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의 ‘청와대 대포폰’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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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청와대 대포폰’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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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명 명의로…조폭이 대줬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대포폰 제조창’이었다. 자신의 군대 후임이 운영하는 대리점을 통해 대포폰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교체했다. 이에 특검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번 사건으로 범죄자들의 전유물로만 취급되던 대포폰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국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차명으로 된 휴대전화기, 일명 ‘대포폰’을 사용했다고 증언해 파장이 크게 일었다. 그간 박 대통령이 대포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정면으로 뒤집는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영선 지인은
어디서 났나?

정 전 비서관은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7차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언급했다. 정 전 비서관은 “도청 위험성이 있어 만에 하나를 대비해 우리 이름으로 (등록된 전화를 사용)하지는 않았다”며 “대통령과 차명폰(대포폰)으로 통화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 대리인이 “대통령도 차명폰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재차 확인하자 정 전 비서관은 “그렇다”고 명확히 답했다. 대포폰을 누가 구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의혹은 지난해 11월11일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최초로 제기했다. 당시 안 의원은 국회 긴급현안질문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대포폰을 개설,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장시호씨가 6개를 개설했고 그중 하나를 박 전 대통령에게 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안 의원의 주장에 대해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청와대서 공식적으로 지급받은 전화기 외에 다른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허위 사실”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전 비서관의 증언은 청와대의 반박을 뒤집는 증언이었던 만큼 파장도 컸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에 해당하는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은 다른 누구의 주장보다 더 높았다.

진실은 특검 조사 결과로 밝혀졌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그리고 정 전 비서관 등의 차명 휴대전화 70여대를 개통 및 관리한 사실이 확인된 것.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월27일 “영장이 청구된 범죄사실과 그에 관해 이미 확보된 증거, 피의자의 주거, 직업 및 연락처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영선 행정관 군대 후임에 개통 의뢰
통화내역 증거가 구속 막은 요인으로

한 매체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해외에 나갈 때도 이 전 행정관이 개통해준 대포폰을 항상 챙기며 청와대와 연락선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가 일본, 독일에 갔을 때도 대포폰에 각각 일본 통신사와 독일서 통신사업을 하는 영국 통신사의 통신망 접속 기록이 남아 있었다.

또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함께 개설해 사용했던 대포폰의 최종 해지 날짜는 지난해 10월30일이었다. 해외 도피 중이던 최씨가 직전 박 전 대통령과 집중 통화를 한 뒤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귀국한 날이다.

이 전 행정관은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서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은 옷 문제로 의상실서 처음 만났다”고 했으나 거짓 증언으로 확인됐다. 특검 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은 당선 이전에도 최순실씨가 운영하는 의상실서 옷을 맞춰 입었으며 당시에도 이 행정관은 옷 심부름을 했다고 한 매체는 보도했다. 

 


▲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

이같이 상당한 의혹이 제기됐으나 법원은 ‘이미 확보된 증거’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특검이 수사과정서 확보한 차명 휴대전화와 개통내역, 통화내역 등의 증거가 되레 구속을 막은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 전 행정관은 그간 특검의 수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다가 특검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에 나서자 2월24일 출석했다. 그러나 특검 조사에서도 일관되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저도 청와대서 대통령을 거의 5년 모셔봤지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가 나라인지, 청와대가 청와대인지, 조폭 공화국이고, 범죄 집단의 소굴”이라고 맹비판했다. 그는 “청와대와 국무위원 등을 상대로 대포폰 사용자들을 색출해 박근혜정부 불법 대포폰 비상 연락망을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기꾼들 필수
선거 때 수요↑

이번 사건으로 수면위로 떠오른 대포폰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조직폭력배 등과 같은 범죄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수요층이 두터워졌다. 개인용 컴퓨터와 다름없는 스마트폰서 개인정보가 새어나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다.

주식 투자자와 기업 임원, 각종 선거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이 혹시 모를 수 있는 사기관의 조사에 대비하거나 사생활, 비밀을 숨기기 위해 대포폰을 찾기 시작했다.

요즘 대포폰 상당수는 알뜰폰 사업자를 통해 개통된 외국인 명의 선불폰으로 파악된다. 외국인 여권 사본만으로 다수의 대포폰이 복제되고 있다. 불법 대포폰 업자들은 알뜰폰 사업자가 선불폰 개통을 신청한 외국인의 입국정보만 조회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한국알뜰폰사업자협회 관계자는 “가입자가 다른 통신사에서 선불폰을 몇 개나 개통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알뜰폰 사업자 간 가입자에 대한 정보 공유가 없어 명의 1개만 도용해도 39개 대포폰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이드는 호텔 숙박 신청 시 필요하다고 여권을 회수한 뒤 사진을 찍어 돈을 받고 명의를 판다”며 “알뜰폰 사업자 대리점이 다단계 형태로 운영되거나 잠깐 개통만 하고 폐업하는 식으로 불투명하게 운영된다는 점도 대포폰 시장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전체 선불폰 시장의 최소 10%는 대포폰으로 추정된다”며 “대포폰으로 둔갑한 선불폰 가격을 35만원 정도로 잡아도 시장 규모가 최소 1000억원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포폰은 사회 곳곳에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다. 불법 유흥업소 운영자와 불법 대부업자, 주가조작 세력 등에겐 필수품으로 통한다. 일부 기업서도 대포폰을 암암리에 쓰고 있다.

“뿌리 뽑겠다”
호언장담 무색

선거 기간에도 대포폰 수요가 급증한다. 사전 선거운동 등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 생산자단체 회장도 지난해 말 대포폰을 이용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그는 외국인 명의의 대포폰으로 측근과 사전 선거 대책을 논의하거나 대의원들에게 지지 호소 문자를 보냈다.

한 휴대폰 판매업자는 “각종 선거기간에는 대량으로 대포폰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일반인도 개인적인 이유로 대포폰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대포폰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미래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당국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미래부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대부분 국가는 명의 없이 선불폰을 이용하도록 한 뒤 범죄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고 있다”며 “개통이나 이용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지만 모든 대포폰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대포폰 구매가 스마트폰 개통보다 간단하고 편리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누구나 대포폰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관련 당국서 취한 조치는 전혀 없다”며 “스마트폰을 개통하려면 판매 대리점을 방문해 각종 계약서를 써야 하지만 대포폰은 이런 절차도 필요 없다”고 꼬집었다.

대포폰을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진 않는다. 대포폰 이용자를 처벌하는 뚜렷한 법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포폰 이용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대포폰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포폰을 개설·판매하거나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대포폰을 개설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이용하면 형법상 사문서 위조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수요층 급증
외국인 명의 30만원 30분이면 뚝딱

대포폰을 개통하는 데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면 대포폰 이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차명 휴대폰 사용을 어디까지 불법으로 인정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해 관련 법이 마련되기 어렵다는 게 미래창조과학부의 설명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부모가 자식 명의의 휴대폰을 쓰는 것처럼 차명 휴대폰을 사용했다고 해서 처벌하기는 모호한 사례가 너무 많다”며 “금융실명제를 근거로 대포통장 이용자가 처벌받는 것과 상반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폰 판매업자들은 개인정보를 돈을 주고 사기도 하지만 유출된 개인정보를 몰래 이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당사자도 모르게 본인 명의로 개통된 휴대폰은 없는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볼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지난 2014년 4월 청와대는 대포통장, 대포차, 대포폰 등 이른바 ‘3대 대포악’ 근절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 두 달 전에는 대포폰 단속을 위해 ‘서민생활침해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기도 했다.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통장과 대포차, 대포폰 척결을 위해 정부가 직접 강력 대처에 나선 것. 하지만 대포폰을 뿌리 뽑겠다던 청와대의 호언장담은 박 전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의혹으로 무색해졌다.

솜방망이 처벌
허술한 관련법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가 지난달 31일 뇌물죄 등으로 청구된 구속 영장을 발부함으로써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세 번째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주요 혐의는 ‘뇌물’이었지만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대포폰을 이용해 최순실씨와 말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점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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