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거짓말 총정리

한국뉴스

<정윤회 문건 파동> 드러난 거짓말 총정리

일요시사 0 865 0 0
▲ 지난 10일, 정윤회씨가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는 도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일요시사 DB>

궁지에 몰릴 때마다 거짓부렁으로 넘겼나?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윤회 문건 파동’의 후폭풍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의혹의 당사자인 정윤회씨가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해 검찰조사까지 받았으나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일요시사>는 ‘정윤회 문건 파동’ 와중에 드러난 관련자들의 거짓말을 되짚어봤다. 그들의 거짓말을 ?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실에 다가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윤회씨가 박근혜정부의 비선실세로 군림해왔다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의 후폭풍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28일 <세계일보>가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문건을 공개하고 정씨를 비롯해 청와대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 등 이른바 십상시가 정기적으로 만나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등을 논의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십상시
실체는?

하지만 검찰은 십상시로 지목된 인물들의 통화기록과 그들이 주로 모였다는 강남 J중식당의 CCTV, 카드결제 내역 등을 살펴본 결과 문건 자체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미 국정개입 의혹의 실체는 없다는 결론을 내부적으로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은 정씨가 검찰에 출두하며 한 말처럼 ‘누군가의 불장난’이었을 뿐일까? <일요시사>는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정윤회 문건 파동 와중에 드러난 관련자들의 거짓말을 되짚어봤다.

우선 사건의 당사자인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그만 둔 뒤 야인으로 살고 있고. 그 후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청와대 비서관들과 한 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청와대 접촉 안 했다더니, 통화 시인
서면 보고 없었다더니, 보고 후 묵살

하지만 정씨가 이런 입장을 밝힌 뒤 이틀 만에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정씨와 이재만 비서관이 통화를 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정씨는 말을 바꿨다. 정씨는 자신을 음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화를 했을 뿐이고 사적인 모임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 박근혜 대통령 <사진=일요시사 DB>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씨가 정말 오래 전에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난 사람이라면 이렇게 쉽게 청와대 비서관들과 통화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정씨가 여전히 대통령 주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씨가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난 시점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정씨에 대해 2004년 이후 전혀 교류가 없었다고 주장해왔지만, 정작 정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2007년 대선 때 정치인 박근혜의 10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7년간 야인으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과 정씨의 주장을 비교해보면 두 사람의 정치적 결별 시점이 무려 3년이나 차이가 난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때문에 2007년 대선경선 당시 정씨가 ‘삼성동팀’을 만들어 물밑에서 박 대통령을 도왔었다는 루머가 새삼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삼성동팀
새삼 재조명

박 대통령과 정씨가 만났다는 시점도 두 사람 간 다소 차이가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98년 보궐선거 때 정씨가 돕겠다고 해서 그를 기용했다고 했고, 정씨는 지난 1997년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이후 정씨와 교류가 없었다고 했는데 정씨는 대선이 끝나고 박 대통령이 감사 전화를 걸어왔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은 무려 10년 전 자신의 곁을 떠난 전직 비서실장에게 대선이 끝난 후 고맙다고 전화를 한 것이 된다.

정치권 인사들은 이 또한 일반적인 정치인과 보좌진의 관계로 볼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은 이에 대해 “(대선 끝나고) 감사 전화 받은 사람이 몇 명 안 된다”며 “(정씨가) 그 안에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 지난 10일,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는 정윤회씨 <사진=일요시사 DB>

 이번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이번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박관천 경정은 검찰조사에서 ‘믿을만한 제보자’의 첩보를 바탕으로 문건을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경정의 통화내역 등을 확인해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유력한 제보자로 파악하고 조사했다. 

그런데 박 전 청장은 당초 자신이 박 경정에게 이러한 내용을 제보해줬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지만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박 경정에게 그런 제보를 한 적이 없다며 말을 바꿨다. 이외에도 박 경정은 자신의 상사인 조 전 비서관에게 박 전 청장이 ‘십상시’ 모임에도 참석했던 인물이라고 보고했지만 박 전 청장은 “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검찰에 따르면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은 검찰조사에서 ‘박 전 청장이 비밀회동의 스폰서처럼 식사비를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박 전 청장이 이번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키맨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박 전 청장은 검찰 조사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박 전 청장은 조사 때마다 진술을 매번 바꾸면서 그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당초 ‘정윤회 동향 문건’과 구두보고만 받았다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실제로는 문건도 함께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 전 비서관은 검찰수사에서 “홍경식 민정수석이 ‘김 실장과 관련된 얘기니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해 직접 보고도 하고 보고서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도 ‘조 전 비서관이 정윤회 문건을 직접 들고 대면보고를 했다는 뜻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찌라시 수준의 정보라서 묵살했다’는 청와대의 입장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서면보고까지 받았다면 문건의 내용으로 볼 때 당연히 후속조사가 이뤄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검찰조사에서 “김기춘 실장이 수고했다면서 자신은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진술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김 실장이 정씨의 국정개입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방관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승마 국가대표 선발 논란’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와 뒤이은 담당공무원의 교체에 정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한 진실공방도 치열하다. 지난해 이 같은 논란이 벌어졌을 때 청와대와 정부는 전혀 사실무근의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지만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장관은 최근 언론을 통해 박 대통령이 당시 자신을 직접 불러 국·과장의 교체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대통령과 유 전 장관 중 한 사람은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유 전 장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청와대 집무실로 유 전 장관을 불러 문체부 노 아무개 국장과 진 아무개 과장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교체를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교체된 두 사람은 승마선수인 정씨의 딸과 관련해 승마협회 비리 의혹 감사를 실시했던 인물들이다.

인사개입?
정당한 인사?

검찰의 거짓말도 눈에 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이른바 십상시로 지목된 인물들의 통신기록을 최근 1년치밖에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법상 통신사업자들은 통상적으로 최근 1년치의 기록만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올해 1월부터 청와대에서 정씨의 동향보고 문건이 보고 돼 문제가 됐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이후로 서로 통화를 하거나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고작 지난해 12월 한 달치 기록뿐이다. 




▲ 지난 10일,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는 정윤회씨 <사진=일요시사 DB>

그런데 지난해 12월 역시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아 청와대와 정부에 비상이 걸렸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중간에 모임을 가질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검찰이 확보한 통신기록은 십상시의 무죄를 밝혀줄 결정적 증거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적인 소견이다.

비서실장 그만 둔 시점도 주장 달라
섣불리 사건 묻으려다 간 역풍 불 것

검찰 또한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그동안 여러 차례 통신기록이 이번 사건의 가장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라며, 통신기록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문건의 신빙성도 떨어진다는 식의 언론플레이를 해왔다.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의도적인 언론플레이가 아니었냐는 의혹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정윤회씨가 지난 8월 독도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했던 정황도 의심스럽다. 정씨는 해당 콘서트에 참석한 이유에 대해 “임산이라는 사람이 옛날부터 알던 친구고, 자기가 행사 하는 데 가서 바람이나 쐬자고 해서 갔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결정적 증거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임산씨는 지난 2007년부터 호박가족의 대표로 활동해왔던 인물이고 해당 콘서트엔 매년 호박가족 회원들이 참여해왔다. 정씨는 이날 행사에 참석하면서 정윤기라는 가명을 썼는데 가명을 쓴 것도 모자라 정윤기라는 이름의 명함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람이나 쐬자는 취지로 음악회에 참석하면서 가명의 명함까지 준비한 것은 다소 이상해 보인다.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예상대로 문건 진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신빙성 없음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하지만 사건이 진행되면서 드러난 수많은 거짓말로 청와대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검찰이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해서 섣불리 문건을 허위로 단정하고 파문을 봉합하려고 하다가는 더 큰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mi737@ilyosisa.co.kr>

<저작권자 ©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