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수상한 국책사업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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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게이트> ⑥수상한 국책사업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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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일로 흥하고 나랏일로 망했다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평소 경제보다는 정치 인맥이 많았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정치상인’으로 통했다. 이에 충남ㆍ경남 지역의 중견 건설업체였던 경남기업이 전국 도급 순위 16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정치계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성 회장을 둘러싼 정치 로비 의혹과 경남기업의 국책사업에 대해 정리해봤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정경복합경영자로 평가 받아왔다. 대아건설 회장으로 지낸 1992년 민자당 재정위원을 지낸 데 이어 경남기업 인수 후 2014년 국회의원으로 지내기까지 성 회장은 정치와 비즈니스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경남기업의 사세 확장을 도모해왔다. 특히 한가람회, 충청포럼 등 정치계 모임의 핵심 인물로 참여하면서 정치권 인맥 쌓기에 힘썼으며, 수많은 로비 의혹도 받아왔다. 이에 성 회장은 기업인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정치상인’ ‘정치권 줄대기의 달인’으로 통했다.

정경 복합경영자
국책 낙찰률 98%

성 회장의 기업경영 마인드가 정경일치임이 드러난 건 민자당 재정위원으로 지낼 당시인 1992년 8월31일이다. 그날 오후 한준수 연기군수가 국회 민주당 원내총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권개입 부정 사례를 폭로한 것이다. 한 군수는 충남지사와 민자당 후보로부터 8500만원 상당의 선거자금을 받아왔다고 주장하며 수표 일부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조사 과정에서 수표 90여장의 일련번호를 조회해본 결과 대아건설이 발행한 수표임이 밝혀졌다. 1980년 전국 도급 순위 169위에 그쳤던 대전 지역 중소기업 대아건설이 1992년 전국 61위에 올라선 배경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국정감사에서도 대아건설이 1988년 이후 수주한 51건의 충남 발주관급공사의 낙찰률이 98.62%로 나타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낙찰 사업의 응찰가가 1만원 차이인 사업도 상당수인 것으로 조사돼 충남지사 선거 과정에서 비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성 회장의 한 지인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권력의 향방을 기막히게 읽고 ‘맨주먹 붉은 피’로 들이댄 사람이었다”며 “공직이나 정치권에서 뜨는 사람이 있으면 30∼40명씩 모아 성대한 축하연을 열어주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94년 대아건설은 서울 일부 지역의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며 서울로 무대를 확장했다. 당시 대아건설은 1996년까지 동작구 사당동의 3개 지역과 노원구 공릉동·월계동, 강서구 등촌동 재건축 사업의 시공사로 참여했으며 6구역재개발지구 참여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 회장은 1995년 한가람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김 비서실장은 1995년까지 한양대 법과대학원 겸임교수로 지내다 1996년부터 한나라당 국회의원직을 맡았다. 성 회장이 정치 인맥을 맺기 위해 미리 김비서실장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성 회장이 2000년에 설립한 충청권 정치인과 관료 및 언론인의 모임 충청포럼도 정치권 인맥 쌓기를 통해 사세를 확장하고자 하는 성 회장의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당시 성 회장은 개인 비용을 투자해 롯데호텔에서 거물급 정치인들을 초청한 가운데 충청포럼 출범식을 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급순위 169위→14위로 급성장
‘정치상인’인맥 활용해 기업경영

성 회장이 신한국당 재정위원으로 지낼 당시인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에게 대전 민방 협조 명목으로 10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성 회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측근으로 알려졌으며, 김총리의 도움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인 2003년 8월 성 회장은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경남기업을 인수하고 이듬해인 2004년 대아건설 등과 합병해 통합법인 경남기업을 출범시킨다. 경남기업 인수전에 보성건설, 금광기업 등 5~6개 기업이 뛰어들어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기도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중소기업인 대아건설이 경남기업을 인수한 데에 대해 “다윗이 골리앗을 삼켰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2004년 성 회장은 노무현 후보 캠프에 3억원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이회창 후보 캠프에도 거액이 제공됐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사실 유무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총선 직전 비례대표 당선권 보장을 전제로 자유민주연합에 정치자금 16억원 전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성 회장은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지만 특별사면으로 1년형의 징역에 그쳤다.

참여정부의 도움
대기업으로 성장

2004년 당시 경남기업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부터 996억1800만원 사업비의 토당-원당 도로(고양시대체우회도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1000억830만원 사업비의 오리-수원복선전철4공구 사업의 시공사로 참여했다. 또한 대전지방국토관리청, 한국철도시설공단, 농업기반공사 등 한 해 동안 3616만2200만원 상당의 토목사업을 진행했다. 전년 대비 72.25%의 사업을 확보했다. 

경남기업이 노무현정부 때인 지난 2005년 러시아 캄차카반도 석유탐사 사업으로 석유공사에서 260억원의 성공불융자금을 지원받았다. 정부로부터 받은 성공불융자 전체 330억원 중 상당 금액이 노무현정부 때 집중돼 있어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개발과 멕시코만 가스탐사 사업에 나서면서 70여억원의 추가 성공불융자를 받았다. 경남기업이 공물자원공사로부터 받은 일반융자금은 130억원이다.

성공불융자는 정부가 위험도가 높은 사업을 하려는 기업에 필요자금을 빌려주고 사업이 실패하면 융자금 전액을 감면해주고, 성공할 때는 원리금 외에 특별부담금을 추가 징수하는 제도다. 경남기업의 캄차카반도 석유탐사 사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으로 알려져 정부예산 260억원은 사라진 셈이다.

경남기업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노무현정부 시절 사세가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매출액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경남기업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매출액은 2003년 4888억8305만원, 2004년 6153억8639만원, 2005년에는 9061억8670만원, 2006년 9617억1227만원, 2007년 1조2890억7194만원으로 2004년보다 2배 이상 급성장했다.

반면 이명박정부 출범 당시인 2008년에는 매출액이 1조7624억1400만원으로 출발이 좋았으나 2009년 1조7103억5648만원, 2010년 1조5962억5237만원, 2011년 1조4156억9587만원, 2012년 1조1345억2846만원으로 꾸준히 하락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는 7492억568만원으로 급락하고 만다.

MB정부 이후
매출 급락

2007년 11월 성 회장은 행담도 개발 사업의 시공권을 받는 조건으로 김재복 사장에게 120억원을 빌려준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징역 1개월 만인 2008년 1월 노무현정부로부터 특별사면 대상으로 선정돼 석방됐다. 이로써 성 회장은 노무현정부로부터 두 번째 특별사면 대상자로 지정됐다.

2007년 경남기업은 베트남 하노이에 주상복합타운 랜드마크72(사업비 1조370억700만원)을 건립한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8년 국제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남기업은 2009년 5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채권단에 신청하기에 이른다. 경남기업은 당초 예상한 워크아웃 극복시기인 2012년 6월에 워크아웃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굵직한 국책사업의 시공사 및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1년 앞당긴다.

최근 랜드마크72에 정관계 인사 수백명이 다녀갔다는 현지 직원의 증언이 나오면서 성 회장의 로비 장소로 활용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남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성 회장이 생전 명절 기간에만 랜드마크72에 머물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지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수백명의 정관계 인사가 성 회장과 식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남기업은 2008년 대규모 국책사업을 맡는다. 한국토지공사로부터 수주 받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관련 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참여정부와의 긴밀한 관계가 형성됐을 개연성이 엿보인다. 사업비 1325억2900만원 규모의 행정중심복합도시1-2공구 사업과 사업비 400억5200만원 규모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우회도로 공사를 수주 받았다. 또한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로부터 서울지하철915ㆍ916공구 사업으로 1354억4800만원도 수주 받았으며 용인지방공사의 광교택지개발지구A23블록주택건설공사, 대전지방국토관리청 청양-홍성고속도로, 한국철도시설공단 경부고철10-1공구 노반공사, 환경관리공단의 광양시 광양읍 하수관거정비공사 사업도 진행했다.

정권 도움으로 성장
정권에 찍혀 급추락

반면 이명박정부 당시인 2009년 경남기업의 국책사업 규모도 현저하게 줄어든 양상이다. 2008년 1조5930억8800만원에서 2009년 5705억200만원으로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 당시 경남기업은 민간도급건축 사업도 없었다. 2010년 1조331억7800만원 규모의 13개 국책사업을 맡았지만 경남기업은 2011년 두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지난 8일 성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 “나는 MB맨이 아니다. MB 정부의 피해자가 MB맨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중앙일보>와 JTBC가 공개한 성 회장의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2013년 9월3일 김전수 전 금융감독원 기업금융개선국장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만났으며, 9월13일에는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을 만났다고 기록돼 있다. 경남기업이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한 날짜가 10월29일인 점을 미루어 볼 때 차입금 상환 연장을 요청하기 위해 정관계 인사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성 회장은 2012년 11월 선진통일당 원내대표를 지낸 후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30년 로비인생
성공 VS 실패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경남기업의 도급 순위를 살펴보면 1981년 169위에서 1991년 72위으로 급성장한 데 이어 2006년 16위의 자리에 앉는다. 2013년까지 꾸준히 20위권 내에 머물다가 지난해 26위로 하락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200만원으로 건설 사업을 시작한 성 회장이 대아건설을 2조원대의 대기업 경남기업으로 성장시킨 데는 정치권의 인맥 쌓기와 로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수많은 정치 자금 로비 의혹을 남긴 성 회장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정치상인으로 자수성가한 성 회장의 30년 로비인생의 결말을 두고 과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방 중소기업 건설사를 대기업으로 사세 확장한 그의 비즈니스는 실패했다고 평가해야 할까?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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