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1972년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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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미제사건> ⑤1972년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

일요시사 0 5420 0 0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영화 <7번방의 선물>












경찰이 억지로 만들어낸 살인범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끊이지 않는 잔혹범죄에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전체 사건 중 미제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초반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고 있다. 미제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지옥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일요시사>는 서서히 잊혀진 미스터리 사건들을 재조명 해본다. 그 다섯 번째 이야기는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이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영화 <7번방의 선물>
일반적인 사건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 피해를 입은 피해자. 그러나 미제사건은 일반사건과 다르게 피해자만 존재한다. 문제는 경찰이 이따금씩 미제사건을 의도적으로 일반사건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가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억울한 옥살이
 
1972년 9월27일 오후 7시께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춘천 역전 파출소장 장씨의 딸이었던 장양(당시 10세)은 저녁밥을 먹고 난 뒤 ‘TV를 보러간다’며 근처 만화방으로 향했다. 장씨 가족은 딸아이의 평범한 일상이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장양은 밤늦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은 불안감을 느껴 딸을 찾기 위해 나섰다. 결국 경찰 인력까지 몽땅 동원해 딸을 찾았으나 동이 틀 때까지도 장양의 신변을 확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다음날 아침. 장양이 집을 떠난 지 약 13시간 만인 오전 8시께, 이른 아침 논을 보기 위해 나왔던 한 노인이 무수한 벼 사이로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벼 사이에는 장양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발견 당시 장양은 벌거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가족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부검결과 강간당한 후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무고한 어린아이가 강간을 당하고 처참히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때문에 ‘장양 강간살인 사건’은 언론을 통해 전국 곳곳에 알려지게 됐다. 장양은 경찰서장의 딸이었기 때문에 당시 경찰은 가능한 모든 인력을 총동원해 수사에 착수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별다른 단서를 잡지 못했다.
 
TV 보러간 10세 소녀
강간 후 처참히 살해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자 이 사실이 청와대까지 보고가 됐던 것. 이에 노한 박정희 대통령은 내무장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린다. “10일 안에 범인을 잡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건 관계자를 인사조치하겠다” 이후 수세에 몰렸던 수사상황은 반전을 거듭해 청와대가 정한 데드라인 10월10일 날 극적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이는 만화방을 운영하던 정원섭(38)씨였다.
 
체포된 정씨는 아내와 네 아이가 있었던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는 교사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춘천으로 돌아와서 만화방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밝힌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사건 당일 만화방으로 향했던 장양을 정씨가 “다른 가게로 가서 TV를 보자”며 사람이 없는 논 근처로 유인해 그대로 장양을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것.
 
실제로 현장에선 ‘하늘색’ 연필 한자루와 검은색 머리빗이 발견되었는데 두 증거품 모두 정씨와 관계가 있는 물건이었다. ‘하늘색 연필’은 조사결과 정씨의 아들의 것이었고 연필 자루에는 정씨 아들의 잇빨자국이 나 있었다.
 
게다가 검은색 머리빗은 본래 만화방에서 함께 일하던 여자 아르바이트생 김양의 것이었는데, 김양은 “정씨가 빗을 빌려가선 돌려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거기에 평소 정씨가 만화가게에 오는 여자아이들이나 직원들을 성추행 하는 등 행실이 좋지 못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정씨의 속옷에서 나온 핏자국이었다. 장양을 강간하면서 흘러나온 처녀혈이 속옷에 묻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과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정씨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졌고, 이후 정식 기소된 정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정씨는 애초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수감 후 모범수로 복역, 15년 형으로 감형받아 마침내 1987년 12월 출소하게 된다.
 
출소 직후 그는 “저는 죄가 없다”고 말했다. 이내 정씨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줄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수십년간 아동 강간 살인마로 살았던 정씨는 1999년 서울 고등법원에 ‘장양 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재심은 곧 기각됐다.
 
이후 정씨는 재항고해 대법원에 다시 사건에 대한 재심을 요구했으나 이것 역시 2003년 12월 기각됐다. 그러나 2005년 12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출범하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를 다시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뤄진 조사결과는 놀라웠다.
 
무리한 수사 만화방 주인 15년 복역
줄곧 결백 주장…재심서 무죄 판결
 
의문점 다섯 가지가 발견된 것이다.
 
첫째, 연필. 당시 경찰이 증거물로 제시한 연필은 ‘하늘색 연필’이었으나 최초 발견자의 증언에 따르면 ‘노란색 몽당연필’이었다. 게다가 하늘색 연필에서 발견된 정씨 아들의 잇빨자국은 ‘경찰이 직접 정씨의 아들을 찾아가 연필을 깨물게 했다’는 정황이 조사 중 드러났다.
 
둘째, 김양. 당시 정씨의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양은 현장에서 발견된 검은 빗이 ‘정씨가 빌려간 자신의 것’이라고 했으나, 이는 경찰의 강요에 의한 ‘조작된 증언’임이 밝혀졌다. 김양은 당시 재판에선 용기를 내어 “빗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진실을 증언했으나 위증죄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셋째, 핏자국. 핏자국이 발견되었다는 정씨의 속옷은 이미 정씨의 집에서 빨래를 담당하던 아주머니가 세탁한 지 오래였으며 경찰이 그것을 가져가더니 얼마 후 ‘핏자국을 묻혀서 왔다’고 증언했다.
 
넷째, 혈액형. 장양의 시체에서 발견된 ‘가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액’이 발견됐다. 해당 혈액은 A형이었으며, 정씨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다섯째, 가해자의 음모. 사건 수사 당시 가해자의 음모가 발견되었으나 당시 과학수사가 도입되지 않았던 탓에 별다른 단서를 알아낼 수 없었고, 정씨 체포 후 이 증거품은 폐기됐다.

여전한 고통
 
정씨는 2007년 11월 춘천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검찰의 두 번에 걸친 재항고 끝에 대법원까지 판결이 유보되어 마침내 2011년 10월27일,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더불어 해당사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결과 2013년 7월16일, 국가로부터 26억3752만원을 배상받을 수 있게 됐다.
 
무죄롤 선고받은 정씨는 “저 한 사람의 승리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1월23일 서울고법은 ‘소멸시효’를 이유로 청구를 기각해 결론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서울고법이 소송 제기 소멸시효 기간이 6개월에서 열흘이 늦었다며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열흘은 정씨가 진실규명을 위해 외롭게 싸워온 36년에 비하면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정씨는 국가로부터 2차 가해를 받았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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