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없는 CJ그룹 위기론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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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없는 CJ그룹 위기론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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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를 탄 채 법원 출석하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수장 부재’재계 15위 기업이 흔들린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회장님 없는 상황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CJ그룹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룹 주요계열사의 지난 2분기 실적은 적자를 기록하거나 이익이 크게 감소했고, 미래 비전이나 신사업 추진이 올스톱 된 상황이다.

  

이재현 CJ그룹에 대한 '징역 4년, 벌금 260억원'이라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이 내려진지 6개월이 지난 8월14일, 항소심 결심 공판이 열렸다. 환자복 차림의 이 회장은 휠체어에 앉아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 그룹 임원들과 함께 10여분 일찍 공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도 잃고
명예도 잃고

지난 1년간 이 회장은 너무나도 나약해져 있었다. 지난해 5월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에 따라 재벌기업에 대대적인 칼바람이 몰아쳤고 CJ그룹도 타깃이 됐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중·후분 조성한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운용하면서 조세포탈·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 수감됐다. 이 회장은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지난해 8월 신장이식수술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신청,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은 이 회장은 법원이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지난 4월 서울구치소로 복귀했다. 이후 다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이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변호인은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치의 의견에 따라 지난 22일 만료된 구속집행정지 연장을 다시 신청했다.

이날 공판장에 나타난 이 회장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은 그의 상태를 대변했다. 환자복 아래로 드러난 하체 종아리는 뼈만 남아 있는 앙상함 그 자체였다. 60kg이 넘던 몸무게는 수술 후 50kg 안팎으로 줄었다.

이 회장은 지난해 8월 부인 김희재 여사로부터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나빠져 구치소와 병원을 오가며 치료와 재판을 병행해 왔다. 이 회장은 희귀유전병(CMT)과 말기신부전증, 고혈압, 고지혈증 등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다.

회장 수감 사이 그룹 날개 없는 추락
미래 비전·신사업 추진 전면 올스톱

이 회장이 앓고 있는 유전병은 '샤르코-마리-투스병'이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손발의 근육이 점점 약해져 심하면 걷지도 못하게 되는 희귀질환이다. 지난해 이 회장이 검찰 출석을 할 때 구부정하게 걷거나 특수신발 등 보조기구를 이용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이 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CMT의 근본치료법은 없다. 증상을 완화할 수 있을 뿐이다. 심해지면 근육 변형을 교정하는 수술을 한다. 인구 10만명당 36명 꼴로 발생하며 50대를 넘어서 급격히 악화된다.

만성신부전증도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이 회장의 신장 기능은 정상인보다 기능이 10% 이하로 감소한 상태. 그는 신장 이식 수술 후 고용량 면역 억제 치료를 받고 있어 감염 위험이 높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또 94년 처음 고혈압을 확인하고 97년에는 뇌경색이 발생해 뇌졸중 판정을 받은 후 약물치료를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신상 이식 수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는 이 회장의 유전병을 악화시켰고 이날 재판에 참석해기 위해서도 이 회장은 면역제와 신경안정제를 투여 받았다. CMT병은 루게릭병의 일종으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면 무릎과 팔꿈치부터 신경과 근육이 퇴화되는 병으로 손발을 못 쓰게 돼 결국 앉은뱅이가 된다.

이 회장의 변호인은 "이 회장이 이식받은 신장의 수명은 10년 정도인데 거부반응으로 인해 수명은 더 단축됐을 것"이라며 "이 회장은 사실상 10년 미만의 시한부 생을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회장님 아프니
그룹도 아프다

이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제 불찰이며,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라며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제가 시작한 문화 사업을 포함한 CJ의 미완성 사업들을 반드시 세계적인 글로벌 생활 문화 기업으로 완성시키려 합니다. 이것이 길지 않은 저의 짧은 여생을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앞서 재판부에 자필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최후진술이 끝나자 이 회장의 부인 김희재 여사와 CJ그룹 임직원들 일부는 눈물을 글썽였다. 재판 종료 후에는 이 회장이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 이재현 CJ그룹 회장

검찰은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의 지시를 받아 해외 비자금 조성 업무를 총괄한 혐의를 받고 있는 CJ 홍콩법인장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1100억원이, 범행에 가담한 성용준 CJ제일제당 부사장, 배형찬 전 CJ재팬 대표, 하대중 전 CJ 대표에게는 각각 징역 3년 등이 구형됐다.

검찰은 "회사를 투명하고 건전하게 운영해야 할 이 회장이 세금을 포탈하고 회삿돈을 횡령한 만큼 엄히 벌해야 한다"며 구형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또 "CJ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으로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고 경제에 기여한 바는 크지만 대한민국이 없으면 CJ도 없고, 대한민국의 존립 근거는 국내에 납부하는 세금에 있다"며 "최근 인기를 끈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고 말하며 왜구를 물리치러 나갔던 것처럼 물질보다는 건전한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 회장의 변호인은 이번 항소심의 핵심 쟁점이던 603억원의 부외자금 횡령 혐의와 관련해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비자금 조성 자체로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고 사적 용도로 썼을 때만 횡령죄가 된다"며 "이 사건 비자금은 모두 지원의 격려금 등 공적 용도로 사용한 만큼 이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은 부외자금 사용처에 대해 아무런 입증을 못했다"며 "원심은 검찰 주장에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용됐는지 전혀 심리하지 않고 유죄를 선고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또 "포탈 세액을 모두 납부했고 부외자금 횡령 부분은 유무죄를 다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액 변제했다"며 "이 사건과 관련된 피해액을 모두 변제했고 경영권 확보를 위해 부득이하게 차명주식 거래를 했덤 점, 이 회장이 신장이식 수술 후 사실상 10년 미만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회장 측은 1심에서 포탈 세액을 전액 변제한데 이어 부외자금 횡령액 603억원에 대해서도 모두 변제했다. 서울형사고법은 다음달 4일 항소심 선고를 내린다.

1년 새 급격하게 악화된 이 회장의 모습은 CJ그룹의 현 상황과 투영된다. 비슷한 시기 검찰 수사를 받은 최태원의 SK그룹과 김승연의 한화그룹은 비교적 오너리스크가 덜했지만 그룹 전체가 '1인 독주 체제'로 이뤄진 CJ그룹의 사정은 달랐다. CJ그룹은 이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 6명이 4개 상장계열사 주식을 1조6000억원 가량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98%를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어 1인 경영체제가 확고하다.

이 회장의 경영공백은 고스란히 CJ의 실적악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28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목표인 30조원 달성에 실패했다. 영업이익 목표치는 1조6000억원이었으나 70%(1조1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그룹에 대한 투자도 줄었다. CJ그룹은 2010년(1조3200억원), 2011년(1조7000억원), 2012년(2조9000억원) 등 해마다 투자 규모를 늘려왔다.

특히 2012년에는 문화 사업 글로벌 진출 확대 의지에 따라 당초 계획보다 20%를 초과한 투자를 했다. 하지만 지난해 투자금액은 계획대비 20% 줄어든 2조6000억원에 머물렀다. 올해는 그보다 20% 더 줄어든 2조원을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력계열사인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3.9% 감소했다. 상반기 실적도 전년 대비 제자리 걸음을 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3조5635억원으로 0.1% 소폭 줄었다.

영업이익은 1857억원으로 2.1% 감소했다. CJ제일제당 생물자원사업부문은 베트남과 중국 업체를 대상으로 인수·합병(M&A)를 추진했지만 최종 인수 전 단계에서 중단됐다.

CJ푸드빌도 실적 악화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드 DWJDQB 구제 영향으로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린 탓이다. 지난해 매출은 10.8% 향상된 9478억원을 기록했지만 124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 지난 5년간 손실만 239억원에 달한다.

자회사 중 지난해 수익을 거둔 곳은 CJ엔씨티와 미국법인 뚜레쥬르 인터내셔널이 유일하다. CJ베이징베이커리는 98억원의 적자를, CJ베이커리베트남은 57억원의 적자를, CJ푸드빌USA는 55억원의 적자를 냈다.

'1인 독주체제'
마땅한 대안 없다

대대적인 브랜드 철수도 이어졌다. 씨푸드오션, 피셔스마켓 브랜드가 폐점했고 루고커리는 본사 푸드월드점을 제외하고 모든 점포를 정리 중이다. 비비고 1호점인 광화문점도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식자재유통·급식기업인 CJ프레시웨이도 지난해 외식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아 영업이익이 대폭 악화됐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84억9800만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68.1% 감소했으며 같은기간 매출액은 1조8769억원으로 0.2% 증가했지만 당기순손실은 141억8000만원으로 적자전환했다.

CJ프레시웨이와 CJ CGV, CJ대한통운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68.1%, 6.7%, 55.1% 줄어드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1월 충청지역에 물류 터미널 거점 마련을 위해 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의사 결정이 미뤄지면서 계획 추진이 보류됐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하반기에도 미국과 인도 물류업체 인수를 추진하다 협상단계에서 계획을 미룬 바 있다.

CJ CGV의 해외 극장사업 투자 역시 지연되고 있으며 CJ오쇼핑의 해외 M&A를 통한 사업 확대 계획도 거듭 연기되고 있다.

징역 5년에 벌금 1100억원 구형
"살고 싶다" 재판부에 선처호소

CJ그룹이 야심차게 기획하고 시작한 인천 굴업도 관광단지내 골프장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됐다. 2009년 인천 서해 굴업도에 골프장과 관광호텔, 콘도미니엄 등이 포함된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을 추진 중이었다.

총 예상 투자비는 3500억원으로 CJ 측은 연간 20만명의 관광객, 56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 2만여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골프장 건설로 인한 환경 훼손을 우려한 환경단체의 반대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CJ그룹 측은 "골프장을 포기하는 대신 환경친화적인 대안시설을 도입해 관광단지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핵심 수익시설인 골프장 건설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관광단지 개발 자체가 불투명해졌다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한국판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관심을 모았던 동부산관광단지 영상테마파크 사업도 포기했다. 2500억원이 들어가는 건설 투자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지 내 상업시설을 아울렛 사업자에게 임대하려고 했지만 부산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불거지면서 결국 협약을 해지하고 철수한 것이다.

경기도 광주시에 착공 예정이던 수도원택배허브터미널 사업은 무기한 연기했다. 공사비 1500억원, 총 3000억원 규모의 대형 사업으로 하루 130만 상자를 처리해 '수도권 하루 2배송'을 실현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아직 어린 자녀
승계 시기상조

마땅한 대책도 없다. 올해 초부터 이 회장의 삼촌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필두로 '그룹경영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여전히 CJ그룹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마땅한 '포스트 이재현'도 없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그간 CJ E&M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관련 분야만 이끌어온 이 부회장은 부적절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장녀 경후씨와 장남 선호씨 등 이재현 2세가 있긴 하지만 둘 다 20대로 어린데다가 각각 2011년 2013년 그룹에 발을 들이는 등 아직 승계는 시기상조라는 시선이 많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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