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2004년 서천 카센터 화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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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미제사건> ⑩ 2004년 서천 카센터 화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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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 방문객들, 그리고 ‘펑’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끊이지 않는 잔혹범죄에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전체 사건 중 미제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초반으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고 있다. 미제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지옥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일요시사>는 서서히 잊혀 진 미스터리 사건들을 재조명 해본다. 그 열 번째 이야기는 충남 서천 시골마을에서 발생한 ‘카센터 화재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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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 읍내에는 다섯 개의 가게가 일렬로 모여 있는 상가가 있었다. 이 상가에서 농기계 가게를 운영하던 여주인 정모씨는 같은 건물에 있는 카센터 여주인 강모씨로부터 전화를 받고 늦은 밤 외출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들에게는 “카센터 사장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카센터 여주인과 같이 병원에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들은 카센터로 어머니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집에 들어갔다. 당시 카센터 앞에는 낯선 사람 몇 명이 서성거렸다.

새벽에 나간 여주인
 
그런데 새벽 2시가 넘어도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어 살펴보니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정씨의 아들은 급히 아버지와 동생들을 깨워 집 밖으로 나갔고, 카센터 쪽에서 시작된 불길이 상가 전체로 번지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이 불은 상가 전체를 태우고 나서야 진화됐고, 소방관들은 불이 시작된 카센터를 수색해 카센터 내부에서 성인 여성 한 명과 아이 두 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정씨의 가족들은 발견된 시신이 카센터 주인의 부인 강씨와 자녀인 쌍둥이 남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했다던 카센터 주인은 멀쩡하게 나타나 불에 탄 카센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씨의 남편은 의문이 들었다.
 
아내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강씨의 남편 병문안을 간다고 했었기 때문. 불에 탄 여성이 자신의 아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경찰 조사결과 불에 탄 시신은 아내가 맞았다. 사건 현장에서 정씨의 사체가 누운 채 발견된 점, 정씨의 시신에서 등유 성분이 검출된 점,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허리띠 버클이 발견된 점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에 무게가 실렸다.
 
한적한 시골마을 상가에 방화
부인·쌍둥이 남매 시신 수습
 
이후 경찰의 수사가 이어졌고 사건 발생일 오후, 카센터에서 멀리 떨어진 저수지 근처에서 혈흔이 있는 여성용 점퍼와 목부분에 구멍이 난 트레이닝복 상의가 발견됐다. 확인결과 카센터 여주인 강씨의 것이었다. 경찰은 일대를 수색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하다가 8일 뒤 옷이 발견된 지점에서 1.5km 떨어진 교각 공사현장에서 카센터 여주인의 시신을 찾았다.
 
발견 당시 시신의 부패상태가 심각해 사인을 측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강씨의 목에는 예리한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경찰의 수사가 이어졌지만 범인을 붙잡을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문점은 한밤중에 카센터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냐는 것이다. 사건 발생 뒤, 경찰에 제보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들 중 범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건 당시 카센터 옆의 카오디오 가게에 있던 가게 주인과 그의 동생은 카센터에 누군가 찾아와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증언했다. 불에 탄 정씨의 아들도 카센터 앞에 낯선 사람들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남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드문 경우기 때문에, 매우 중대하거나 시급한 일을 따지거나 추궁하기 위해서 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들이 처음부터 살인을 목적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만약 이들이 카센터 여주인 강씨를 죽일 목적이었다면 떼로 몰려오진 않았을 것이며, 농기계 가게 여주인 정씨까지 카센터로 부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당시 집에 카센터 주인이 낚시를 가고 없는 틈을 타 카센터에 왔다는 것.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카센터 여주인 강씨를 살해하고, 이를 목격한 농기계 가게 여주인 정씨도 제거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설명이었다.
 
이후 최면을 통해 농기계 가게 주인의 아들은 늦은 밤 방문객들이 4∼5명, 40∼50대, 정장 차림의 남녀였다고 진술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가족이나 친구라기보다는 종교 관계로 아는 자들이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놨다. 죽은 강씨와 정씨는 실제로 사생활이 깨끗한 편으로 집과 가게, 교회만 다니던 사람들이었다는 게 주변인들의 증언이었기에, 이러한 가능성이 제기됐다.
 
늦은 밤 수상한 사람들 서성
40∼50대 남녀…실체는 미궁
 
그런데 정씨의 거짓말도 의문이다. 정씨는 자정이 넘어서 카센터 여주인 강씨의 전화를 받고 나가면서 카센터 주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했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했던 걸까. 정씨가 카센터 여주인 강씨와 그녀를 찾아온 방문객들의 일에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즉 방문객들은 애초에 정씨와 강씨 둘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다. 가족들에게는 알리기 곤란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한 것은, 카센터 여주인 강씨의 시체가 발견되고 4시간 뒤, 한 편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범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에는 ‘농기계 가게 여주인 때문에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카센터의 화재는 농기계 가게 여주인의 죄책감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이며 사건의 원인은 카센터 여주인과 농기계 가게 여주인이 자신을 두고 사랑을 한 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주장이었다. 또한 자신은 시신을 나른 죄밖에 없다고도 적혀 있었다.

의문의 편지 한통
 
이 편지의 신빙성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편지 자체가 범인의 정체를 파악할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중요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편지를 쓴 목적이 용의주도하고 사건 수사의 방향에 혼선을 주기 위한 장치로, 마치 치정 싸움으로 벌어진 것처럼 몰고 갔다는 것.
 
게다가 편지는 묘하게도 농기계 가게 여주인 강씨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남자 1명과 여자 1명의 몽타주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의문의 방문객들의 실체는 미궁 속이다. 이후 2011년 12월, 충남경찰청에서 장기미제사건 전담팀을 만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됐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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