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닮은' 생사불명 도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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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닮은' 생사불명 도망자들

일요시사 0 1029 0 0
▲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사진=SBS 보도화면 캡처>

"돈만 있으면 잡히지 않는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둘러싼 온갖 미스터리가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위장사망 의혹이 재점화되고 있다. 조희팔은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족들의 주장대로 무덤에 묻힌 것일까. 조희팔처럼 해외로 도피한 뒤 행방불명된 '도망자들'의 사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의 주인공, 조희팔과 관련한 미스터리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조희팔을 둘러싼 여러 미스터리 가운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부분은 위장사망 의혹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12년 5월 중국 공안으로부터 전달 받은 서류를 근거로 조희팔이 2011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사기꾼 조희팔
살았나 죽었나

각종 매체를 중심으로 조희팔의 생존 가능성이 부각되자 경찰도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지난 13일 오전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도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할 만한 과학적 증거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강 청장은 "경찰이 별도 수사인력을 붙여 확인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강 청장은 "살아있다면 주변 발언, 중국 측의 첩보 등으로 어떻게든 생존반응이 감지 됐을 텐데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라고 부실 수사 의혹을 해명했다. "조희팔을 목격했다"라는 일부 제보자의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번 조희팔 수사의 '키맨'으로 꼽히는 배상혁(구속)씨 역시 "조희팔의 생사 여부를 모른다"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배씨는 "2008년 10월 말 회식자리에서 조희팔을 만난 뒤 현재까지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라고 진술했다.

조희팔은 2008년 12월 측근들과 함께 중국으로 밀항했다. 경찰은 2009년 6월에야 인터폴과 공조해 적색수배를 내렸다.

이른바 '조희팔 생존설'은 2014년에도 사정기관 주변을 떠돌았다. 조희팔이 중국 산둥성에서 조직폭력배 출신인 한국인 사업가와 만났다는 등의 내용이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바실련)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제보를 축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팔 위장사망 여부 재점화
중국·필리핀·캄보디아서 목격담

각종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조희팔은 중국 또는 라오스에서 골프를 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위조여권을 제작해 필리핀, 캄보디아 등으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영렬 대구지방검찰청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공식 확인된 상황은 아니지만 조씨(조희팔)가 살아 있는 것을 전제로 수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 지검장의 이 같은 언급은 조희팔의 사망 여부를 우리 정부가 직접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외에 잠적한 도피사범을 찾아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팔처럼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혹은 용의자)가 정부 당국의 추적으로 검거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이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출국을 이유로 기소중지돼 있는 해외도피사범은 5503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경제사범의 비중은 57.2%(3148명)에 이르렀다.

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지난달 24일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해외도피를 이유로 징역형이 중지된 미집행자는 355명이었다. 도피사범은 각각 중국(97명), 필리핀(58명), 미국(40명), 태국(28명), 일본(19명), 호주(10명) 순으로 출국했다. 이밖에 인도네시아, 캐나다, 베트남, 몽골도 다수의 도피사범이 출국한 나라로 확인된다.

 


기자는 지난 8월 한 중견기업 회장의 해외도피를 도운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회장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뒤 도피생활에 필요했던 여러 편의를 제공한 인물이다. A씨의 증언을 요약한 해외도피 준비 과정은 다음과 같다.

도피자 5000명
행방 오리무중

먼저 해외도피를 위해선 현지 숙소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A씨가 수행한 회장은 미국 괌·뉴욕 등 여러 곳에 차명 오피스텔을 갖고 있었다. A씨는 "아마 다른 대기업 회장들도 다들 몇 채씩은 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이들 주거지를 단시간 내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조여권 등 도피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국내 협조자를 통해 공급받는다. 단 국내와 접촉이 어려운 경우는 현지에서 제작을 의뢰한다.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도피 협조자는 현지 영사관과 가까운 관계자들을 포섭해 정보를 얻는다.

도피자금은 해외 은행계좌에서 자유롭게 인출한다. 거액의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독이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차명계좌를 만들어 조금씩 예금을 저축해 놨기 때문에 급작스런 송금으로 당국의 추적을 받을 리 없다.

외출 시에는 변장을 통해 정체를 숨긴다. 가급적 외출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숙소에만 머무는 도피사범은 없다. 단 가족과 직접적인 통화는 금물이며, 제3자를 통해 접촉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설 병원을 알아두면 큰 도움을 받는다. 잠적도 용이할 뿐더러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를 근거로 각종 출입국 과정에서 신분 노출을 피할 수 있다. A씨는 의사의 협조를 얻어 입국 과정에서 회장을 이송할 구급차를 호출한 바 있다.

A씨는 "일단 해외로 나가면 잡힐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돈이 있으면 잡히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부분 돈이 떨어지는 시점에 일을 벌이다 현지 당국에 의해 적발된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이는 조희팔을 포함한 해외도피사범들의 향후 행적을 이해할 수 있는 한 단서다.

돈 있으면
안 잡힌다

조희팔의 유족 측이 촬영했다는 장례식 동영상, 응급진료기록부, 화장기록 등이 '조희팔 사망설'의 증거로 꼽힌다. 하지만 조씨 사망 발표 당시 시신은 이미 화장된 상태였고, 동영상 역시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에는 사망증명서와 화장기록 등이 위조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또 조희팔의 유가족은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팔의 경우처럼 상세한 증거는 없지만 사망 보도가 논란이 된 도피사범이 있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다. 장 전 회장은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장 전 회장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확인서를 발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장 전 회장의 사망 보도를 놓고 주중대사관은 이례적으로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다"라는 언급을 내놨다. 장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해외도피 기간 중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이 상실됐다. 캄보디아에 있을 것으로 추측된 장 전 회장은 도피 10년 만에 중국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정태수·정용욱·유혁기 행방 오리무중
호화 도피생활에도 정부 당국은 뒷짐

일각에선 '측근과 연락했다'는 등의 위장 사망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6월 중국대사관이 공증한 사망진단서와 주중 한국대사관 측의 진술을 인용해 "장 전 회장이 사망했다"라고 확인했다. 검찰은 장 전 회장의 800억원대 배임 사건 등을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다. 장 전 회장의 오랜 측근은 지난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다 확인해주지 않았느냐"라며 "그런 건 묻지 마시라"라고 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생사여부가 불분명한 케이스다. 올해 나이 92세인 정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일본을 경유해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간 뒤 행방불명됐다. 특히 정 전 회장은 그가 설립한 강릉영동대학교의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 재판 중 '치료를 받겠다'며 해외로 도피했다.

 



지난 8월 세무당국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이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살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보그룹에 정통한 관계자 역시 "정태수가 해외자원개발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의 신병 확보를 위한 관계 당국의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회장의 4남 정한근씨는 아버지보다 일찍 행적을 감췄다. 그는 1998년 미국으로 도피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한근씨를 봤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 소재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도 해외도피사범의 대표 사례로 지목된다. 전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3월 100억원대 임금 체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지만 미국으로 도피했다. 언론을 통해 전 전 회장의 호화 도피생활이 공개됐지만 전 전 회장의 국내 송환은 번번이 무산됐다.

기업인은 아니지만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며 수억원대 금품 수수 혐의를 받았던 정용욱씨도 도피생활을 잇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09년 9월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EBS 이사에 선임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2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씨는 2011년 12월 태국으로 도피한 뒤 이듬해 말레이시아로 거처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정씨는 지난 2008년 최 전 위원장의 지시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 3~4명에게 3500만원을 전달했다는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정씨에 대해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렸으며 아직까지 강제 구인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정씨의 마지막 행적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곳은 미국이다.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 2013년 미국 현지에서 그를 만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정부는 범죄 혐의자가 해외로 도피했을 때 사실상 사태를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각 정부 대사관 직원 혹은 국정원 요원들을 투입해 행방을 수소문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 지침이 하달됐는지는 미지수다.

관망하는 정부 
퍼지는 설설설

정권이 사활을 걸고 덤벼든 유벙언 수사에서도 핵심 용의자는 체포하지 못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씨의 소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국 뉴욕 거주설, 프랑스 파리 이주설, 멕시코 멕시코시티 은신설 등 온갖 설만 무성하다. 실제로 그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각국 치안·수사당국은 우리 정부의 수사 협조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가 없다. 외국 공문서로 발급됐다는 문서가 재판에서 조작된 문서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조희팔 미스터리의 핵심은 이 같은 '신뢰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만약 2012년 우리 수사당국이 적극적으로 조희팔의 생존 가능성을 조사했더라면 어땠을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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