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사고 직후' 예비군 훈련 받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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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총기사고 직후' 예비군 훈련 받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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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서 훈련하고 낮잠 ‘쿨쿨∼’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예비군 총기사고가 일어난 뒤 전국의 수많은 예비군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나 5월은 예비군 훈련이 집중돼 있는 시기라 더 그랬다. 일부 예비군들은 불안함에 훈련 일정을 뒤로 미루기도 했다. 실제로 예비군동대는 요즘 전화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그렇다고 예비군 훈련을 계속 미룰 수는 없는 법. 결코 피할 수 없는 예비군 훈련의 실상을 전한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나 3명이 사망했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예비군 창설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충격적인 사고 후 예비군 훈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급증했다.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훈련을 앞둔 일부 예비군들은 예비군동대에 전화를 걸어 훈련을 연기하거나 사격훈련 실시 여부를 묻기도 했다.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자 국방부는 예비군 훈련장의 사격훈련 개선 대책 기구를 본격적으로 가동해 안전대책 마련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총기사고 전후 예비군 훈련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신 못 차리고… 

지난 19일 <일요시사>는 6시간 향방작계훈련이 실시되는 경기도의 한 예비군 훈련장을 찾았다. 위병소를 지나 언덕에 오르자 조교들이 예비군들을 맞이했다. 훈련 예정 시간은 오전 9시였지만 한 시간 전인 8시에 이미 많은 예비군들이 입소해 대기 중이었다. ‘개구리마크’가 새겨진 전투모를 얼굴에 올려놓고 벤치에 누워서 단잠을 청하는 이도 있었다.

9시가 가까워지자 육·해·공·해병대 예비역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소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집으로 돌려보내 불참처리를 했지만 융통성을 발휘해 지각한 예비군들 전원을 훈련에 참가시켰다. 강당 교회의자에 착석한 예비군들은 웅성댔다.

“오늘 사격할까요?” “조기퇴소 가능하겠죠?”. 9시30분쯤 예비군 대대장이 마이크를 집어 들고 “6시간 향방작계훈련 전반기 기본교육이기 때문에 개인화기사격은 없다”며 예비군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보통 3∼4시에 퇴소조치를 하지만 오늘 여러분들이 훈련에 성실히 임해준다면 1∼2시간 앞당겨 전원 조기퇴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예비군 부대 한 관계자는 “휴대폰을 따로 걷지 않겠다”며 “진동모드를 유지하고 업무상 필요 시 보고 후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대장에게 신고하는 입소식은 생략됐다. 예비군 부대 관계자들의 간단한 훈련 안내를 끝으로 10시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은 자율 참여형태로 실시됐다. 예비군들이 입소한 순서대로 10명이 한 조를 편성해 자율적으로 훈련과제를 선택했다. 보통 훈련은 사격, 시가지 전투, 안보 교육, 병 기본 훈련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날 사격은 포함되지 않았다.

휴대폰 걷지 않고 오전에 과업 종료
“사고후 더 편해졌다” 참가자들 평가

기자가 속한 분대는 우선 10시부터 11시까지 강당에서 안보 교육 등 예비군이 숙지해야할 기본 교육을 받았다. 이른 아침부터 전투복을 챙겨 입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예비군들은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교관이 일어나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예비군들의 피로감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짧고도 긴 1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분대장은 훈련을 통과했다는 도장을 교관에게 받았다. 11시부터는 실외로 나가 자율적으로 훈련 순서를 정했다. 분대장은 “다음은 어떤 훈련을 받을까요?”라며 분대원들에게 의견을 구했지만 분대원들은 “그냥 아무거나 빨리 하자”며 가까운 교장으로 향했다.

이후 시가지 전투, 각종 병 기본 훈련 등을 통과하며 총 4개의 도장을 받았다. 점심 식사 30분 전인 11시30분에 모든 훈련이 종료됐다. 분대마다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오전에 도장을 다 받았다.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갖고 점심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예비군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러 넘쳤다. 식사 뒤 PX 앞은 발디딜 틈 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예비군들은 자율적으로 장구류를 반납하고 자신의 전투모 등 개인 물품을 가지고 처음 집결 장소인 강당으로 향했다. 너무 자율적인 분위기여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몇몇 예비군은 “교관 지시 없이 우리가 알아서 장구류를 두고 나와도 되냐”며 서로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사실상 훈련은 오전 10시부터 11시30분까지, 1시간30분 가량 진행된 셈이다. 11시30분부터 2시까지는 강당에서 엎드려 자거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2시가 지나자 교관들이 예비군 퇴소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예비군 대대장은 퇴소식을 생략한 채 “바쁘신 가운데 훈련에 성실히 임해줘서 고맙다”며 “평소보다 일찍 보내 드리겠다”고 말했다. 예비군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느슨한 프로그램

예비군 훈련장에 부득이하게 일찍 도착해 얼떨결에 분대장을 맡았던 예비군 3년 차 김모(25)씨는 “얼마 전 총기사고가 일어나 FM(야전교범)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전보다 편하게 진행됐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내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예비군 훈련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마무리됐다. 훈련을 받은 예비군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예비군 훈련 특유의 느슨한 훈련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현역 복무를 마친 장병들은 모두 예비군이 된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예비군은 총 270여만명이다. 예비군 훈련은 3월부터 11월까지 실시하며 동원훈련, 동미참훈련, 향방기본훈련, 향방작계훈련, 소집점검훈련 등이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땜방식’ 예비군 개선책 보니…

국방부가 예비군 총기사고에 대해 변명과 면피성 대책 발표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15일 예정에 없던 ‘예비군 훈련 총기사고 재발방지 안전대책’을 내놨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안전대책 세우기 전까지 예비군 훈련 전면 중단하라”며 국방부를 질타한 바 있다.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는 ‘예비군 훈련 총기사고 재발방지 안전대책’을 내놓으면서 ‘우선 조치상황’과 ‘추가 검토사항’ 등의 내용을 담았다. 특히 ‘추가 검토사항’엔 통제관에게 방탄복과 실탄을 부여하고 현역복무결과를 예비군 부대에 연동하는 방안 등 파격적인 내용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이후 군이 해당 내용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문제는 이미 보도가 된 상태에서 국방부가 말을 바꾼 것이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추가 검토사항은 ‘아이디어 차원’으로 실행 여부는 예산과 가능 여부를 TF에서 검토한 후 확정한다”고 말했다. ‘추가 검토사항’이 실행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퇴로’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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