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2001년 공동묘지 암매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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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미제사건> ⑨ 2001년 공동묘지 암매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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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마대자루 시체 신원 '몰라'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끊이지 않는 잔혹범죄에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전체 사건 중 미제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초반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고 있다. 미제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지옥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일요시사>는 서서히 잊혀 진 미스터리 사건들을 재조명 해본다. 그 아홉 번째 이야기는 속초에서 일어난 ‘공동묘지 암매장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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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강원도 속초의 한 공동묘지 근처에서 암매장된 시체가 경찰에 발견됐다. 마대자루에 담겨 있던 시체는 40대 초반 남성이었고, ‘휠라’ 상표가 새겨진 등산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경찰이 이곳을 수색하게 된 계기는 20대 남자 3명의 자백 때문이었다.

뜻밖의 진술
 
마대자루에 담겨 있던 시체가 발견되기 10일 전, 이들은 강도상해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었다. 체포된 이모(당시·23)씨와 황모(당시·20)씨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신문을 받았다. 그러던 중 믿기 어려운 진술이 나왔다. 경찰은 이씨를 추궁하다 “공범인 황씨가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했다”고 유도신문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씨는 “내가 아니라 황씨가 죽였다”고 대답한 것이다. 얼떨결에 던진 유도신문에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얼떨결에 밝혀진 새로운 사실에 이들은 강도살인 혐의를 받게 됐다. 그리고 범행에 가담했다는 또 다른 공범 방씨(28)도 소환됐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툭 던진 경찰의 말에 살인사건이 밝혀진 것이었다. 이후 이씨 등은 살해 암매장 장소와 범행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 경찰은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2001년 7월, 강원도 속초시의 한 콘도 주위를 방황하고 있던 이씨, 황씨 그리고 방씨 일행은 유흥비를 마련하고자 콘도 내 한 남자를 따라가다 그대로 습격했다. 이때 방 안에서 한 여자가 나와 소리를 지르려 하자 소화기로 여자를 내려찍고 반항하던 남자를 5층 옥상으로 끌고가 마구 구타한 뒤 흉기로 찔러 옥상에서 떨어뜨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했다. 이들의 자백이었다.
 
등산복 차림 40대 초반 남성
신원미상 유류품 불태워 없애
 
이를 토대로 경찰은 해당 콘도를 수사했다. 그러나 콘도 측은 “실종·살해 손님은 없었다”고 말했다.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후 경찰은 시체를 암매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동묘지를 찾아가 시체를 수색했다. 그러던 중, 묘지 인근에서 수상한 마대자루 하나를 발견했다. 펼쳐진 마대자루 안에는 한 남성의 시체가 있었다. 긴팔 ‘휠라’ 등산복을 입고 있는 신장 175m,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었다. 시체는 매우 부패된 상태였다. 경찰은 발견된 시체를 근거로 이들 3명을 강도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했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자 범행을 자백했던 이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이들은 1심에서 “살인한 사실이 없다. 경찰의 강요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했다”며 줄곧 범행을 부인했다. 재판장은 술렁였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각각 무기징역, 20년 징역, 7년 징역의 형을 선고했다. 모든 상황이 이들의 진술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피고인 측은 항고심에 임해 2003년 1월 2심에서 기존의 증거를 반박하며 재판을 원점으로 만들었다. 당시 서울고법 형사5부는 ‘암매장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시체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점, 범행과정·동기가 석연치 않은 점’ 등의 의문을 제기하며 처음부터 다시 심리를 했다.
 
강도 혐의 조사중 불쑥 살인 진술
재판서 유도신문에 거짓자백 부인
 
피고 측이 주장한 의문점은 이랬다.
 
첫째, 콘도에서 피해자의 투숙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
둘째, 가장 중요한 증인인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이 여자가 살이 있었다면 신고를 했을 것인데, 그런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셋째, 발견된 남자의 시체가 완전히 백골로 발견돼 반년이 아닌, 최소 1년 전에 암매장된 것으로 보였다는 것.
넷째, 피해자가 5층 옥상에서 떨어졌다는데, 시체에 골절은 전혀 없었다.
다섯째, 범행은 여름에 벌어졌지만, 시체의 옷은 여름이 아닌, 가을이었다.
여섯째, 단순히 유흥비 마련을 위해 성수기에 콘도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일곱째, 방씨는 지체장애를 갖고 있어 그의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
여덟째, 시체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옷가지 외에는 신원을 밝힐 만한 유류품이 없었다.
 
이 같은 피고 측의 반박에 법원은 검찰에게 시체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할 것을 요구했으나, 신원미상의 사체는 경찰의 손에 의해 산화해버리고 만 상태였다.
 
재판부는 “공소사실만으로는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소설과 같은 사건”이라며 검찰과 1심 재판부를 향해 쓴 소리를 내뱉었다. 결국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사건은 이렇게 종결됐다. 다만 이씨와 황씨는 별도의 강도상해 혐의만 적용돼 징역 4년에 처했다. 

가공된 사건?
 
애초 그들의 자백이 진실인지, 경찰이 강압적으로 유도신문을 한 것인지,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시체는 도대체 누구였던 것인지,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됐다. 이 의문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다. 피의자들이 수사관의 회유에 본의 아니게 서로를 공범으로 지목해 소설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낸 이 사건은 법심리학에서 공범들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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