 온몸에는 심한 타박상이 있었다. 결국 병원으로 옮겨 치료하던 중 숨을 거두고 말았다. 범인을 찾을 만한 뚜렷한 단서는 없었다. 마을주민 모두가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경찰은 비공개 탐문수사에만 소수의 인력을 투입할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유정덕씨의 집은 가민택씨의 집과 고작 1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세 번째 사건으로부터 3개월여가 지난 9월8일. 네 번째 영아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같은 마을 김영배씨의 집에서 산후조리를 받고 있던 산모의 생후 6일 된 딸이 실종된 것이다.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아기를 찾기 위해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경찰은 비공개 수사 원칙을 고수하면서 앞서 일어난 네 번의 사건 중 단 한 건의 사건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련의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동네서 5명 영유아 잇달아 사라져
어렵게 잡은 용의자 증거 없어 훈방
2009년 공소시효 만료로 ‘영구미제’
 
첫 번째 사건으로부터 정확히 3년이 지난 뒤인 94년 8월16일. 같은 마을에 있던 한 식당의 뒷논 주인이었던 조병수씨가 자신의 논에서 옷이 모두 벗겨진 채로 죽어 있는 5살 여자아이를 발견했고, 저녁 6시께 경찰에 신고했다. 죽은 여아는 같은 대천동의 주민이었던 김영환씨의 딸 김수인양이었다. 김양은 옷이 벗겨진 상태였고, 배에는 예리한 칼로 찔린 상처가 두 개 있었다. 김양의 시체가 발견된 논은 마을에서 1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5살 난 여아가 쉽게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경찰은 시체 발견 후 사흘이 지나서야 김양의 시체를 부검했다. 검사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목을 조른 것이었으며, 질식해 사망한 뒤 흉기로 배를 갈라 간의 일부를 적출해 어딘가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 간의 조각은 시체 발견 10일 후, 김양이 발견된 논에서 불과 2km 떨어진 농수로에서 발견됐다.
 
범행 방법이 당시로서는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던 탓에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앞서의 영아 실종사건 또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비공개 수사를 원칙으로 삼았던 경찰은 공개수사로 방향을 방향을 틀었다. 인근 주민의 제보를 바탕으로 시체 발견 당일 논 근방에서 과도와 여자스타킹, 면장갑을 지닌 채 주위를 배회하던 이모(34)씨를 용의자로 붙잡았다. 또한 인근의 정신병자와 난치병환자를 중심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난치병 환자가 살아 있는 사람의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색 장면
 
경찰의 수사 끝에 김양의 집 근처에서 혈흔이 발견돼 감식에 들어갔으나 사건과는 관계가 없었다. 용의자 이씨 또한 사건과 접점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훈방조치 됐다. 수사는 이렇게 종결됐고 2009년,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다섯 번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됨으로써 5명의 영유아가 사라진 이 사건은 영구 미제사건 리스트에 올랐다.
 
당시 사건이 발생한 마을은 허름한 주택이 모여 구성된 빈민촌이었다. 도합 2000여가구로 추정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막노동이나 소규모 장사를 하며 월세살이를 했다. 빈민촌 특성상 이사가 잦고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으며, 대부분 단층 건물로 현관문이 허술해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 마을을 담당하는 경찰서는 한 곳도 없어 마을 청장년으로 이루어진 자율방범대만이 이곳의 치안을 유지하던 실정이었다.

울음 없이 사라져
 
이 사건의 의문점은 네 가지다. 첫째, 사건 발생 장소. 3년에 걸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 대천동 안에서 일어났다. 사건이 발생한 모든 구역을 점으로 표시한 뒤 이으면 반경 300m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집중된 지역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마지막 사건. 첫 번째 사건부터 네 번째 사건의 경우에는 실종된 아이들이 모두 영아라는 것과 보령 시내의 ‘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사건의 희생자인 김양은 언어구사능력과 신체능력이 있는 5살이었다. 당시 김양의 방에 1살배기 아기가 있었지만 희생된 건 5살 김양이었다. 첫 번째 사건(1991.8.16)과 다섯 번째 사건(1994.8.16)의 시차가 정확히 3년이라는 점도 의문이다. 셋째, 김양의 유괴경위. 당시 김양의 집은 매우 비좁아 가족 4명이 누우면 발 디딜 틈도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김양은 덩치가 큰 5살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이를 데려가는데 가족 모두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넷째, 범행동기. 사건이 발생한 마을은 빈민촌이었다. 금전을 노리고 올 가능성은 낮았다. 장기적출이 목적이라고 해도 정작 떼어간 부분은 너무 작았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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