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19)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한국뉴스

<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19)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일요시사 0 1409 0 0
▲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돈도 사랑도 건강도 잃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0화를 앞두고 서울시 밖의 체납자를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19화는 '황제노역'의 주인공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다.

2013년 말 광주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 맨 꼭대기에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있었다. 그는 2009년 9월부터 주민세 등 모두 20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한 지방세는 13억2000만원이었다.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도 '허재호'의 이름이 있었다. 그는 2008년부터 양도소득세 등 2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밀린 국세는 119억3700만원이었다.

광주시 체납왕

허 전 회장은 이때만 해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뉴질랜드로 피신해 사업을 확장해도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문제가 없던 인물은 아니었다. 허 전 회장이 남긴 여러 형태의 채무가 대한민국 곳곳에 남아 있었다.

허 전 회장의 회사로 알려진 지에스건설㈜은 광주에서 고액체납법인 1위를 차지했다. 체납액은 14억5200만원으로 2009년부터 주민세 등 9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지에스건설㈜은 같은 해부터 종합부동산세도 체납했다.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은 30억7800만원이었다.

아파트 분양 사업을 벌였던 경기도에서는 지방세 수백억원을 체납했다. 경기도 용인시는 지에스건설㈜에 205억원을 과세했다. 앞서 허 전 회장은 지방세의 2배가 넘는 배상금을 분양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최근 이들은 허 전 회장을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으나 시간이 흘러 검찰의 수사 의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뿐만 아니라 허 전 회장은 전남 목포와 순천, 경북 구미, 충북 청주 등에 세금을 체납했다. 주력회사인 대주건설의 체납 세금은 2000만∼5300만원씩이었다. 또 그는 부산에도 부동산을 매입한 뒤 6억원의 토지세를 내지 않아 고액체납자로 등재돼 있었다.

지난해 허 전 회장은 이른바 '황제 노역'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과세당국은 허 전 회장을 겨냥한 추징작업에 착수했다. 여기서 벌금과 세금은 다르다. 당시 검찰이 환수한 돈은 벌금일 뿐 세금은 아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허 전 회장은 노역으로 탕감 받은 벌금 30억원을 제외하고 남은 224억원을 분할 상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체납 세금은 환수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국세청은 2014년 기준 136억원의 세금을 받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양벌리 땅(7만562㎡)을 공매에 넘겼다. 이 땅은 원래 보산물산이 갖고 있던 땅으로 허 전 회장은 과거 해당 부동산에 70여억원을 투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상 관련 투자금은 채무로 잡혀 있었다. 이를 확인한 국세청은 소송 끝에 토지의 실소유주가 허 전 회장임을 밝혀냈다.

지에스·대주건설·보산물산 수백억 체납
땅·건물·미술품·주식 등 숨겨둔 재산 다양

경매에 넘어간 '오포 땅'은 2014년 5월 한 건설업자가 181억원에 낙찰 받았다. 그러나 낙찰권자가 입찰보증금의 10%를 납부한 뒤 잔금을 내지 않아 지난 1월 재경매에 들어갔다. 오포 땅의 1순위 채권자는 제1금융권인데 이미 4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해 놓아 국세청이 기대할 수 있는 세입은 181억원보다 낮은 상황이다.

국세청은 모자란 세입을 충당하기 위해 가족들로부터 압류한 미술품에 대한 공매 절차를 밟았다. 허재호 일가가 소유한 서양화 54점과 동양화 53점 등 모두 107점의 미술품이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위탁됐다.

하지만 압류 미술품 전체 감정가는 1억8000여만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온전히 팔리지 않아 기대했던 세입을 거둘 수 없었다. 국세청은 허 전 회장 소유로 전해진 광주의 한 빌딩과 관련해 우선순위 채권을 놓고 제1금융권과 소송을 벌이는 등 채권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광주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체납 세금 확보에 성공한 모습이다.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모씨와 공동으로 소유한 ㅇ사 주식에 일찌감치 가압류를 걸었고, 전남 일대의 땅과 광주 소재 일부 상가 등에 대해서도 공매를 진행해 세입을 늘렸다는 평가다.

광주시 체납팀 관계자는 "허 전 회장 소유 ㅇ사 주식 20%(평가액 25억원 추정)에 대해 압류조처를 했고, 그 밖의 재산에 대해서도 파악해 전체적으로 보면 올해 안에 체납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뒤따라 ㅇ사의 '주임종 단기차입금' 채권 100억여원에 대한 압류를 시도했다.

광주시가 알린 허 전 회장의 미납 지방세는 14억원 규모다. 지난해 4월 국세청은 허 전 회장이 보유한 78억원상당의 주식에 대해 양도세와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 바람에 광주시는 따로 받을 세금이 3억원 더 늘었다. 지난해 말 허 전 회장은 "시가 7억∼8억원을 받을 수 있는 상가가 있다"라며 "세금 징수를 늦춰 달라"라고 광주시 쪽에 요구했다.

허 전 회장의 자택은 공매에 나온 지 오래다. 현재 그는 친인척 집에 얹혀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와는 사이가 나빠져 금전적인 도움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엔 지병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을 만큼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 전 회장의 나이는 일흔셋으로 상당한 고령이다. 그렇지만 본인이 연루된 송사가 많아 몇 차례 소환조사를 받기도 했다.

허 전 회장의 한 지인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라며 "경영을 잘못해 채무가 거의 1조원에 이른다. 차명 재산이 있어도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허 전 회장 쪽의 말만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당장 2014년 광주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보면 맨 꼭대기에 남재희씨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남씨는 지방세 3억4100만원을 체납했고, 허 전 회장의 명의 신탁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세청 조사가 아니었다면 허 전 회장의 양도세 포탈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무당국 한 관계자는 "남씨가 옛날 대한화재해상보험 경영권 인수 과정에 이름을 빌려준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남씨가 대표로 있는 ㅅ사의 주식을 국가가 일부 확보하고 있고, 주당 가치가 100만원이 넘어 환수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닉재산 있나

검찰은 지난해 9월 국세청으로부터 허 전 회장의 양도세 포탈 사건을 넘겨받았다. 지난 2002년 남씨를 포함한 지인 5명의 명의를 빌려 신탁해둔 대한화재해상보험 주식을 2008∼2010년 매각하면서 양도소득세 6억4000만원을 내지 않았다는 혐의다.

이에 허 전 회장은 국세청의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차명 주식의 일부를 팔지 않고 증여했기 때문에 양도세가 5억원 이하라는 주장이다. 탈세한 양도세 금액이 5억원 이하면 공소시효가 5년으로 줄어든다. 조세심판원이 허 전 회장의 손을 들면 자연스레 2008년 있었던 사건은 사법 처벌을 할 수 없게 된다. 조세심판원의 판정은 올 상반기 내 마무리될 예정이다.

<angeli@ilyosisa.co.kr>

<저작권자 ©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